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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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악몽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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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53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20) 악몽을 꿉니다

 

 

Q. 저는 요즈음 밤마다 악몽을 꿉니다. 어떤 때는 제가 다시 군대 훈련소에 들어간 꿈을 꾸고, 어떤 때는 예전에 크게 사고가 난 꿈을 꿔서 잠을 깨고 나면 식은땀이 흥건할 정도입니다. 이 근래에 제가 하는 일이 잘 안 돼서 마음이 매우 힘든데 흉몽마저 계속 꾸니 잠을 자기가 겁날 정도입니다.

 

제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어떤 분은 신병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마귀가 유혹하는 것이니 밤샘기도를 가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어느 쪽도 마음이 끌리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이런 힘겨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A. 형제님이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아마도 과거에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이 가진 생존기제 중에 기억이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을 머리가 좋다고 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으면 ‘노인네가 됐다’, ‘머리가 나쁘다’는 등으로 말하곤 합니다.

 

기억력이 좋으면 그것을 토대로 자기인생을 잘 만들어 가는데 기억력이 좋지 않으면 별로 기억할 것이 없어서 인생살이가 밋밋해지고 삶의 범위가 축소되니 그런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기억력을 좋게 하려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 있습니다. 절대로 꺼내고 싶지 않아서 마음속 깊이 묻어버린 기억, 생각하면 할수록 무안하고 창피한 기억, 끔찍한 사건에 대한 기억 등을 많은 분들이 ‘그냥 묻어버리면 되지’ 하고 없는 척 모르는 척 하면서 살려 합니다. 소위 회피행위를 하지요. 

 

예를 들면 온종일 잠만 잔다든가 반대로 쉴틈 없이 일만 한다든가 혹은 술이나 게임 등 중독성 행위를 한다든가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들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혹자는 ‘잠이나 자자, 자고 나면 나아질 거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잠자는 동안 의식은 쉬어도 잠재의식은 여전히 활동해 악몽을 꾸게 하기 때문입니다. 꿈속에서 그 당시 상황이 재현돼 식은땀을 흘리면서 깨기 일쑤란 것입니다. 바쁘게 지내면서 쉴틈을 안 갖는 것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표면 아래로 좋지 않은 기억을 밀어 놓으려고 하면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다시 튀어 오르려 하고 결국 우울증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중독성 행위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동안에는 잠시 안도감을 가질 수 있겠지만, 가혹한 현실이 닥치면 다시 도망치라는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회피행위는 사람을 속이고 유혹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생살이에서 도망자가 되다 보면 여러 가지 심각한 부작용이 생깁니다. 우선 회피행위는 더 큰 두려움을 만드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무력감에 시달리며 살게 합니다.

 

가끔 매스컴에서 산중에 홀로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그들 대부분은 사회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회복이 안 된 분들입니다. 이런 분을 방송에서는 마치 도인 취급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피하고 사회활동을 피하면서 살다 보면 갈수록 적응력과 내적 힘이 약해져서 점점 더 두려움이 커지고, 심리적 상처회복이 더뎌지며 나중에는 재기불능 상태가 됩니다.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드로 사도의 방법을 본받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 교회의 수장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아주 치명적 약점, 부끄러운 기억이 있으십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버린 기억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마도 보통사람 같으면 숨기려고 하거나 혹은 사람들을 떠나 숨어 살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베드로 사도는 공공연하게 당신의 부끄러운 기억을 고백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 기억을 덮어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기억을 묻어버리는 것이 더 힘든 일이란 것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주님을 부인하고 우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힘들어한 기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라 꽤 긴 시간이었을 것이고, 그 시간에 수많은 고뇌를 하다가 당신의 부끄러운 기억을 드러내기로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런 선택을 우리는 용기라고 합니다.

 

용기란 두려움 없는 상태에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두려움을 무릅쓰고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기억이나 끔찍한 기억에 직면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문제 해결을 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발자국씩 디디면서 마음 안에 철옹성처럼 쌓였던 불안감이 조금씩 허물어짐을 느끼고, 시간이 가면서 힘겨운 감정에 적응되고 둔감하게 되며 점차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형제님도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또 진행 중에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에 놀라지 말고 천천히 자기 마음 안을 탐색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으실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1년 10월 2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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