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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세계] 천주교와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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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12 ㅣ No.467

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공개대학 지상중계 - 천주교와 정교회

정교회, 성경과 성전의 권위 인정...고대 동방전례 그대로 보존


최근 미국 복음주의 교파에서 발표한 '2009년도 세계 종교인구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69억 2815만 명 중 그리스도교 교세는 22억 7172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정교회 교세는 2억 5000만 명으로 전체 그리스도교 교세 중 10%를 차지했다. 한국에서야 정교회 교세가 3000명 미만으로 극히 미약해 그 역사나 교리, 의례, 조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교 전체 역사를 통틀어 그 비중은 결코 적잖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여행 이후 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 일대엔 5대 교회가 자리를 잡았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교회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 시리아 안티오키아 교회, 로마 교회 등 4대 교회가 우선 설립됐고, 로마제국 수도가 비잔티움(현 이스탄불)으로 옮겨지면서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영향력을 확대했다.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다섯 교회에 총대주교좌를 공인, 이들이 주변 지역 교회를 이끌며 자립적으로 고유한 전례와 관습을 발전시키는 길을 터놓았다. 5세기부터 시작된 교회 대분열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각각 사용하면서 변화가 발생한 전례언어 문제, 동방교회의 성상 파괴와 함께 빚어진 갈등에 이어 신성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을 둘러싼 정치적 분란이 원인이었다. 마침내는 1053년 교황 레오 9세와 체룰라리우스 총대주교가 서로를 파문하면서 교회 대분열이 공식화됐다.
 
이후 정교회는 적극적 동방 선교에 나선다. 슬라브족 선교로 864년 불가리아, 988년 키예프 러시아가 개종했고, 1220년에는 세르비아교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세력에 함락돼 정교회도 그들 수중에 들어가자 러시아는 세 번째 로마, 즉 로마제국 후계자로 자처하며 콘스탄티노플 교회에서 독립된 러시아 정교회를 이뤄 발전했다.
 
현재 세계 정교회에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세계 모든 정교회 가운데 최고 권위를 지니지만 다른 총대주교와의 관계는 대등하다. 정교회 4대 총대주교청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과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청,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청과 예루살렘 총대주교청으로, 고대엔 4대 총대주교청에 속해 있으면서 자치권을 행사하다가 모스크바와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루지아 총대주교처럼 총대주교구가 된 경우도 있다. 정교회 한국대교구는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청 뉴질랜드 대관구에 속해 있다.
 
교리상 특징을 보면, 정교회는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성경과 성전(聖傳)의 권위를 인정한다. 다만 천주교에선 구약성경이 46권인 데 비해 정교회는 에즈라1ㆍ2서와 마카베오서를 분할해 총 49권이다. 또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하느님은 본질에서 한 분이지만 위격에서 삼위라는 의미를 담아 '성삼자' 교리를 신봉한다. 또 연옥의 존재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교리로 정하지는 않았다.
 
또 의례상 특징을 보면, 서방과 같이 칠성사를 보존하지만 십자성호 긋는 법처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세례와 견진 때 초대교회 관습대로 침례를 세 번 한다. 또 세례 후 즉시 주교가 아니라 일반 사제가 견진을 집전하고, 곧이어 양형 영성체를 한다. 이는 어린 아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고해는 고해실이 아니라 지성소 앞 성화상 벽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고, 율리우스 역법을 쓰기에 부활과 성탄 등 교회력 날짜가 다소 다르다.
 
조직상으로도 9세기 포시우스 총대주교 시절에 완성된 「동방교회법전」을 토대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교회들로 구성돼 있다. 주요 성직은 주교와 사제, 보제(천주교회의 부제)로 이뤄져 있다.
 
두 교회는 이처럼 교리와 의례, 조직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서로 신학과 전례, 영성 전반에 대해 연구할 가치는 있다. 특히 천주교회가 라틴 교부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면, 정교회는 그리스 교부들이나 비잔틴 신학자들의 영성에 대한 연구에 치중했기에 천주교회는 고대 교부들과 중세 비잔틴 신학의 영성과 성과를 섭취할 필요가 있다.
 
또 입체 성상을 배격하고 그 대신에 평면 성화상, 곧 이콘을 발전시켜 예술적으로도 높은 성취를 이뤘을 뿐 아니라 영적 훈련 차원에서도 탁월한 위상을 정립했다. 그리스도 신비에 대해 묵상할 때 이콘은 훌륭한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천주교회도 이를 배격하지 않는다.
 
1982년 페루 수도 리마에서는 세계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의 결실로 「리마예식서」가 채택돼 발간됐다. 그 이후 정교회 전례와 성만찬예식은 개신교 예배 갱신에 추동력을 제공했다. 고대 동방전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정교회 전례는 천주교 전례혁신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도 연구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평화신문, 2011년 11월 6일, 조현범 박사(토마스,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정리=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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