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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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기도가 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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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42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09) 기도가 되지 않아요

 

 

Q. 저는 기도를 하려고만 하면 왜 그런지 여러 가지 잡념이 떠오르고 더더욱 아주 안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괴롭습니다.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질 않고 없애달라고 기도해도 여전해서 신심이 깊은 분들에게 물었더니, 제가 열심히 신앙생활하려는 것을 시기하는 마귀가 방해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정말 평안한 마음을 갖고 주님 자녀다운 삶을 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제 안의 이런 소리를 없앨 수 있을까요?

 

 

A. 형제님이 가진 고민은 아마 기도생활을 하려는 모든 종교인이 가진 고민일 것입니다. 기도뿐 아니라 명상을 할 때도 혹은 공적 목적으로 회합을 할 때도 그런 소리가 뜬금없이 올라와서 당혹스럽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니 아마도 모든 사람이 그런 소리들 때문에 혼란스러움을 겪으면서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소리들을 종교에서는 ‘마귀가 보낸 소리’ 혹은 ‘악한 존재가 보낸 소리’라고 규정하고 여러 가지 종교예식으로 없애려 시도를 해왔습니다. 물론 일부는 그런 면도 없지 않겠지만, 심리학에서는 좀 다른 관점에서 그런 소리의 존재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심리학자 삭티 거웨인은 이것을 ‘내면의 수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여러 가지 잡담을 나누듯 머릿속에서도 수많은 소리가 수다를 떤다는 것입니다. 이 내면의 수다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자신에게 말을 걸면서 감정은 물론 일상적 사건들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수다란 것은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인데 왜 내면의 수다를 없애고 싶어할까요?

 

수다 내용이 즐거운 것이면 좋겠는데 불편한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좋지 않은 내용의 것들이 기도하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혼란스럽게 떠들어대기에 기도생활을 하려는 분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소리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독일 심리학자 호르스트 코넨은 ‘우리 마음속에서 부정적 수다를 떨어대는 것들을 일컬어 내면의 투덜이들’이라고 하면서 몇 가지 특징을 이야기했습니다. 

 

우선 이것들은 사람들이 과거에 묶여 살아가도록 유인합니다. 성당이 생긴 지 오래되고 유동인구가 별로 없는 지역 성당은 얼핏 보면 아주 가족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자들이 서로 잘 아는 것 같은데 ‘주로 부정적 면만 잘 알고 있네? 그래서 서로 눈치 보고 뒷전에서 험담하면서 사는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로 인해 가족적 소공동체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는 속단을 하기도 하는데, 오래된 사람들끼리 서로에 대해 소위 험담하는 것은 소공동체라서가 아니라 내면의 투덜이들을 잘 다루지 못해 내면의 투덜이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는 바람에 생긴 부작용입니다.

 

또 이 내면의 투덜이들은 아주 고집이 세고 끈질깁니다. 특히 사람이 마음과 몸이 지쳐 힘들어할 때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아주 고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 때일수록 더 매달리고 귓속에다 온갖 고약한 말들을 다 쏟아부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기분을 상하게 하고, 불평하게 하거나 혹은 아주 심한 분노에 사로잡히도록 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내면의 투덜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옛날에는 무조건 때려잡으라고 했습니다. 마귀들이 보낸 것이니 구마기도를 한다거나 자기 육신에 매질을 하는 등 자학적 방어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호르스트 코넨은 이 내면의 투덜이들이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일부라고 했습니다. 마치 가족 중에 부모 속을 썩이는 문제아와 같은 존재란 것입니다. 따라서 이 내면의 투덜이는 문제아를 다루듯 해야지 마치 남의 집 자식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투덜이가 나의 전체가 아닌데 마치 전체인 양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서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붙이고 대화하게 되면 거리감이 생기고 그것이 나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굴을 들이대면서 다른 사람 잘못을 들춰내고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때는 설득을 해보고, 안 되면 말 안 듣는 아이를 혼내듯 야단을 치라고 합니다. ‘조용히 해라’, 혹은 ‘그러려면 나가라’ 등등….

 

그렇게 문제아 가르치듯 해야지, 없애버리려 하면 자칫 자학적 신앙생활을 하게 될 위험이 높습니다. 내면의 투덜이는 아주 귀찮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자기착각에 빠지기 쉬운 인간을 겸손한 상태에 머물게 해주는 순기능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는 마시고 말 안 듣는 아이 하나 키우는 마음으로 천천히 데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평화신문, 2011년 7월 3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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