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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루페 외방선교회 한국 진출 50주년2: 다방면에서 선교활동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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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8 ㅣ No.417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한국 진출 50주년 (2) 본당 · 특수사목 등 다방면에서 선교활동 전개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는 50년 동안 한국에서 다양한 사목활동을 펼쳐왔다. 진출 초기에는 본당 사목에 주력하였으나, 점차 다양한 특수 사목 분야에 선교사를 파견하며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게다가 과달루페회 선교사들은 가는 곳마다 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꽃을 피웠다. 이는 선교지역의 변화에 민감하게 준비하고,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낮은 자의 모습으로 찾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과달루페회 한국 진출 50주년 특집에서는 한국교회 안에서 성장하고, 새로운 선교의 지평을 연 과달루페회의 발자취를 소개한다. 


한국교회 안에서의 성장

- 1999년 과달루페 50주년을 축하하며 봉헌한 기념미사 후 한국지부 신부들의 모습.


1983년 1월 6일부터 29일까지 과달루페회 제4차 총회가 멕시코 소신학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국지부장 민호 프란치스코 신부와 이 히지노 신부가 참석했다. 나 로돌포 신부가 총장으로 재선된 총회에서 민 신부는 “한국은 아직도 많은 선교활동이 필요하며, 한국의 선교 사업에 본부의 적극적 지원이 요구된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민 신부의 의견을 증명하듯 과달루페회 한국지부에는 사제 파견 요청이 계속 이어졌다. 해남과 원동, 쌍촌동본당에 사제를 파견해달라는 광주대교구의 요청에 따라 하창우 사베리오 신부를 원동본당에, 추규응 신부를 쌍촌동본당에, 김제인 요셉 신부를 해남본당 주임으로 임명했다.

멕시코 본부에서도 도정익 가브리엘, 길재선 살바도르 신부를 비롯해 박영철 핵톨, 유진호 에우제니오, 페르난데스 로페스 신학생 등을 한국에 파견, 선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듬해 5월에는 아시아 지부 첫 지역회의를 순천 본부에서 개최했다. 한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 국가에서 사목하는 모든 사제들과 대표, 지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는 각 지역의 선교 활동에 보고가 이뤄졌다. 또한 전문화된 활동 성소, 사목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한국에서의 활동이 자리잡아갈수록 과달루페회는 선교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1987년 1월에 열린 제5차 총회에서도 지부장 남영선 요셉 신부는 “한국은 지금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며 “선교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한국 선교단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별히 한국지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울 합정동 숙소를 리모델링하고, 지부 활동의 장기계획도 내놓았다. 이 모든 것들은 한국의 상황과 필요성을 분석해 작성한 내용들이었다.

한국지부는 기존 본당 사목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95년에는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와 5년 계약을 갱신했다. 계약 내용은 쌍촌동, 소록도, 매곡동본당을 교구에 인계하고, 광주 평동, 해룡 등의 본당 사목을 맡기로 했다. 이보다 앞선 1992년에는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을 통해 한국지부는 1999년 인천교구에 인계할 때까지 대부도본당을 맡게 됐으며, 초대 주임으로 원 헥톨 신부를 임명했다.


새로운 지평을 열다

과달루페회 한국지부는 한국에서의 선교활동 중 대부분의 시간을 광주대교구에서 보냈다. 선교 사제를 가장 많이 파견한 곳도 광주대교구였다. 덕분에 당시 교구장이었던 윤공희 대주교와는 각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1990년에 열린 과달루페회 월례 피정 지도 신부를 윤 대주교가 맡기도 했다.

- 서강대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대학생 사목을 담당했던 안재윤 안토니오 신부와 서강대 학생들.(1998)


윤 대주교는 이 자리에서 “이제 외국 선교사는 특별한 사목적 활동을 더 계발해야 한다”며 “한국 가톨릭교회는 점점 견고해지고, 성소가 풍부하며 본당도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사제와 평신도들이 외국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사회는 물론 가난한 나라를 지원하며 다양한 선교 경험을 쌓아가고 있기 때문에 과달루페 선교사들도 이제 새로운 선교 영역을 찾아 나서야한다”고 당부했다.

과달루페회는 윤 대주교의 뜻에 따라 새로운 활동 계획을 작성하고, 선교 사제들이 원하는 전문 분야로 파견하기 시작했다. 1997년 1월에 개최된 과달루페 제7차 총회에서 지부장 우진수 이냐시오 신부는 선교단 인원의 지속적 증원에 대해 본부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특수사목 활성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지부는 특히 초대 총장 에스칼란테 주교가 활동했던 중국 만주 지역에서의 활동과 사목 영역을 개척하려고자 했다. 2000년에는 선교 지역과 영역 개척을 위해 심 고라손 신부가 북한 접경 지역인 만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 지역은 메리놀 선교사들이 활동하던 곳으로 초대 총장 에스칼란테 주교가 선교하던 지역이다.

1995년 7월에는 까리따스 수녀회와 성가롤로 병원 사목을 맡기로 한 계약을 체결하고, 로마에서 보건 사목에 관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소선도 신부를 1998년 초대 원목 신부로 임명했다. 소 신부는 성 가롤로 병원에서 약 5년간의 사목을 마치고 비가톨릭적 환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울 시립병원에서 원목 활동을 시작했으며, 국립 의료원 가톨릭 원목실 위원이 됐다. 성가롤로 병원 원목신부 소 신부 후임으로는 나 로돌프 신부가 임명돼, 과달루페 선교사 중 원목 활동하는 사제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 과달루페회는 합정동 숙소를 리모델링하며, 지부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사진은 1994년 합정동 기숙원 축성식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이 축하 인사를 전하고 있다.


또한 특수 사목으로 양진홍 제랄드 신부가 서울 합정동 집 원장 및 절두산 꾸르실료 협력자 신부로 임명받았으며, 페루 노동자를 위한 사목을 맡았다. 안재윤 안토니오 신부는 서강대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생 사목을 담당하게 됐다. 동시에 한국교회 신자들을 대상으로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시도했다. 양 신부는 김 마우릴리오 신부와 함께 과달루페 성모 성지 안내서를 발간했으며, ‘과달루페 성모님’을 주제로 연구 주간을 실시하기도 했다.

한국 진출 이후 낮은 곳에 임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갔던 과달루페회 한국지부는 진출 40주년인 2002년에 특별한 사건을 마주하게 됐다. 그동안 멕시코 신학생들을 광주가톨릭대로 파견해 왔던 과달루페회는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의 요청으로, 광주 신학생들에게 멕시코 대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과달루페회 선교사들은 본당과 특수사목 등 다방면에서의 활동이 선교지역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주님의 사명에 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2년 4월 29일,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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