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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게으른 남편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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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54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21) 게으른 남편을 어떻게…

 

 

Q. 남편은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가 얼마 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오랫동안 일을 했으니 이제는 편하게 살고 싶다면서 매일 방에서 뒹굽니다. 한동안 그런 남편이 이해가 가서 그냥 마음 편히 쉬라고 하고, 아무런 잔소리나 간섭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의 게으름이 갈수록 심해져 요즘은 아예 소파에 누운 채 발가락으로 가족들에게 무슨 일을 시킵니다.

 

물론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온종일 소파에 누워 TV만 보기에 날로 살이 쪄서 점점 더 흉한 모습이 돼가고 있습니다. 제 남편을 어찌해야 좋을까요? 그냥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둬야 할까요?

 

 

A. 사람이 가진 가장 간절한 욕구를 들라면 단연 편안함의 욕구가 손꼽을 만할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당연히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결혼하는 이유 역시 총각들은 편안한 밥을 먹으려 하고, 처녀들은 엄마 잔소리 안 듣고 편하게 살려는 것이지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두는 이유는 부엌에서 빠져나오려는 것이고, 혼자 사업하는 사람이 직원을 두는 이유, 본당신부가 보좌신부를 두는 이유도 다 편안하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간절하다 보니 편하게 사느냐 불편하게 사느냐가 사람의 행 · 불행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난센스가 벌어지곤 합니다. 종일 일하고 고생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벌을 받아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는 경향까지 생겼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뒤 노동을 하게 된 것을 처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아담이 노동을 통해 철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호의호식하다가 벌을 받아 일을 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 사고방식인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집 간 딸이 친정에 오면 손부터 본다고 합니다. 손이 하얗고 통통하면 시집 잘 갔다고 하고, 손이 부르트고 갈라져 있으면 시집을 잘못 가 고생한다고 합니다. 나라에 대한 평가도 유사합니다. 살기 편안한 나라, 모든 것이 구비된 나라는 선진국이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후진국이라는 선입견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교리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당은 아무 일도 안 하고 호의호식하는 곳이며, 지옥은 힘들게 고생하는 곳으로 묘사하는 것도 이런 심리가 바탕에 깔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성대로 편하게만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좋은 것인가? 영성가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편안한 삶에는 병적 중독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일시적 편안함은 휴식과 재충전 기회를 주지만 지속적 편안함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기는커녕 병들게 하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어 몸이 편하려고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온갖 도구만 사용한다면 당연히 심한 비만증이 오고, 당뇨나 고혈압이란 것들이 줄줄이 따라올 것입니다. 심리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편하고 싶다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만 만나면 융합이란 현상이 생깁니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이고 네 마음이 내 마음’이란 식으로 서로 건강한 거리감이 없는 질척한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렇게 죽이 맞아 다니는 것이 지나치면 그 집단은 유치하고 배타적인 그룹을 형성해 심리적 퇴행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즉 패거리로 몰려다니면서 다른 사람 흉이나 보고 소문이나 만들어 내는 삼류집단 의식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본당마다 좋지 않은 소문으로 신자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는데 그 원인을 찾다 보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 이런 삼류집단 현상입니다. 그럼 이런 편안함 중독증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약간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심리적 건강을 위해서는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일지라도 만나 같이 지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는 식사자리건 기도하는 자리건 끼리끼리 앉지 못하게 지정석을 정해주기도 합니다. 몸도 좀 불편하더라도 자꾸 움직여줘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입니다.

 

산에 가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바위밖에 없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그 뿌리가 굵고 넓게 뻗어 있습니다. 어떻게든 불편한 환경에서 살아나려는 생존의지가 그런 뿌리를 만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편한 환경에서 순탄한 인생을 사는 분들은 그 마음의 뿌리가 얕고 약해서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합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살려면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는 ‘불편의 영성’까지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불편하게 살면 되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고, 지나치게 편안함에 묻혀 살다가 중독되지 않도록 예방차원에서 가끔은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평화신문, 2011년 10월 9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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