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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행위자-관찰자 차이, 어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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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0-25 ㅣ No.874

[심리학이 만난 영화] 행위자-관찰자 차이, 어느 가족

 

 

법적으로는 범죄 집단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노부요’. 자신을 자주 찾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 남자의 이름은 ‘오사무’. 하지만 이 여자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노부요는 오사무와 함께 남편을 죽인다. 부부 행세를 하던 이들은 버려진 남자 아이를 주워 와 좀도둑질을 시켰다. 마트나 문방구 진열대 위의 물건에는 주인이 없다고 가르쳤다.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집에서 배울 수 없는 애들이나 가는 곳이라며.

 

아파트 1층 베란다에서 여자 아이가 혼자 놀고 있다. 이들이 데려온 아이였다. 두 달쯤 지나자 이 아이에 대한 뉴스가 올라왔다. 실종된 아이였다. 이들은 다 같이 실종 뉴스를 보았지만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찾지 못하게 머리 모양을 바꾸고, 이름도 바꿔 불렀다.

 

한 노인이 있다. 부부로 행세하는 남녀와 두 아이에게 잠자리를 내 준 노인이었다. 노인이 타는 연금은 이들의 주된 생활비로 쓰였다. 어느 날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노인의 장례식은 물론 사망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신을 암매장하고 노인의 체크 카드로 연금을 인출해서 썼다. 법적으로 이들은 범죄 집단이었다, 그것도 아주 질이 안 좋은.

 

 

시신을 집에 묻은 진짜 이유

 

노인의 죽음을 숨기고, 시신을 자기들이 사는 집에 묻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사이코패스’일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추론한다. 이 과정을 귀인(歸因)이라고 한다. 행동의 원인을 어디에다 돌릴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귀인은 사회적 정보 처리의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행동이나 사건이라도 귀인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귀인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이 달라진다.

 

만일 노인을 집에 묻은 이유가 이들이 악마적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귀인하면, 이들을 사회로부터 최대한으로 격리시켜야 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노인을 집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고 귀인하면, 오히려 이들이 안타깝게 여겨질 수도 있다.

 

 

행위자-관찰자 차이

 

다른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귀인할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이라는 내적 요인에 귀인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자신의 행동의 원인은 주로 상황이라는 외적 요인에 귀인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행위자와 관찰자 사이에서 발견되는 행동 원인 추론의 차이를 ‘행위자-관찰자 차이’라고 부른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게 장소에 도착한 당사자(행위자)는 자신이 늦은 이유를 일찍 출발했지만 오늘따라 차가 많이 막혔기 때문이라고 ‘상황’에 귀인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정시에 나와서 기다린 상대방(관찰자)은 행위자가 늦은 이유를 불성실하기 때문이라며 ‘성격’에 귀인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가 옆 나라의 군사 위협 때문이라며 자국의 상황에 귀인한다. 하지만 옆 나라 처지에서는 상대 국가가 매우 호전적인 성향을 갖기 때문이라고 귀인한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 또는 행동의 원인에 대한 귀인의 차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개인이나 국가 간에 갈등을 촉발시킨다.

 

 

나쁜 결과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서?

 

행위자-관찰자 차이가 유발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행위자와 관찰자의 시야에 주로 보이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할 때는 그의 상황보다는 주로 그 사람을 보게 되기에, 주의를 기울였던 행위자로부터 사건의 이유를 찾게 된다. 그래서 관찰자인 우리는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그들이 품는 내적 속성의 결과물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 반면, 행위자의 시야에는 주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다.

 

행위자-관찰자 차이 때문에 사회적 약자가 놓인 상황에 눈길을 주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관찰자들은 나쁜 행동과 좋지 않은 결과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불행의 원인을 그들에게 둔다. 가난한 자들은 게으르고, 무능력하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가난은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귀인 양식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그들의 불행이 내가 속한 사회 시스템의 책임이 아니며, 더 나아가 공동체의 구성원 가운데 하나인 나의 책임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행위자-관찰자 차이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불행에 심리적 거리를 두며 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심리적으로는 가족

 

노인을 집에 묻은 두 남녀는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8년 작 ‘어느 가족’의 아빠와 엄마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이 너무도 따뜻한 사람들로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심지어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관객은 이들이 잡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선택과 행동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고레에다 감독이 이들과 사건을 둘러싼 상황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노부요의 남편은 가정 폭력을 일삼았다. 남편의 폭력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노부요는 살인을 저질렀다. 법원에서도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오사무는 노부요가 일하던 가게를 자주 찾던 단골손님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인 남자. 마음을 의지할 곳 하나 없던 둘은 부부처럼 살기 시작했다. 남자 아이는 부모가 도박장의 주차장에 버리고 간 아이다. 그냥 두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데려와 함께 살았던 것이다.

 

여자 아이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날 아파트 1층 베란다에 늘 그렇듯 혼자 있었다. 부모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 집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따뜻한 음식이라도 먹이려고 아이를 데려와 밥을 먹인 뒤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집에서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며. 아이의 몸에는 상처가 있었다. 폭력의 흔적이었다. 여자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이유다.

 

이들은 법적으로는 가족이 아니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가족이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노인을 암매장한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 심리적 가족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인도 이해할 것이다. 노인도 자신들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산 속에 누워 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좀도둑질로 연명하는 이 가족에게는 노인의 연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해 보였다.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연금을 받지 않으면, 이 가족은 생존할 수 없었다.

 

 

영화의 힘

 

관객은 영화 속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찰자다. 따라서 행위자-관찰자 차이에 따르면, 관객은 주인공들의 행동의 원인을 그의 성격이라는 내적인 요인에서 찾을 가능성이 높다. 영웅은 영웅적 속성을, 악마는 악마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가족’에서 두 남녀 행동의 원인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면, 이들은 파렴치하고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악마에 가까운 인물이다. 절도와 살인, 유괴, 암매장. 양심이나 도덕은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자들로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어느 가족’은 관찰자인 관객이 상황을 보도록 만든다. 놀랍게도, 관객은 이 가족에 공감하게 되고 심지어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영화라는 매체는 우리를 심리적으로 더 성장시키는 힘을 가진다. 일상에서는 쉽게 외면하던 상황이라는 정보를 관찰자인 관객이 주의를 기울여 보게 하는 데서 그 힘이 나온다. 그래서 너무도 명백하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사실, 곧 나쁜 행동과 결과는 나쁜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쁜 상황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다시 일깨워 준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 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10월호, 신재용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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