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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인천교구 시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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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6-01 ㅣ No.1378

인천교구시노드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시노드

 

 

“제가 12월 8일을 선택한 것은 이날이 교회의 근대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이날 성문을 열 것입니다. 교회는 이 공의회를 생생하게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로써 교회는 역사 안에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인 『자비의 얼굴 Misericordiae Vultus』 4항에 나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다. 50년 전의 교황인 요한 23세 교황은 교회의 쇄신을 위해 ‘바티칸의 창문’을 열었고, 50년 후의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교회의 쇄신을 위해 ‘교황 대성전들의 성문’을 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가톨릭교회가 ‘교회다움’을 식별하는 기준이자, ‘교회다움’을 완성해 나가는 틀이다. 그렇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미’ 끝났으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교회는 오늘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무엇인가?

 

교회사학자로서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가 교회의 가르침을 ‘현대인’의 일상 언어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또한 더불어 ‘교회의 소통방식’뿐만 아니라, ‘교회가 존재하는 방식’도 현 세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교황 요한 23세가 선택한 공의회의 단어는 바로 ‘쇄신 aggiornamento’이다. 이 쇄신의 자리에 인천 초대 교구장인 나길모 주교가 있었다. 나길모 주교는 공의회의 전 회기(4회기)를 참석한 몇 안 되는 한국 교부였다. 그만큼 그는 공의회를 통해 ‘세상과 대화하는 교회’의 모습을 직접 목격하였다. 이러한 체험은 인천교구 제1차 대의원회의(시노드)1)로 그 열매를 맺었다.

 

1995년 11월 교구장은 사제 전체 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시노드 개최 의사를 공식화하였다. 교구 설정 35주년이 되는 1996년, 사목교서를 통해 교구 시노드 개최가 선언되었다. 개최 선언 후 신속하게 추진 방법과 절차가 모색되었다. 이미 앞서 교구 시노드를 경험한 부산교구(1982-1984)와 대구대교구(1997-1999), 교구 시노드의 모범사례로 언급된 미국 볼티머어와 찰스턴 교구의 사례가 연구되었다. 1997년 2월 ‘인천교구 대의원회 준비위원회’(사제 29명, 수도자 7명, 평신도 25명)가 정식 출범하여 본격적으로 의제 선정을 위한 의견 수렴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용현5동 성당을 첫 표본 본당으로 선정하고 의견 수렴과 현실진단, 총회를 통한 미래 사목 방향의 확정 등의 ‘본당 시노드’ 전 과정을 시범적으로 실험하였다. 이어서 1998년 4월 14일부터 6월 19일까지 11개 지구별 표본 본당에서 ‘열린마당’(1차)이라는 총회 형식을 통해 본격적으로 의견을 수렴하였다. 10월부터 12월까지는 사목 영역별로(2차), 이듬해 2월부터는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 등 직분별(3차) ‘열린마당’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교구민들의 시노드에 대한 이해도와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사목헌장을 비롯한 4개의 주요 공의회 문헌을 중심으로 ‘공의회 학교’를 진행하였다. 두 차례에 걸쳐 총 600명의 학생이 수료하였다.

 

1999년 1월 ‘개막총회 준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16개 사목별 영역별 분과위원회와 중앙위윈회가 구성되었고, 836명의 대의원이 영역별로 배정되었다. 그해 6월 6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오후 2시 주안3동 성당에서 개막 미사와 함께 본회의가 시작되었다.

 

1) 시노드(synod)란 함께 모여 같은 목표를 향해 공동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함께 하는 여정’을 의미한다. 라틴어로 시노두스(synodus)라고도 한다. 시노드는 크게 교구 시노드와 주교 시노드로 나눌 수 있으며, 시노드는 특별기구와 자문기구의 두 가지 특성을 지닌다. [2021년 5월 30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인천주보 3면, 정호철 바오로 신부(역사위원회 위원, 국내연학)]

 

 

인천교구시노드 (2) 프란치스코 교황과 시노드

 

 

“이제서야 우리는 변화와 쇄신을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교구 시노드의 폐막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같이 용기를 북돋아 그리스도와 함께 희망과 쇄신을 향해 나아갑시다.” 이는 나길모 교구장의 시노드 폐막 연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1999년 6월 6일 개막 미사와 함께 시작된 본회의는 2000년 11월 19일 폐막 미사까지 1년 4개월의 과정을 거쳤다. 이 기간 동안 월 1회 이상의 분과위원회, 10회의 중앙위원회, 7회의 총회를 통해 16개의 영역별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들을 선별했다. 대의원들이 작성한 의안은 「인천교구 복음화 20년 계획 수립지침」과 함께 『최종문서』에 수록되었다. 대의원들이 제안한 실천 과제는 290여 개에 달했다.

 

시노드에 참여한 교구민의 수는 본회의 16개 영역 836명 외에 본당 총회 등에 참석한 인원(76개 본당의 사제, 수도자, 사목회, 구반장)까지 포함하면 약 9,000명에 이른다. 그 당시 실제 활동 신자수(6만 8천명)만 따지면 교구민의 약 13%가 시노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

 

『최종문서』는 시노드의 목적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 권고 『제삼천년기』에서 언급한 “새로운 복음화”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복음화를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현실을 새롭게 분석하면서 인간 삶에 대한 하느님의 관여를 동시대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복음적 언어”라고 정의한다. 20년 전 인천교구의 시노드에 대한 이해는 현재와 일맥상통한다. 「치빌타 카톨리카」는 2018년에 열린 세계주교시노드를 “미리 준비된 대답을 제공하는 제도”가 아니라 “질문하고 마음을 불타게 하는 말씀”으로 정의한다. 2019년에 열린 아마존 시노드의 사무총장 보좌였던 마리오 그렉 주교는 시노드의 전 과정을 통해, 사람들 안에 심어진 “말씀의 씨앗”과 “교회의 흔적”을 바라볼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10월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교육 중 “교회의 역사상 최초의 공의회인 예루살렘 회의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에페 4,15)을 찾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빛을 비춥니다. …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보낸 편지는 공동합의성을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 이것이 바로 공동합의성이며,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최종문서』는 시노드를 “사목학교”라고 정의했으며, 나길모 교구장은 시노드 최종문서의 가치를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 살아계신 말씀”이라고 정의하였다.

 

시노드란 ‘말씀을 통하여(per Verbum)’ ‘함께 걸어가며(Sinodale)’, ‘일치로(in Consensus)’ 나아가는 ‘신앙인들의 신앙감각(Sensus Fidelium)’에 기초한 ‘공동합의성(Sinodalitas)’이다.

 

서두에 나길모 주교가 이야기하였듯이 인천교구 1차 시노드는 준비이며, 시작이었다. 「인천교구 복음화 20년 계획 수립지침」에 따르면 2019년에서 2020년은 제2차 시노드를 개최하는 것이 목표로 되어 있었다. 바오로 6세의 말로 글을 마친다. “교회는 세상과 나누어야 할 대화가 있습니다.” [2021년 6월 13일 연중 제11주일 인천주보 3면, 정호철 바오로 신부(역사위원회 위원, 국내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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