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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진출 75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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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9-15 ㅣ No.426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진출 75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성경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새로 태어나도록 노력해야


- ‘한국교회와 사회 안에서의 재속프란치스코회’를 주제로 마련된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75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이 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국가형제회는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75주년을 맞아 8일 오후 1시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지하성당에서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2010년 이후 매년 하반기에 마련하고 있는 학술심포지엄의 세 번째 주제는 ‘한국교회와 사회 안에서의 재속프란치스코회’.

이날 심포지엄에는 장익 주교와 성염(요한보스코) 전 주교황청대사가 강사로 나서 각각 한국교회와 사회 안에서의 재속프란치스코회에 대한 심도 깊은 강연을 펼쳤다. 강연에 앞서서는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첫 번째 회원이었던 장면 박사의 신앙적 삶을 다룬 ‘신앙인 그 빛과 소금의 길, 장면’(평화방송 제작)을 시청했다. 다음은 강연 요약.


한국교회 안에서의 재속프란치스코회 - 장익 주교
사회 · 교회 안에서 말이 아닌 삶으로 사랑을 드러낼 수 있도록 기도하길

 
한국진출 75주년을 기념으로 매일의 회개와 쇄신, 형제적 친교에 힘쓰고자하는 재속프란치스코회의 결심은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작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뜻인 것 같다. 이를 바탕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면모를 나름대로 해석하며 ‘한국교회 안에서의 재속프란치스코’ 주제 강연을 대신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가난은 무엇일까? 근원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삶이란 작고 겸손되며 어린이처럼 되어야 진정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75주년 혹은 700주년이 되었더라도 원천에 닿지 않는다면 아무리 확장하고 발전을 해도 그 길을 잃고 만다. 흔히 우리 시대를 두고 ‘천진을 잃은 시대’라고 말한다. 지식과 과학이 발전한 사실 자체만으로는 훌륭하지만 이 모든 관점이 인간에게 있음을 볼 때, 인간은 자만심에 빠져 자신의 순수성을 잃고 말았다. 지식은 많지만 지혜가 없고 사랑이 없어져, 진정한 행복에 대한 길도 점차 잃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불안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의 마음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과 자성을 통해서 변화할 때 도로 순진해질 수 있다. 나의 모순도 알고 삶에서 이런저런 일을 다 겪으면서도 단순해지고 맑아지는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뚜렷한 양면성을 가진 성인이다. 한편으로는 밝고 명랑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말도 못하는 어둠에 잠겨서 정말 쓰라리게 고통을 당하셨다. 특히 말년에는 수도회가 커지면서 당초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고통스러워 하셨다. 아무리 하느님께 요청을 드려도 답이 없었다. 길이 안 보였다. 완전한 암흑의 시기를 프란치스코 성인을 보냈다.

영혼이 다 찢어지는 시련 속에서 성인은 기쁨과 평화를 되찾았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당시 실패한 사람이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프란치스코 성인을 깨달았다. 또한 깨달음을 삶으로 살아 내셨기에 그 영성이 800년이나 지속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엄청난 쇄신과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그것을 고수하면서 고집 센 집단이 생겨버린다. 역사 속에서 이런 일들은 계속 반복된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200~300년을 이어가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딕토 성인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은 오랫동안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정신이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성이 갖고 있는 원천적 힘과 계속적인 쇄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본질상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교부들은 말했다. 한 교부는 “교회는 구원받으려고 모인 죄인들의 모임”이라고 하고 또 다른 교부는 “교회는 정결한 창녀”라고도 했다. 놀라운 표현이다. 아무리 훌륭한 것도 계속 새롭게 하고 원천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미사 중 ‘평화의 인사’를 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으로 내어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에서 기인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십자가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작고 겸손하게 일생의 삶 한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사랑으로 내어주는 가난을 통해 예수님과 프란치스코 성인을 닮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이것이 재속프란치스코회의 정신이자 본래의 모습이다. 부단히 스스로를 살피고 성경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쉴 새 없이 새로 태어나도록 노력해야한다. 사회와 교회 안에서 말이 아닌 삶으로서 사랑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한다. 


한국사회 안에서의 재속프란치스코회 - 성염 전 주교황청대사
프란치스코 성인은 주님 사랑 터득한 순간 만물에서 주님 모습 발견하는 경지에 올라

 
사회 안에서의 재속프란치스코회를 살펴본다고 했을 때 ‘사회’는 ‘세속’이라는 말처럼 들려 부정적 느낌을 준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산다미아노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 만물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했다. 이렇게 되면 사회, 세속이라는 단어도 우리게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 안에서의 재속프란치스코회’ 강연을 풀어간다.

사회 안에서의 프란치스칸 위상을 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유혹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줄은 선 사람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통을 겨께 되리라 예상하게 된다. 그런 것은 예수님의 유혹 사화(루카 4,1-13)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는 동안 자신이 누군가를 깨닫는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성령이 내려오고, 메시아로서의 사명이 들려온다. 이후 광야에 가서 메시아로서의 할 일들을 생각하는데, 그것이 ‘광야에서의 유혹’에 다 담겨 있다. 광야에서 만난 악마는 예수님에게 세 차례의 유혹을 한다. 첫 번째로 돌을 주고 빵을 만들어보라 하고, 두 번째로는 세상을 모두 주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성전 꼭대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수는 첫 번째 유혹에 대해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순교자들을 보더라도 굶어 죽어가면서도 먹을 것에 유혹당하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문제에 있어서 박사다. 성인은 동료들을 데리고 가난한 부인에게 찾아가 합동 결혼을 요청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나를 구원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회 안에서의 프란치스칸의 기본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유혹은 ‘성속 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임에도 불구하고 죽은 나자로를 다시 살리셨을 때, 다들 두려워하고 겁에 질렸다. 이것은 한편으로 이데올로기의 가면이라고 볼 수 있다. 성과 속이 분리돼 있는 세상에서 프란치스코는 사회로부터 배타 당하는 한센병 환자들을 끌어안아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벗어던졌다.

교회는 ‘사회적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정치’다. 정치야말로 사회적인 사랑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고 교회는 설명한다. 교회의 가르침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교황 선거할 때 추기경들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앞에서 “나를 영원히 심판하실 분 앞에서 이분을 택했습니다”하고 투표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했는가 안 했는가는 하느님과 본인만 알뿐이다.

세 번째 유혹은 성전에서 뛰어내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내용이다. 교황은 사회교리를 가르치면서 이것을 ‘신심주의’라고 말했다. 9월 6일부터 9일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애큐메니컬 회의가 열리고 있다. 그 주제는 ‘지구상의 삶’으로, 지구에서 우리 인류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터득하는 순간, 만물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지에 오른다. 모든 사물을 사랑하게 됐고, 형님, 누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세 번째 유혹에 대해 프란치스코 성인은 ‘태양의 찬가’로 대답한 것이다. 한센병 환자들을 끌어안고 나아가서 자연과 모든 미물을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우리게 전하는 메시지는 크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회칙을 발표할 때마다 환경 문제는 꼭 거론하고 있다. 교회는 자연에 대해 인간이 지배자가 아니라 청지기임을 가르친다. 이것도 프란치스코 성인 이 알려준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2년 9월 16일,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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