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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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상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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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51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18) 상실감

 

 

Q. 저는 제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면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 없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려도 속상하고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그런 저를 보고 언니는 늘 핀잔을 줍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것인 게 없고 언젠가는 모두 내 손을 떠날 것들인데 그렇게 미련이 많아서 세상살이 어떻게 하겠느냐고요.

 

언니는 늘 기도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사는, 마치 수도자 같은 분이어서 제가 뭐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니처럼 살기는 싫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 이런 마음은 믿음이 약하거나 세상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언니 말처럼 제가 세속적이라서 그런 것인가요?

 

 

A. 자매님과 언니가 가진 콤플렉스는 다른 것 같습니다. 언니는 수도자 콤플렉스가 심한 분인가 봅니다. 진정한 수도자가 아니라 수도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심한 분이란 뜻입니다.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분들은 세상을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구분하고 자신을 거룩한 삶 안에 살게 하려고 세속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억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분열증적 삶을 삽니다. 또 자신들 삶에 대한 무의식적 자부심이 강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 삶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와 비슷한 콤플렉스가 바리사이 콤플렉스이지요.

 

자신들은 순수한 선택받은 사람들이란 콤플렉스,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과는 대화가 되지를 않습니다. 왜냐면 대화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언니와 자매님은 서로가 싫어하는 심리적 요소를 갖고 있기에 대화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매님이 무엇인가를 상실했을 때 마음 아파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합니다. 그런 때 올라오는 감정을 상실감이라고 하지요. 상실감에 심하게 빠지면 많은 사람이 보이는 공통적 증상이 있습니다. 우선 마음이 마치 풍랑을 맞은 배처럼 돼서 하루에도 여러 번 속이 뒤집히는 괴로운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속상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요. 어떤 사소한 일일지라도 반복적으로 곱씹고 또 곱씹느라 심리적으로 탈진상태에 빠질 때가 잦습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화를 잘 내거나 다른 사람 욕을 심하게 하는 것, 넋이 나간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는 것, 뭐든지 먹어치우려 하거나 아예 먹기를 거부하는 것, 너무 많이 자든가 아예 잠을 안 자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의존적인 것, 종교적 믿음에 대해 심한 의심과 거부감을 갖고 하느님과 교회를 욕하고 거부하거나 반대로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종교생활에 깊이 빠져드는 것 등 다양합니다.

 

이렇게 상실감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은 갈망에 극심한 고통, 다시 말해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고통을 겪게 하고 사람을 정신적으로 표류하게 하고 일상적 행위의 범주를 넘어선 모습을 보이게 하기에 주위 사람들은 상실감에 대해 거부감을 갖습니다. 게다가 급한 마음으로 그 감정을 추스르게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다 잊는다’ 혹은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하거나 종교를 가진 분들은 모든 것을 주님 뜻으로 알고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을 위해서 해주는 이런 조언들이 오히려 심리적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즉, 억압된 상실감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묻혀 있다가 언젠가는 다시 올라와 집요하게 사람의 영혼이 무너질 때까지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실감은 회피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정면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이런 때 대처방법은 조용히 앉아서 내가 잃어버린 것의 목록을 만들어놓고 하나하나 아픔을 느끼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자기연민에 빠지는 작업이 아니라 반대로 상실감이 우울증으로 진행하는 것을 차단하는 작업입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을 반복적으로 점검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실감이 약해지고, 정서적 안정감이 찾아오고 문제해결 능력이 높아져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간이 겪는 이런 괴로운 상실감을 온몸으로 겪어낸 분은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아들의 수난과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시면서 엄청난 상실감과 괴로움을 겪어내신 성모님은 회피하지 않으시고 상실감에 정면으로 대적하셔서 천상의 모후, 마음 아픈 이들의 어머니가 되셨던 것입니다.

 

자매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잃고 마음이 아플 때는 성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시고,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길을 그분에게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평화신문, 2011년 9월 11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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