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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인문학적 탐구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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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36

인문학적 탐구와 신앙

 


1. 문제 제기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연적인 것을 탐구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믿는다. 탐구하고 믿는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 행위이다. 가장 인간적 행위란 인간의 완성에 기여하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탐구하고 믿는 행위로 인간의 자연적이고 초자연적인 과업을 완성함으로써 허락된 행복을 차지할 수 있다. 여기서 탐구 행위는 이성적 능력의 표현이요, 신앙 행위는 구원받고자 하는 의지적 능력의 실현이다. 결국 탐구 행위와 신앙 행위는 인간적 본성인 영혼의 두 가지 표현 방식이다. 이성적 탐구 행위(investigatio)는 참으로 ‘나는 사유한다.’(cogito)는 사태를 말하며, 의지적 신앙 행위(fides)는 기꺼이 ‘나는 믿는다.’(credo)는 사태를 말한다.

 

역사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진리를 파악하는 이성과 선(善)을 추구하는 의지로 자신을 실현시켜 왔다. 여기서 이성적 탐구와 의지적 신앙은 인간의 동일한 정신 능력이지만, 서로 다른 대상으로서 구분된다. 이성의 대상은 참(verum)이요, 의지의 대상은 선(bonum)이기 때문이다. 곧 이성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유 능력이요, 의지는 선을 추구하는 욕구 능력이기 때문이다. 감각 영역에서도 시각은 소리에 감응할 수 없고 청각은 색깔에 감응할 수 없다. 정신 영역에서도 이성은 무엇을 원할 수 없고, 의지는 선을 파악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이성은 다만 참과 거짓을 파악하고 판단할 뿐이며, 의지는 이성이 제공하는 선(善)을 의욕할 뿐이다. 이성과 의지의 상반된 대상 때문에 이성적 작용인 탐구 행위와 의지의 작용인 신앙 행위 사이에도 근본적 긴장이 성립된다.

 

역사에 등장한 다양한 문화들은 이러한 탐구와 신앙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강조하고 대처해 왔다. 탐구와 신앙 사이에 펼쳐지는 긴장 영역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아 긴장 그 자체를 역사로 삼은 최초의 문화권은 그리스도교이다. “신앙(fides) 개념은 구약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반면에 “이성(intellectus) 개념은 그리스적 원천을 가지고 있다.”1) 결국 그리스 철학은 신화의 시대를 극복하면서 자연적 진리를 탐구하는 가운데 이성 개념을 발굴했으며, 구약 시대의 유다교는 미신을 극복하면서 유일신을 찾아가는 가운데 신앙 개념을 획득했다. 그리스도교는 구약의 유일신에 대한 신앙을 기초로 삼으면서 그리스 철학의 이성적 탐구 정신을 신앙 표현의 방법으로 삼는다. 따라서 이성적 탐구와 의지적 신앙의 갈등은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나아가 가톨릭 교회는 바로 이성과 신앙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극복하는 가운데 세계 종교로 우뚝서게 된다. 곧 가톨릭 교회는 굳건한 신앙의 바탕 위에 철학을 정립하고, 이성적 탐구를 통하여 가톨릭 신학을 정비하였다.2)

 

그렇다면 탐구와 신앙의 갈등은 그리스도교에서 어떻게 극복되고 조화를 이루는가? 우리는 가톨릭 교회가 겪은 이러한 갈등과 조화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또 우리는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인문학적 탐구의 위기와 신앙의 위기에 각각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는 갈등과 조화의 역사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교훈과 실천적 방안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2. 갈등과 조화의 역사

 

이성적 탐구와 의지적 신앙은 예외 없이 영원한 진리에 이르는 과정이며 작업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유다인들은 오직 신앙을 통하여 진리(veritas)에 도달하고자 했으며, 고전 철학의 그리스인들은 이성적 사유를 통하여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무엇을 통하여 진리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도달하고자 했는가?

 

‘진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emet은 ‘신앙’에 해당하는 he'emim과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의 진리는 믿는다는 뜻에 가깝다. 따라서 성서에 나오는 신앙인들의 진리란 하느님을 확신하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록 이 세상의 삶이 그들의 염원을 어길지라도, 성실한 하느님은 결코 믿는 사람들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이다. 이러한 진리는 인간과 하느님, 피조물과 창조주를 본격적으로 구분한다.

 

고전 그리스 철학의 진리에 해당하는 단어는 ‘알레테이아’(aletheia)이다. 알레테이아는 어원적으로 ‘숨어 있지 않음’(a-letheia)을 의미하므로, 히브리어의 진리에 해당하는 어원과는 다르다. 그러나 알레테이아 역시 인간과 사물에 대한 착오나 오류로 ‘속지도 않고’, 어둠과 죄에 ‘빠지지 않기를’ 염원한다.3)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 탐구의 극치를 ‘사유 자체의 사유’로 이해하며, 인간을 특별한 방식으로 신과 연결시키는 것으로 본다.4) 따라서 사유 자체의 사유란 인간이 세계에 대한 신적 사유의 현실성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사유하는 사람들은 이데아를 파악하거나 세계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적 탐구로서의 사유(noesis)는 인식과 구별되는 것이다. 인식은 지각할 수 있는 대상과의 관계를 지향하는 반면에, 사유는 가능하고 현실적이며, 결국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크기들 사이의 관계를 검증하기 때문이다. 이성적 탐구는 세계와 인간적 능력에 대한 확실한 정향을 얻고자 하며, 특히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올바른 계도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그리스 철학의 이성적 탐구는 이렇게 인간적 능력을 향상시키지만,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피조물과 창조주를 절대적으로 구분하고 창세기의 말씀에 따라 해결하도록 인간적 능력을 위협한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교 역사를 내적으로 결정해 온 탐구와 신앙의 근본적 갈등이 뿌리박고 있다. 이성적 탐구는 선과 악의 판단도 현실적 삶의 성공을 기준으로 삼도록 세계를 정향시키지만,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피조물과 창조주를 절대적으로 구분하면서 피안에서의 구원을 현실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나아가 역사, 정치, 사회, 문화, 문학과 같은 다른 모든 인문학적 문제도 탐구와 신앙 사이의 근본적 갈등에 따라 달리 정향된다.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탐구와 신앙의 갈등이 문헌에 첫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바오로 서간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 문화권에 거주하던 고린토 사람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철학적 사변에 맞서 장엄하게 신앙을 선포한다. “우리는 잘못된 이론을 무찔러 버리고, 하느님을 아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오만을 쳐부수며 어떠한 계략이든지 다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시다”(2고린 10,5). 여기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겠다는 ‘이론’은 인간의 이성적 사유, 곧 그리스적 탐구 정신을 가리킨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당시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였고,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1고린 1,23)는 존재였다. 바오로 사도가 거론한 이성적 탐구와 신앙의 갈등은 이후 교회사에서 ‘이성의 희생’(sacrificium intellectus)을 요구하는 한편, ‘탐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으로 승화하기에 이른다.

 

그리스도교는 일찍이 이성적 탐구의 가치를 평가하고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클레멘스는 고전 그리스의 전통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이상과 같은 철학적 논지를 교회 안에 연장시킨다.5) 그러나 탐구와 신앙의 갈등을 둘러싸고 이론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겠다는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교적 태도는 클레멘스에 와서 결정적으로 변화한다. 예를 들어 클레멘스는 영적 통일체로서의 교회와 그리스도교인의 질서(ordo christianes)라는 이상을 확립하기 위하여 그리스 철학의 심프네오(sympneo, 공통의 숨) 내지는 프네우마(pneuma, 정신)라는 개념을 도입한다.6) 클레멘스 이래로 그리스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은 그리스도교를 변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그리스 철학적 변증법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유스티노는 그리스 철학을 거쳐 그리스도교로 넘어온 사람이다. 그래서 유스티노의 그리스도교는 철학과 전적으로 동의어였을 만큼,7) 일종의 철학으로 해석될 정도였다. 따라서 초대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발전은 어쩌면 그리스 철학적 자료를 끊임없이 번역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신앙에 대한 이성적 탐구 작업은 ‘마지막 로마인’이자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인 보에시우스에 이르러 결정적 발언으로 나타난다.8) 보에시우스는 그리스로 유학하여 그리스 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교 안에 이성적 탐구 정신을 직접 거론하는 그의 [신학 논고]는 근본적으로 신플라톤주의를 그리스도교 교의의 필요성으로 영입하는 저서이다. 그는 서문에서 학문적 방법을 결정하는 저술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연구해 오던 물음들을 너희에게 제공하고 알리기 위해, 마찬가지로 그렇게 열렬히 추구하던 너희의 판단에 걸맞게 우리 것을 발견하기 위해, 하느님의 빛이 우리 정신의 불꽃을 인정하는 만큼, 나는 그 물음들을 개념화하고 성문화하려고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9) 여기서 “나는 탐구해 왔다.”라는 말은 학문의 역사가 흐르면서 스콜라 철학의 방법과 방향을 결정하는 기념비적 선언으로 드러난다. 보에시우스는 이 서언에 따라 논고의 탐구 대상, 연구의 어려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성적 근거를 통하여 신앙의 진리에 파고드는 이론적 방법을 해명한다.10) 물론 [신학 논고]는 삼위일체에 관한 저술이지만, 하느님에 대한 이성적 인식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그래서 후대의 토마스 데 아퀴노는 보에시우스의 이론적 방법을 정식으로 인문 과학적 탐구 방법으로 확대시키면서 학문론을 열기에 이른다. ‘인간은 얼마나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보에시우스의 물음은 ‘인간은 어떻게 진리를 알 수 있는가’라는 학문론적 물음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보에시우스의 탐구 정신은 안셀모에 이르러 신앙의 합리화(ratio fidei) 또는 이성적 필연성(intellectus necessarius)이라는 이성에 대한 전폭적 신뢰를 낳게 된다. 안셀모는 아우구스티노와 보에시우스의 전통적 모범에 따라 사유함으로써 무신론자와 바보에게도 하느님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신학적 진리를 이성만으로(sola ratione) 수행하고자 하는 그의 방법은 역사에 보기 드문 이성적 기획을 남긴다. 거두절미하고 신 존재 증명에 대한 그의 이성적 업적을 원문대로 옮겨보자.

 

“우리는 실로 당신(하느님)이야말로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 어릿광대가 진심으로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해서, 결국 그러한 것은 없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 바보가 내가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면, 그는 들은 바를 틀림없이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는 그 무엇은 비록 그가 그런 것이 실존한다는 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의 이성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사물이 이성 안에 있다는 것과 그 사물이 실존한다는 것을 통찰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화가가 만들어 낼 것을 미리 생각한다면, (그것을) 이성 안에 가지고 있겠지만, 그가 아직 만들어 내지 않은 것이 실존한다는 것을 인식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미 만들어 내었다면, 이미 만들어 낸 것을 이성 속에도 가질 것이요 또한 그것이 실존한다는 것도 통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릿광대는 적어도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어떤 것이 이성 안에 있다는 것에 설득될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듣는다면 이해하고 또 이해된 것은 이성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생각될 수 없는 것은 오직 이성 속에서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적어도 단지 이성 속에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것은 현실 속에도 존재한다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생각될 수 없는 것이 단지 이성 속에만 존재한다면, 결국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바로 그것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심의 여지없이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생각될 수 없는 것’은 이성 속에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도 존재합니다.”11) 

 

여기서 안셀모는 성서의 권위나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이성의 필연적 귀결만으로 그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항하고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한 것으로 알고자 한다. 이러한 신앙의 합리성에 따른 탐구는 뉴턴의 물리학이 19세기 철학자들에게 한 것처럼, 11세기의 철학적 사유를 단련시키는 시금석 구실을 했다.12) 그러나 다음 세기의 토마스 데 아퀴노는 안셀모가 말하는 신앙의 합리성이 신앙에 대한 이성의 지속적 탐구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한다. 토마스는 탐구와 신앙의 종합적 관점에서 신앙의 자료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적 탐구 방법으로 재구성한다. 물론 이런 관점은 이미 그의 스승 대(大) 알베르토의 미래 예감에 나타났던 것이다. “검증 학문의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여전히 탐구 대상으로 남아 있다.”13) 이러한 예감은 인문 과학적 탐구의 불필요성이 전염병처럼 만연되고 있는 오늘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어쨌든 토마스의 신앙에 입각한 탐구 정신과 이성적 탐구를 필요로 하는 신앙은 [신학 논고]에 나오는 보에시우스의 말을 학문론적 선언으로 해설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러한 (지적 탐구) 작업의 목적은 우리의 삶이 허락하는 한 신앙에 숨겨져 있는 것을 밝혀내는 데 있다.”14) 나아가 토마스는 “이 작품([신학 논고])의 방법도 나는 탐구하겠다는 말에서 나타나는데, 이 말은 이성적 탐구를 나타낸다.”15)라고 해설한다. 그는 여기서 “나는 탐구해 왔다”(investigatam)라는 보에시우스의 말을 의식적으로 “나는 탐구하겠다”(investigabo)라고 옮긴다. 토마스는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극히 중대한 사항이 아니면 일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당시 신앙을 근거로 하는 ‘권위적 방법’에 대응하여 ‘이성적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적 탐구 방법이란 결국 이성의 사유 작용 자체에 대한 물음을 통하여 신앙에 숨겨져 있는 것을 밝혀 나가는 것이라고 규명할 수 있다. 토마스는 이러한 탐구 방법에 따라 안셀모가 제시한 신앙의 극단적 합리화를 다음과 같이 반증한다. 

 

“첫째 대론(안셀모의 신 존재 증명)이 의도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이란 명칭의 의미가 인식된다고 해서 동시에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까지도 알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첫째로,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생각될 수 없는 것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시인하는 이들까지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대인들은 이 세계가 바로 하느님이라고 말했으니까. 요안네스 다마세누스가 제시하는 하느님의 명칭에 대한 해석에서도 이런 식의 이해는 주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두 번째로) 하느님이란 명칭이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이해된다고 전제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자연 사물(현실)에도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지칭한) 사물과 그 명칭의 의미를 동일 선상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하느님이라는 명칭으로 표현되는 것이 정신에 파악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는, 이성(理性) 속이 아니면 하느님께서도 존재하시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생각 속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어야 했다. 또 이로부터는,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자연 사물[現實] 속에 존재하리라는 결론도 나오지 않는다. 이는 결국 하느님께서 존재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아무 것도 다를 바 없다. 곧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자연 사물 속에 주어져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는 결국 자연 사물이나 이성 속에 주어져 있는 것보다 더 큰 어떤 것이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16) 

 

안셀모는 이성 자체의 필연적 귀결로 더 이상의 증명이 불필요한 출발점으로서의 하느님을 현실에서도 찾았다고 과신하지만, 토마스는 이성 자체의 귀결은 결국 이성 안에만 현존한다고 경고한다. 

 

이 논쟁의 이면에는 세계의 변화에 대한 제일 원리와 이차적 원리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인문 과학적 결단이 깔려 있다. 여기서 토마스는 창조주와 피조물, 하느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율이라는 양극단에 직면하여 어느 한 극단으로도 기울지 않으려 한다. 균형 잡힌 이성만이 현실뿐만 아니라 현실을 가능하게 한 초현실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토마스는 무한한 신적 전능과 제한된 인간적 능력 사이의 긴장을, 신앙의 초월성과 이성의 현실성 사이의 긴장을 있는 그대로 보고 또 유지하려고 한다. “비록 하느님께서 제일의 보편적 작용인이시라 할지라도, 자연 사물(현실) 속에도 고유한 작용력이 주어져 있다.”17) 이러한 토마스의 균형 잡힌 인문 과학적 탐구 방법은 이성의 자율이라는 위대한 결과를 낳는다. 이성의 탐구 능력은 하느님의 특별한 조명을 요청하지 않고도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요, 이 능력은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이성의 본성이다. 따라서 신앙이 광신으로 넘치지 않고 이성이 교만에 빠지지 않는다면, 양자는 결코 모순될 수 없다. 신앙이 이성적 탐구의 검증을 받아들이고, 이성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면, 신앙과 이성은 비록 다른 길을 걸을지라도 동일한 목적에 도착할 것이다. 토마스에 따르면 신앙과 이성, “둘 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이기 때문이다.18) 

 

신앙에 입각한 탐구 정신은 근세 전환기의 니콜라우스 쿠사누스로 이어진다. 그의 전초적 선언을 들어보자. “인식되는 모든 것은 더욱 완전하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인식될 수 있는 것만큼 그대로 인식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19) 어떤 인문 과학적 인식이라도 그 인식 가능성 뒤에는 더 인식될 것이 남아 있다. 이성은 탐구 결과의 뒤편에 있는 가능성에 대해 겸허해야 한다. 쿠사누스에게 감각적이고 이성적인 세계는 기능적으로 무한하지만, 동시에 절대적 일자요, 동일자이신 하느님 안에 자기 근거와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신앙 내용마저도 감히 신적 무한성과 인간적 유한성의 합병으로 볼 정도이다. 그만큼 인간의 정신은 스스로 모든 것을 포괄하고, 탐구하며,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절대 정신 속에 자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절대 정신은 이성적 인식에 대한 절대적이고 선험적인 대전제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들의 절대적 전제이시다.”20) 쿠사누스는 하느님의 절대성에 선험적으로 파악된 정신 개념으로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세운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인간의 위상으로 르네상스와 인본주의의 기초를 마련하고 근세의 세계 개념에 접근한다. 이후의 인본주의는 그의 인간에 대한 위상을 다양화하기에 이른다. 그 일환으로 미란돌라는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아담을 세계의 정점에 세운다. “나는 너를 세계의 중심에 세웠노라. 거기서 네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좀더 쉽게 보도록 하기 위해서이니라. 나는 너를 하늘의 것도 아니고 땅의 것도 아니도록 만들었으며, 사멸하지도 불멸하지도 않도록 만들었느니라. 그럼으로써 너는 네 자신을 실현하고 창안하는 자로서 네 자유의 존엄성으로부터 네 의지가 바라는 모습을 형성하도록 하기 위해서니라.”21) 

 

그러나 쿠사누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근세 이후의 인문 과학은 또 다시 극단으로 치닫는다. 근세 이후의 인문 과학은 감히 신앙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법과 파괴하는 방법으로 양분해도 좋을 것이다. “신앙만으로”라는 루터의 선언은 결과적으로 “이성만으로”라는 계몽주의를 선동할 뿐이었다. 나아가 칸트, 피히테, 헤겔은 그야말로 신앙이 이성의 진리에 적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기에 이른다. 현대에 이르러 분석 철학은 또 다시 이성적 탐구와 신앙 사이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 대화도 신학적 서술에 대한 언어 분석과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여정은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는 [논리 철학 논고]에서 신앙의 대상에 대해 침묵하라는 결론을 내리지만, 후기의 언어 놀이 이론에서는 신앙을 서술하는 언어에 대해 그 자체로 논리를 넘어선 개인적이고 경험적 의미를 부여한다. 신앙의 언어와 언어 분석 철학의 관심은 갑자기 ‘행위’(actus) 개념으로 집중되어 ‘행위하는 인간’과 ‘행위하는 하느님’ 사이의 관계 구조를 고찰하기에 이르렀다. 이성의 행위론적 고찰은 더욱 새로운 지평에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

 

 

3. 결어와 전망

 

지금까지 우리는 간략하나마 신앙과 이성적 탐구의 갈등이 빚어 낸 그리스도교적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물음에 직면한다. 왜 신앙과 이성적 탐구는 가끔이나마 동시에 동일한 진리를 가지지 못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본성과 이 본성의 완성에 이르는 과정 자체에 기인할 것이다. 이성과 의지로 각인된 인간의 본성은 신앙 행위와 탐구 행위의 연결 고리요, 인간은 이 고리를 통하여 자아를 실현시켜야 하는 역사적 현실에 처해 있다. 이런 현실에 처한 인간은 오직 시대적 요청의 형식에 따라 진리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성적 탐구는 신앙의 계도를 필요로 하며, 동시에 신앙은 이성의 검증을 필요로 한다. 이성은 진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자체 논리성으로 주어져 있을 뿐, 왜 이런 이성이 인간의 본성으로 구비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는다. 

 

과연 이성은 무엇을 위하여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가? 이성적 탐구는 무엇을 위한 과정이며, 어디로 가기 위한 방법인가? 이성의 검증이 없는 신앙은 온전한 신앙인가? 이성은 미완성의 인간에게 초월적 완성을 향한 방법으로 주어져 있다. 결국 이성적 인간의 완성은 이성적으로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피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앙의 힘을 필요로 한다. 반대로 신앙은 자연적 논리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적 탐구를 전제로 한다. 토마스는 신앙과 이성적 인식의 최종적 관계를 이렇게 역설한다. “마치 은총이 자연을, 완성이 완성될 수 있는 곳을 전제하는 것처럼, 신앙은 자연적 인식을 전제한다.”22) 따라서 신앙을 등한시하면 이성의 합리성을 위협하게 되고, 이성의 합리성을 억압하면 신앙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우리는 다가오는 이 천 년대를 맞이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말하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앙의 고삐가 없는 이성은 자멸을 초래하며, 이성의 검증이 없는 신앙은 광신에 빠진다. 따라서 신앙은 끊임없이 이성적 탐구의 검증에 귀기울이고, 이성적 탐구는 신앙의 테두리를 거듭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위기는 이성적 탐구를 통해, 이성의 만용은 신앙의 계도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대답이 나온다. 신앙과 이성의 갈등 그 자체야말로 건전한 신앙과 확실한 탐구가 함께 넘어야 할 인류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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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 Ebeling, Dogmatik des christlichen Glaubens I, Tuebingen, 140-197(∬7:Glaube und Denken), 1979년, 141면. 

2) B. Jager, [초기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 김승철 옮김, 전망사, 1994년, 29면:그리스도교의 역사는 그리스도교가 고전 그리스의 유산을 받아들여서 자기의 사상 체계로 삼아 왔던 과정이다. 

3) H. Soden, Was ist Wahrheit? (1927):Urchristentum u. Gesch. Ges. Aufs. u. Vortr., I Tuebingen, 19512, 10면 참조. 

4) Aristoteles, Met. XII, 1074 b 33: noesis noeseus

5) B. Jager, 앞의 책, 21면. 

6) 위의 책, 30면. 

7) Eusebius, Hist. eccl. IV, 11, 8. 

8) A. M. S. Boethius, Die theologischem Traktate, ed. M. Elsasser, Hamburg, 1988년, VII. 

9) 위의 책, 2면:Investigatam diutissime quaestionem, quantum nostrae mentis igniculum lux divina dignata est, formatam rationibus litterisque curavi tam vestri cupidus iudicii quam nostri studiosus inventi. 

10) P. Wyser O.P., Thomas von Aquin, In librum Boethii der trinitate quaestiones quinta et sexta, Louvain, 1948년, 6면 참조. 

11) Anselmus, Proslogion, cp.2. 

12) Geschichte der Philosophie IV, hrsg. W. Rod, Muenchen, 1987년, 186면. 

13) Albertus Magnus, Lib. prim. Posteriorum Anltticorum, tr.1, cap.1. 

14) Thomas de Aquino, Expositio super librum Boethii de trinitate, Prologus:Finis vero hius operis est, ut occulta fidei manifestantur, quantum in via possibile est,...... 상세한 해설과 문헌에 대해서는, 신창석, “토마스 아퀴나스에 있어서 학문론의 철학적 근거:추상과 분리”, [중세 철학] 창간호, 166면 이하 참조. 

15) 위와 같음. 

16) Thomas de Aquino, [철학 대전] I, cp 11, n.2. 

17) Thomas de Aquino, In de anima, a.4, ad 7. 

18) Thomas de Aquino, Expositio super librum Boethii., q.2, a.3:Utrumque sit nobis a Deo. 

19) Nicolaus Cusanus, De veratione sapientiae, cap. 12, I 50 이하. 

20) Nicolaus Cusanus, Idiota de sapientia, Lib. II; III, 456. 

21) G. Pico della Mirandola, De hominis dignitate, Hrsg. E. Garin, 1942년. 

22) [신학 대전] I, q.2, a.2, ad 1.

 

[사목, 1999년 8월호, 신창석(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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