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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의 협력자: 바이론 하워드 감독의 애니메이션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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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22 ㅣ No.632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13) 영화 속의 협력자 - 바이론 하워드 감독의 애니메이션 '볼트'

나와 너의 관계 안에서 마주하는 깨달음과 삶의 변화


1. 영화를 '영웅의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되면 영화 장르나 내용은 다를지라도 이들 영화에서는 반복되는 동일한 주제와 일정한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살던 편안한 일상적 세계를 떠나야 하는 소명을 받고 도전적인 미지의 세계로 위험을 감수하고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여행이 만만치 않아 위험에 처하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 위협을 가하는 적대자와 만나기도 하고, 반면 도와주는 협력자를 만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이겨내기 힘든 상황에서 방향을 제시해 주고 격려하는 협력자, 이른바 멘토를 만나고 나서야 영웅은 비로소 새로운 결심과 더불어 더 적극적 태도로 힘든 여행에 임하게 된다.
 
결국 영웅은 죽을 고비까지 갔다가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소명을 이루고 큰 깨달음으로 다시 일상세계로 복귀한다. 소명을 완수하는 것은 영웅의 몫이기도 하지만 영웅의 이러한 소명은 협력자, 정신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그를 도와주는 멘토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화 속 멘토의 역할, 멘토가 어떻게 영웅을 협조하는지 월트 디즈니에서 제작한 '볼트'에 주목해보자.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기까지

2. '볼트'는 영화 속, TV 드라마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개로, 계속되는 시즌 드라마에서 매번 자신의 주인이자 파트너인 '페니'를 악당들에게서 구해내는 역할을 한다. 적어도 드라마에서 그는 초능력을 지닌 개다.
 
드라마가 시작되면 온갖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런 일들이 볼트가 움직이는 순간 저절로 해결된다. 볼트가 지나는 곳이면 굳게 닫힌 철문이 저절로 열리고, 발길이 닿는 곳에 여지없이 초능력이 발휘되어 땅이 꺼지고 악당들의 차가 뒤집어진다. 노려보기만 해도 악당들이 혼비백산하며 쓰러질 뿐 아니라, 일명 '슈퍼 멍멍' 폭풍으로, 한번 짖기만 하면 거대한 폭풍이 일어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다.
 
드라마 속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볼트,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그에게 조언을 하는 고양이 미튼스.
 

이렇게 볼트는 마침내 악당을 물리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페니를 구출하는 임무를 완수한다. 볼트는 그런 자기 자신을 '슈퍼독(Super Dog)'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무척 대견해하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전부 TV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는 것을 오직 볼트만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촬영장 안에서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볼트에게 시련이 닥쳐오는데 어느날 우연히 촬영장에 있는 택배상자에 빠지는 바람에 그만 할리우드에서 뉴욕 한복판으로 배달된 것이다. 볼트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당장 페니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되돌아가려고 하지만 여기저기 좌충우돌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겪게 된다. 믿을 거라고는 TV 속에서 보여주던 멋진 전투 기술과 초능력밖에 없는데, 그것마저도 볼트의 착각일 뿐 그가 뛰어든 현실 세상에서는 그냥 우스꽝스러운 행동일 뿐이다.
 
겨우겨우 그는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미튼스'라는 고양이를 만나게 되는데, 왕년에 사랑 받던 고양이였지만 사람들에게서 버림받고 좀 까칠해진 고양이다. 볼트는 미튼스를 협박하여, 미튼스의 안내를 따라 할리우드로 돌아가려는 장대한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 미튼스는 볼트의 허황된 착각과 영웅심에 의아해하다가, 이내 볼트가 TV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현실을 자각하도록 일깨운다.

볼트와 햄스터 라이노.
 

미튼스 : 생각해봐. 길을 떠나면서부터 한 번도 네 초능력이 먹힌 적이 없잖아. 더구나 생전 처음으로 배도 고프고 피도 흘렸어. 게다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몸에다가 번개 모양을 새기고 태어났다는 것이 말이 돼? 그건 분장사가 그린 마크야.

마침내 볼트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번개 모양의 문신이 물에 젖어 발에 묻어나는 것을 보고, 슬픈 표정으로 자기가 평범한 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향으로, 페니 곁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점차적으로 볼트는 현실에 적응해나간다. 볼트는 미튼스가 가르쳐준 대로,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애교의 표정, 그야말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기는 것에 겨우겨우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음식을 구걸하는 법을 배우며 평범한 생활의 즐거움도 알아가게 된다. 혀를 드러내고 바람을 맞는 것 등…. 약간의 품위를 포기하면 평범한 개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런 행동이 예기치 않은 흥미로운 사건과 자유를 체험하게 해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볼트가 미튼스를 만나 서서히 자신이 평범한 개라는 현실을 인정해나갈 때, 또 하나의 동료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엄청난 TV마니아이자 볼트가 나오는 드라마의 열혈 팬인 햄스터 '라이노'다. 라이노는 볼트를 보는 순간, 볼트의 숭배자로서 그를 따르는데, 라이노는 미튼스와는 달리 볼트가 그 어떤 평범한 모습을 보여도, '슈퍼 영웅'으로 여기는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미튼스가 핀잔과 빈정거림으로 볼트에게 현실을 인식하게 한다면, 라이노는 끊임없이 숭배와 찬양으로 볼트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튼스가 동물보호소에 잡혀가게 되고 미튼스를 구하러 가자는 라이노의 제안에 자신 없는 볼트가 포기를 선언한다. 그때 라이노는 발끈하며 볼트에게 영웅적 소명을 일깨운다.
 
라이노 : 넌 할 수 있어. 왜냐하면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이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면서 살거든…. 그들에겐 영웅이 필요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정의를 이루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때로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 용기를 주는 영웅이 필요한 거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결국 볼트는 라이노와 힘을 합해 미튼스를 구하게 되고, 이 일로 해서 이 셋은 우정으로 똘똘 뭉치게 되면서 할리우드 촬영장을 향한다. 마침내 볼트는 페니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며 자신이 TV드라마를 찍던 할리우드 촬영장에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게 된다. 때마침 촬영장에선 볼트 대역으로 새로 투입된 개의 실수로 촬영장에 불이 나고, 와이어에 매달려 있던 페니가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자 볼트는 자신이 슈퍼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페니를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든다. 볼트의 짖는 소리에 가까스로 페니와 볼트 둘 다 구조되지만 실신 상태이다. 결국 볼트는 페니를 드라마가 아닌 실제 속에서, 그것도 슈퍼개가 아닌 평범한 개로서 주인을 구하고 그에게 부여된 영웅적 이상을 성취한다.

- 볼트와 주인 페니
 

절망에서 희망으로 떠나는 여정

3. 영화 '볼트'는 '떠남(분리)→모험 →되돌아옴(귀향)'이라는 전형적 '영웅의 여행'이라는 모험 구성의 구도를 따르면서 자신을 초능력을 지닌 개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볼트가 그 믿음이 철저히 무너져 내리면서 자신의 기구한 현실을 인정하는 과정, 나아가 그 실의와 절망에서 희망을 가지고 다시 고향, 할리우드 촬영장으로, 페니에게로 되돌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담고 있다. 그 여정속에서 볼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다가 결국 현실로 돌아온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저 평범한 개의 즐거움에 안주한 것이 아니다. 비록 영웅은 아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반드시 내가 있어야 한다'는 영웅의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볼트로 하여금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을 버리지 않고, 이상적이면서도 현실 감각을 잃지 않고 균형을 잡도록 도와준 존재는 다름 아닌 고양이 미튼스와 햄스터 라이노이다.
 
미튼스는 볼트에게 현실의 냉혹함과 동시에 현실의 평범함이 주는 즐거움도 가르쳐준다. 한편 라이노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영웅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볼트가 영웅적 이상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최대한 돕는다. 우정으로 뭉친 이들은 마침내 볼트가 착각에 빠진 영웅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하는 진정한 협력자이자 멘토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예수님과 만남, 구원으로 이어져

4. 우리 신앙인들은 자신의 삶을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이자 '여정'으로 여긴다. 그 여정에서 협력자를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변화한다.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과 합당하게 적응해야 할 현실을 오가며 삶의 균형을 잡는다. 그렇게 '나와 너'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순례의 여정을 가는 것이다. 복음서를 보더라도 수많은 만남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 만남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협력자이자 멘토로서 받아들일 때 삶이 충족되는 충분한 이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만남의 본질이 있다. 만남은 서로에게 협력하고 이끌어주는 사랑의 의미를 지닐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한다. 공동체 생활의 의미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인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에서)

[평화신문, 2012년 7월 22일, 서석희 신부(전주교구, 서강대 영상대학원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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