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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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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2-01 ㅣ No.556

한국교회사연구소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다산, 서학과 만남 통해 위대한 학문적 업적 이뤄


다산(茶山) 정약용(요한, 1762~1836). 영세와 배교, 회심의 삶을 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맞아 천주교회도 그의 삶과 신앙, 서학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이사장 염수정 대주교)는 11월 23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다산 정약용과 서학 및 천주교와의 관계'를 주제로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심포지엄을 갖고, 8시간에 걸쳐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다산의 학문적 업적을 기렸다.

심포지엄은 △ 다산 정약용과 서학/천주교 관계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다산의 천주교 신앙 문제를 중심으로(원재연) △ 다산의 상제관과 서학의 상제관(김치완) △ 마테오 리치와 다산 정약용 철학의 거리 ; 다산의 지적 배경을 통해 본 「천주실의」의 쟁점들(백민정) △ 서학의 아니마론과 다산의 심성론(정인재) △ 천주교회의 유교 제례 금령과 다산의 상제례관(최기복 신부) 등에 관한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서울대교구장 겸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 염수정 대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우리 천주교회는 다산 선생께서 서학과의 만남을 통해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아울러 그러한 만남이 이어져 한국사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역사적 비극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심포지엄에서 조광(왼쪽에서 여덟 번째) 연세대 석좌교수 사회로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다산 신앙과 학문, 분리 연구해야

원재연(하상 바오로) 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다산 정약용에 대한 서학 또는 천주교와 관련된 논의를 조선 후기→1945년, 1945→1970년대, 1980→1990년대, 2000년→현재까지 네 시기로 나눠 조명하고, 신앙인으로서 다산과 다산의 학문적 업적을 분리해 연구하는 것이 다산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 등장하는 다산의 저술 「조선복음전래사」를 근거로 다산이 만년에 천주교 신앙을 회복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여항덕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받고 선종했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란을 개괄했다.
 
원 실장은 "다산의 내면적 사상(사고)과 그의 삶(실천)의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연결시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위론적으로 말하면 당연히 일치된다는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산학술재단에서 추진하는 다산 저술의 정본화도 중요하지만 다산의 일문(逸文, 일부만 전해지는 글)을 최대한 조직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그 안에서 미공개 사료가 상당수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다산의 상제는 이신론에 가까워
 
김치완(프란치스코) 제주대 교수는 다산의 상제관과 서학의 상제관을 비교 분석, "다산이 설사 신앙생활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의 상제(上帝)는 결코 그리스도교의 천주(天主)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다산의 상제가 존재론적 실재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게 오늘날의 공통된 시각이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다산의 상제는 성경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계시나 기적 등을 부정하며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이성적 진리에 한정시킨 근대 서양의 이신론(理神論)과 가까운 존재"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다산과 보유론적(補儒論的) 서학의 '천(天)-상제' 관념 연구는 기존 호교론적 관점이 아니라 철학적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산사상, 시대에 대한 사상적 대응
 
'마테오 리치와 다산 철학의 거리'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백민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연구교수는 다산은 초년부터 서울 경기지역에 유포된 서학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그의 철학체계는 중국 성리학과 양명학, 조선 주자학, 청대 고증학, 일본 고학 등의 학풍이 유기적 양상으로 혼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따라서 "다산 철학은 전통사상과 외래 사유 간 지적 분열과정을 거쳐 형성된 중요한 사상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못 박고 "18세기 세계사 변화를 염두에 둘 때, 정약용 철학은 동아시아 변방 지식인의 시대에 대한 사상적 대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자학 비판하고 성기호설 제창

정인재 서강대 명예교수는 '서양의 아니마(Anima)론과 다산의 심성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서양철학에 수용된 아니마를 중국에서 한자로 영혼 혹은 영성으로 번역한 것은 천과 인을 연결해 주는 것이 영(靈)이라고 여겼고 뒤에는 인간만이 갖는 초월적 능력인 사유 추리능력을 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산은 주자학의 심성론을 비판하고 중국에서 미처 발전시키지 못한 서학을 조선 유학과 융합해 새로운 유학, 곧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제창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그의 성기호설은 인간 존재를 신과 형이 묘하게 합해 인간을 이룬다는 신형묘합(神形妙合)의 존재라고 본다"며 "혼삼품설이 식물과 동물, 인간을 생혼과 각혼, 영혼이라고 한 것은 다산의 인성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 "마음을 심장[形]과 영명[神]으로 구분한 것도 서학 인성론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으며, 다산의 독창이라고 말하는 권형(權衡)이라는 개념도 서학에 흔적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유교상제례 근본은 살리되 현실에 맞게

성균관대 석좌교수 최기복 신부는 '천주교회의 유교제례 금령과 다산의 상제례관'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다산은 제사금령을 단호히 거부했으며 천주교에 대해서도 거듭 배교를 선언한다"며 "그에게 상제례는 인간 윤리 도덕과 상제 섬김의 바탕이 되는 효도의 실천적 표현이며 백성을 구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불가결의 신성 의례였다"고 지적했다.

최 신부는 "그러면서도 다산은 전통 상제례를 그대로 고수하지 않은 채 근본정신은 살리면서도 표현 양식은 현실을 참작해 시의에 맞게 쇄신하려 했다"며 그의 상제례는 △사체 치아 사이에 놓는 쌀과 조가비, 주옥 등 반함(飯含) 폐지 △혼백(魂帛) 폐지와 신주(神主)로서 명정(銘旌) 사용 △묘지를 파기 전과 하관 전, 묘제 때 토지신에 올리는 후토제(后土祭) 배척 등 전통제례 개혁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기조강연 : 다산의 사천학과 천주교 교리의 활용(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

'다산의 사천학과 천주교 교리의 활용'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금장태(토마스 아퀴나스) 서울대 명예교수는 과학기술과 천주교를 포괄하는 서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다산의 경학을 '사천학(事天學)'이라는 새로운 경학 체계로 파악한다.

그래서 금 교수는 다산이 만년에 천주교 신앙을 지켰는지, 지키지 않았는지 여부보다 다산 사상에 내포된 천주교 교리의 영향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역설한다. 다산은 유교 경전의 해석에서 천주교 교리의 영향을 받아 핵심 개념인 '천(天)-상제(上帝)'와 '심(心)-성(性)'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주자학의 의리론적(義理論的) 경학을 넘어 사천학으로서 새로운 경학을 제시했으며, 이는 경학사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주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자학이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불교가 아니듯, 다산의 경학은 서학 및 천주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지만 천주교는 아니라고 그는 주장한다. 다산의 경학은 천주교 교리를 흡수함으로써 유교가 지닌 가능성을 새롭게 계발해냈고, 이를 통해 태어난 다산의 사천학은 당대에 유교 경전과 천주교 교리가 가장 깊은 차원으로 교류한 성과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다산의 사천학은 유교 사상사에서 가장 창조적인 업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유교경전 해석에 활용됐던 천주교 교리의 빛은 한국교회사에서도 순교 역사를 넘어 사상적, 문화적 교류 차원을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평화신문, 2012년 12월 2일, 오세택 기자]


(재)한국교회사연구소,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 심포지엄


실학의 집대성자로, 다산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체계를 통해 교회 안팎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산 정약용의 가치를 교회 안에서 제대로 체화시키기 위해서는 호교론적 관점을 뛰어넘는 시각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울러 우리나라 사상사에 자리잡고 있는 다산에 올바로 접근해 자양분을 취하려면 보다 신중한 학문적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내용은 (재)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가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기념해 ‘다산 정약용과 서학 및 천주교와의 관계’를 대주제로 11월 23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제기됐다.

그간 교회 차원에서 다산 정약용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조명이 이뤄져 왔지만 이날 행사는 교회의 틀을 뛰어넘어 전통 인문학인 문·사·철(文史哲, 문학·역사·철학) 분야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다산학 연구의 지평을 새롭게 하며 교회 안팎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다산의 사천학(事天學)과 천주교 교리의 활용’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다산의 경학에는 여러 면에서 천주교 교리와 일치하는 관점이 드러나지만, 동시에 여러 면에서 차이점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면서 “다산의 사상에서 천주교 신앙의 자취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려는 견해도 무리한 것이지만, 천주교 교리의 모든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도 무리하다”고 평가했다.

금 교수는 나아가 “다산이 유교경전의 해석에 활용하였던 천주교 교리의 빛은 한국교회사에서도 개인 신앙의 순교사를 넘어 사상적·문화적 교류의 차원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며 교회의 틀을 넘어서는 학문적 접근을 제안했다.

조광(이냐시오) 연세대 석좌교수는 “틀 안에 고정시켜 매달리기 보다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다산의 사상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다산의 경우 철학적 입장에서 서학을 취사선택해 나름의 철학체계를 세웠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다산의 정신과 학문적 성취가 오늘의 현실에서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교회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시야의 확장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마련하고 학제간 교류의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

정인재 서강대 명예교수는 ‘서학의 아니마론과 다산의 심성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다산은 서학의 영향 하에서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양자를 종합하여 동아시아 유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면서 “다산의 서학은 철학적 요소와 종교적 요소를 종합한 점에서 위대하다. 따라서 제한된 시야로 그의 학문체계에 접근하면 오히려 다산의 진면목을 볼 수 없게 된다”며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기섭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는 “좀 더 개방적이고 창의적이며 발전적인 방향에서 다산을 연구하고 나누기 위해서는 가톨릭도 호교론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철학적 관점에서 다산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한국교회사연구소,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 심포지엄 개최

서학 · 유학 종합 · 해석 … 유학의 새 길 연 정약용


한국교회사연구소는 교회 안팎의 인문학 분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정약용과 서학 및 천주교와의 관계’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재)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가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기념해 ‘다산 정약용과 서학 및 천주교와의 관계’를 대주제로 11월 23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은 파편적으로만 알려져 온 정약용의 면모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 자리였다.

유네스코가 국내 인물로는 최초로 2012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한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와의 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고 한국 천주교회 초기 역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면서 천주교 신앙이 조선 후기 사상에 미친 영향을 살피는 데 초점이 맞춰진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 역사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아온 교회의 위상을 돌아보게 한 장이기도 했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는 기존에 이뤄져온 교회사적 접근의 틀을 뛰어넘어 교회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사·철(文史哲, 문학·역사·철학) 등 전통 인문학 분야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해 다산 정약용을 둘러싼 학문의 가능성을 돌아보게 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이날 행사에서 인사말을 통해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 2)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상충할 듯 보이는 다양한 주장들도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교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교회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며 연구자들 사이의 적극적인 소통과 학제간 연구를 당부했다.


기조 강연 / 다산의 사천학(事天學)과 천주교 교리의 활용 - 금장태(서울대학교 명예교수)

20대 청년기에 천주교 신앙의 새로운 세계관에 심취했던 정약용의 의식 속에서 천주교의 여파가 쉽게 지워지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산이 형체가 있는 ‘천’과 주재자로서 ‘상재’의 의미를 확실히 구별해 놓으려 한 의도는 주재자로서 실재 존재가 ‘상재’이지 ‘천’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으며 이 점에서 「천주실의」에서 제시된 마테오 리치의 의도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산은 유교 경전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자신의 경학적 근본 전제를 ‘천-상재’를 섬기는 신앙적 의식으로 정립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하늘을 섬길 것’(實心事天)을 역설하며 사천학(事天學)을 정립했다.

다산은 ‘인’을 ‘남을 향한 사랑’이라 해석하면서 그 사랑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넘어 이웃과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확장되며, 치자(牧)의 백성에 대한 사랑이 강조된다. 특히 백성을 다스리는 자의 신앙적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다산은 천주교 교리의 영향을 받아 유교경전을 새로운 빛으로 해석함으로써 주자학의 의리론적 경학을 넘어 ‘사천학’으로서 새로운 경학체계를 제시했다. 다산은 유교와 천주교의 두 축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사상적 물결이 충돌하는 역사적 시점을 살면서 그 합류의 가능성을 찾아 더욱 큰 사상사의 물줄기를 열어 주었다.


제1주제 / 다산 정약용과 서학/천주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다산의 천주교 신앙 문제를 중심으로 - 원재연(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혼자서 한문 서학서를 보면서 가톨릭 교리를 익힌 다산의 가톨릭 교리지식상의 한계점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다산이 당시 가톨릭 교리와는 어긋난 유교식 상제례를 거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가톨릭 신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산의 내면적인 사상(사고)과 그의 삶(실천)의 문제는 당연히 일치되어야 하고 연구자는 이 관점 하에서 논지를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제2주제 / 다산의 상제관과 서학의 상제관 - 김치완(제주대학교 교수)

다산이 천주교를 신앙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상제(上帝)는 결코 그리스도교의 천주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그의 상제가 존재론적 실재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산의 상제는 서양 근대의 이신론(理神論)과 가까운 존재로 볼 수 있다.

한국교회가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요청에 절절히 응답하려면, 믿음의 성조들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현실과 미래로 초점이 옮겨져야 할 것이다.


제3주제 / 마테오 리치와 다산 정약용 철학의 거리 : 다산의 지적 배경을 통해서 본 「천주실의」의 쟁점들 - 백민정(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다산의 철학체계는 중국 성리학과 양명학, 조선 주자학, 청대 고증학, 일본 고학 등의 학풍이 유기적 양상으로 혼재된 것이다. 「천주실의」 등에 대한 다산의 독해는 오히려 자신의 관점을 투사해 만들어낸 의도적인 오역처럼 보인다.

다산의 철학은 18~19세기 조선에 유입된 새로운 다양한 조류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내적인 자기분열, 즉 유교 지식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전통사상과 외래사유 간의 지적 분열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중요한 사상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주제 / 서학의 아니마론과 다산의 심성론 - 정인재(서강대 명예교수)

영혼이라는 말은 마테오 리치가 서양의 아니마(anima)를 처음으로 번역한 이래 예수회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것이다. 서학의 영혼론은 사유하는 인식의 주체가 마음이 아니라 뇌에 있다는 사실이다.

다산은 서학의 아니마론과 원시유학을 결합하여 자기의 성기호설을 주장했다. 그는 서학의 영향 하에서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양자를 종합하여 동아시아 유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

주자학의 심성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성기호설을 제출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했다.

다산은 중국에서 미처 발전시키지 못한 서학을 조선의 유학과 융합하여 새로운 유학을 창조한 문화적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제5주제 / 천주교의 유교 제례 금령과 다산의 상제례관 - 최기복 신부(한양대학교 석좌교수)

다산과 천주교와의 관계를 조상 제사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제1기 신해교난 이전(1762~1790), 제2기 신해교난에서 신유교난까지(1791~1801), 제3기 유배시기(1801~1818), 제4기 해배(解配) 후 말년(1819~1836) 등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다산은 천주교회의 제사 금령을 단호히 거부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는 충실히 따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제례 문제에서 볼 때 다산은 200년 앞을 내다보고 처신한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2월 2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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