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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룸 - 문이 열리면 더 이상 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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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27 ㅣ No.946

[영화 속 신앙 찾기] 문이 열리면 더 이상 ‘방’이 아니다

 

 

여섯 식구가 한방에서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 나는 내 방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나만의 공간이 매우 절실했던 그때의 방은 내게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영화 ‘룸’(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을 보면 누군가에게 ‘룸’, 곧 방은 자유가 아닌 감금의 의미, 그것도 끔찍한 폭력과 존재 부정의 의미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 그야말로 ‘소우주’임을 목격하게 된다.

 

 

반인륜적 실화에 토대를 두다

 

엄마 조이(브리 라슨)와 아들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은 세 평이 조금 넘는 작은 방에 산다. 아니 감금되어 있다. 칠 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이 작은 방에 갇힌 당시 열일곱 살 소녀 조이는 이제 스물네 살이 되었고, 그 사이 아들 잭을 낳았다. 조이에게 잭은 그녀가 이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는 유일한 희망이다.

 

잭이 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 모자는 서로 의지하며 산다. 일주일에 한 번 납치범 닉이 장을 봐주고 드나드는 게 전부인 이 좁은 방에서 조이와 잭은 가짜를 진짜라고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잭이 커가면서 더 이상 비좁은 방에 가두어 둘 수 없고, 또한 닉이 잭을 위해 하거나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은 우려가 커지자 엄마 조이는 잭을 바깥세상으로 내보내기로 결심한다.

 

이 영화는 캐나다 작가 엠마 도노휴가 쓴 소설 「룸」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소설의 기본 토대는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프리츨 사건인데, 요제프 프리츨은 친딸을 이십사 년 동안이나 지하 방공호에 가두어두고 자식을 일곱이나 낳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08년 딸이 낳은 첫째 아이가 혼수상태에 빠지자 병원에 데려갔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의사가 신고해서였다. 이 참담한 사건은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다.

 

영화는 납치와 감금, 가족 성폭력과 출산, 탈출과 같은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영화는 이처럼 무겁고 자극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를 선정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지양한다.

 

영화가 선정성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도입한 장치는 바로 잭의 해설과 ‘시점 쇼트’(등장인물의 시점으로 보는 장면)이다. 영화는 잭의 해설을 통해 다섯 살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아이의 해설이라 해서 단순히 천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잭은 아이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 그 우주의 충만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좁디좁은 방에서만 살아 바깥 ‘진짜 세상’을 알지 못하는 잭에게 이 좁은 방은 그대로 훌륭하고 멋진 우주이다. 이 우주에는 엄마 조이와 탁자, 설거지대, 가짜 거북이와 뱀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엄마 조이는 잭이 언제까지나 이 ‘가짜 세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이는 잭을 탈출시킬 결심을 하고 탈출방법과 대처행동을 잭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양탄자에 싸인 시신으로 위장하여 잭을 세상으로 내보낸다. 잭은 난생 처음 ‘진짜’ 하늘과 ‘진짜’ 나무를 본다. 아이의 시점 쇼트로 보이는 세상은 높고 컸다.

 

경찰의 도움으로 잭은 갇혀있던 창고에서 엄마 조이도 나오게 한다(조이가 갇혀있던 방은 창고를 개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탈출이 목적일 때의 시나리오는 이 지점이 절정이고, 그 다음부터 이야기를 정리하는 흐름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룸’은 여기까지가 전반부이고 후반부에서는 인물들의 세상 적응기를 다룬다. 오히려 영화의 진정성은 후반부에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납치범 닉은 전반부에 잠깐 그 모습이 나오는 정도이고, 그가 재판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 외에 그에 대한 정보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영화의 목적이 참담한 범죄에 대한 단죄나 처벌에 있기보다 범죄의 피해자가 어떻게 희망을 찾아가는지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는 또 다른 ‘감옥’

 

방 바깥으로 나온 조이와 잭에게 세상은 오히려 낯설고 두려운 곳이다. 언론은 두 사람을 쫓아다니고,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조이의 부모는 이혼을 했고 아버지는 쉽사리 잭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이는 칠 년 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이미 세상은 변했고 변해버린 세상에서 (가족까지 포함하여) 조이는 당혹스러워한다. 조이의 당혹감은 방에서 잭과 함께하던 행동을 부인하거나 배척하고(엄마 가슴으로 파고드는 잭을 뿌리치는 행동 같은), 잭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과 담담하게 대처하는 어머니에 대하여 신경질적인 비난을 퍼붓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조이의 행동은 조급함에서 비롯한다. 방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줄 알았고, 자신이 잃어버린 칠 년 세월의 간극을 메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또 다른 ‘감옥’이었다.

 

세상의 시선은 조이 모자에게서 어떻게든 ‘비정상성’을 찾아내고 자신들과 분리해서 보려 한다. 조이는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면서 범죄의 피해자인 자신이 오히려 아들 잭을 끔찍한 환경에 방치한 무책임한 엄마로 비난하는 시선이 있음을 감지하고 절망하여 급기야 자살을 시도한다.

 

조이는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고, 잭은 혼자 남아 세상과 마주한다. 외할머니 집에서 ‘진짜 개’를 본 잭은 ‘진짜 세상’을 실감하고 서서히 외부세계에 마음을 연다. 새 친구도 만난다. 그리고 조이가 돌아온다.

 

잭과 조이는 함께 방을 보러간다. 조이에게 방은 진저리나는 고통의 공간이었으나, 잭에게는 비록 가짜 세상이었을지라도 그의 소우주였던 곳이다.

 

다시 찾아간 방은 이제 예전같지 않다. “문이 열려있으면 더 이상 방이 아니예요.”라는 잭의 대사는 진짜 세상을 경험한 그에게 방은 더 이상 그의 우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잭은 방과 작별한다. 이제 조이와 잭은 그들의 진짜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희망은 ‘감금’되지 않는다

 

‘룸’은 세상에서 격리된 모자의 세상 적응기이자 희망에 대한 영화이다. 조이 모자가 놓인 감금이라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희망은 ‘감금’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더 허핑턴 포스트’의 지적대로 “우리의 삶이 더 크고 빛날 수 있게 해주는 영화”가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같은 믿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는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그래서 회의와 냉소에 빠지기 쉬운 어른보다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상하며 이를 굳건히 내면화하는 어린이가 더 신앙인의 자세에 가깝다는 뜻이 아닐까?

 

적어도 ‘룸’에서 진정 강인한 존재는 엄마 조이가 아니라 어린 아들 잭이다. 잭은 자신에게 주어진 ‘감금’이라는 최악의 환경조차 자신의 놀이터로, 우주로 받아들이고 상상했다. 그것이 비록 ‘가짜’일지라도 의심하고 부정하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다. 그래서 잭은 방 밖의 세상에 더 빨리 적응하고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조혜정 가타리나 -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이다.

 

[경향잡지, 2016년 7월호, 조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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