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는 남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52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19)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는 남편

 

 

Q. 제 남편은 개인사업을 합니다. 그런데 너무 착해서 거절도 못하고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는데, 성당에 다니면서 그런 성향이 더 강해졌습니다. 어느 날에는 어두운 표정으로 집에 왔기에 이유를 물으니 자기가 어떤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했는데, 상대방이 “천주교 신자는 다 그러냐”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쳐 민망하고 부끄러웠다는 것입니다.

 

천성이 착해서 말 안 듣는 직원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일 안 하는 직원을 내보내지도 못하는 제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남편은 걸핏하면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셨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으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수도자 같은 남편이 좋기도 하지만 때로는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A. 많은 신자들이 교회기관이나 신자는 어떤 사람이건 받아주고 용서해주고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자가 직원을 해고하거나 교회기관이 불청객을 내보내려 하면 ‘어떻게 교회가 그럴 수 있나’ 혹은 ‘신부 또는 천주교인이 그럴 수 있냐’는 등 비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 했는데 당신들은 왜 예수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느냐’면서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 신자들은 무슨 죄인이나 된 듯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도 못하고 된통 비난을 뒤집어쓰는 모욕을 당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때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은 사실 신심이 깊어서도, 착해서도 아닙니다. 소위 ‘착한 신자 콤플렉스’에 걸려서 그런 것입니다. 착한 신자 콤플렉스란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아무도 비난할 수 없고, 주님처럼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 살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신자들은 손해를 보거나 사기당할 위험성이 높고, 또 실제로 그런 분들을 대상으로 사기 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천주교인들은 어떤 사람이건 다 받아주고 참아줘야 할까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도 때로는 공동체와 맞지 않는 사람들은 내보내고 거리를 둘 수 있음을 마태오 복음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18장 15-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무조건 용서하고 받아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성격장애인들입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 때 ‘성격이 좋네 안 좋네’ 하거나 혹은 ‘마음에 맞네 안 맞네’ 하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은 사람 성격이 모난 돌 같아서 생기는 갈등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격장애는 다릅니다. 성격장애란 어린아이처럼 구는 퇴행현상이 없다는 점에서 정신병과는 다르고, 자기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기보다 다른 이들을 힘들게 한다는 점에서 신경증과도 다릅니다. 성격의 특정 부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을 성격장애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성격장애인들에게 관대하지 않은 것처럼 대응하는 것일까요? 성격장애인들이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인내력이 약하고 비적응적이며,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애정능력이 부족한 데다 무의식적으로 교묘하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면서도 자기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면서 공동체를 분열시키기에 교회는 이들을 받아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은 방법으로 사랑을 베풀 수는 없습니다. 사랑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는 일반적 방법과 다른 방법을 사용할 때도 있어야 하고, 때로 감당키 어려운 사람일 경우에는 피할 줄 알아야 지혜로운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양처럼 순하되 뱀처럼 슬기로운 자인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1년 9월 25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65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