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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철없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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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41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08) 철없는 남편

 

 

Q. 저는 어릴 적부터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도 ‘철들었다, 어른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난 후 남편을 보니 영 철이 덜 든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저와는 달리 자유분방한 모습이 보기 좋아 결혼했는데, 막상 같이 살다 보니 제 속을 뒤집는 경우가 많아 때로는 이혼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해와서 한때 수도원에 가기를 원했었고, 지금도 비록 가정주부이지만 완덕을 갖추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성당에는 다니는데 친한 신자들과 놀고 싶어 나가는 사람이라 신앙인의 삶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 가끔 책망합니다만, 철이 없는 건지 듣는 둥 마는 둥 여전하기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제 남편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A. 자매님이 매우 속상하시겠습니다. 하지만 실상 문제는 남편이 아니라 자매님에게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철없다고 하는 말은 상대방 인격이 미성숙하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철든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자매님은 성숙의 정도를 넘어서 완전한 사람이 철든 사람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어서 마음이 힘든 것입니다.

 

요즘 성형수술이 유행입니다. 코가 마음에 안 든다고 코를 세우고, 뱃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술을 해서라도 날씬한 허리를 가지려 합니다. 이처럼 우리 몸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술칼로 어느 정도 다듬고 고칠 수 있습니다. 물론 성형수술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심리학자 아돌프 굿겐볼 크레이그는 “어떤 사람의 마음에도 치유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는 마음 즉, 원형적 장애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 마음에는 철들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철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부분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무리하게 손을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인정하려 하지 않을까요?

 

심리학자 토마스 무어는 “현대인들이 어린아이 같은 아동성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면을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큰 결함이라 생각하고, 사람은 어른이 돼야 한다는 강박적 신념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히 보수적 윤리 교육을 받은 분들은 이런 신념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해서 자신 안의 철없는 부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바람에 철없이 구는 사람들에 대해 심한 투사를 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나 아인슈타인의 자전적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천재성에 감탄하기보다 그들의 철없는 행동에 대해 비난의 말이 먼저 나오는 분들은 바로 이런 병적 투사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자신의 마음 역시 힘겨운 상태입니다. 왜냐면 현실적 자기를 부정하고 이상적 자기만을 고집해서 마음이 찢어질 지경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 안의 어린아이 같은 점을 자기 개성으로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철이 들기 위한 노력은 하되 고쳐지지 않는 부분은 그냥 안고 살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가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고, 마음이 쫓기지 않고 편안할 수 있고, 철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을 부리는 히스테리적 행위를 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 5장 48절 “그러므로 하늘의 너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마르코 복음 10장 1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합니다.

 

완전한 사람이란, 어른스런 완전한 인격을 갖춘다는 의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좀 더 유연하고 좀 더 폭넓은 전인 개념을 가지셨던 분이란 것을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의 ‘어린이와 같이’라는 말 역시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는 ‘Childlike’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유치하게 사는 것은 안 되지만 순수한 마음은 가져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종이의 양면 같아서 떼려야 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위에서 말한 것처럼 두 가지 요소를 다 내 안의 부분으로 인정할 때 건강한 신앙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1년 6월 26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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