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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토리노 수의(사본), 한국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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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04 ㅣ No.397

[특별기고] 토리노 수의(사본), 한국 오다 (1) 토리노 수의 기원


“토리노 수의, 예수의 파스카(수난 · 죽음 · 부활) 사건 보여주는 유물”

 

 

- 토리노의 수의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확대한 모습. 왼쪽이 수의 원본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수의를 촬영한 흑백 네거티브 필름 상태의 모습이다. 네거티브 필름 상태에서 예수님 형상이 더욱 또렷하다.

 

 

토리노의 수의 사본 전시회가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명동 1898 광장에서 열린다. 토리노의 수의 사본이 한국에 전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토리노의 수의에 관해 전시회를 기획한 문호영(예수의 성모수녀회 원장) 신부의 특별기고를 4회에 걸쳐 싣는다.

 

 

(1) 토리노의 수의 기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무덤에 묻히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는데, 그때 예수님 시신을 쌌던 수의가 있었다. 

 

요한복음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20,3-8)고 전한다.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아마포가 수의로, 복음서는 ‘신돈’(σινδων, Sindon)이라 불렀다. 이탈리아어로는 Sindone(신도네)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성 수의, 토리노의 수의, 예수님의 성의(聖衣)라고 한다.

 

‘토리노의 수의’라 부르는 것은 이 천이 현재 이탈리아 토리노의 세례자 요한 대성당에 보관돼 있어서다. 천 위에는 복음서에 기록돼 있는 대로 채찍질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형에 처한 예수님과 일치하는 인물의 앞ㆍ뒷모습이 아로새겨져 있다.

 

보통 수의(Shroud)라고 부르지만, 토리노의 수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시신에 입히는 옷이 아니고, 4.41mx1.13m 장방형의 한 장으로 된 세마포다. 마치 한 장의 침대 시트와 같다.

 

 

고통과 상처, 혈흔 고스란히 남아있어

 

- 토리노의 수의. 가로 4.41m, 세로 1.13m의 장방형 아마포 천이다.

 

 

토리노의 수의에선 사람 전신의 앞ㆍ뒷모습을 볼 수 있다. 수의를 사진 찍어 그 필름(Negative)을 보면 정확한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성 수의에는 예수께서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받으신 고통과 상처, 혈흔 등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특히 성 수의에 대해 아직 과학적으로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수의에 새겨진 예수님의 뚜렷한 형상이다. 예수님의 이 형상은 피 혹은 몸에서 나온 어떤 액체로 인한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가장 가능한 추측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몸에서 강렬히 뿜어 나오는 빛으로 생긴 형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주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한 초자연적인 현상(사랑의 선물)으로 추측한다.

 

 

예수 부활의 결정적 증거

 

토리노의 수의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예수님의 파스카(수난ㆍ죽음ㆍ부활) 사건의 과정과 결과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고, 특히 가톨릭 신앙의 근간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는 유물 중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성 수의가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드러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죽어 매장되면, 시신은 몇 년이 지나면 백골화되고 관이나 입혀 놓은 수의도 부패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 시신은 없는데 시신을 쌌던 아마포가 어떤 부패의 흔적 없이 깨끗이 보존됐다. 또한, 아마포의 표면에는 사람의 상처와 피 그리고 사람의 모습이 선명히 찍혀 있다.

 

이것은 시신의 부패가 시작되기 전 시신이 천과 분리됐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시신의 부패로 인해 수의가 얼룩지고 곰팡이 투성이가 됐을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짜’ 주장, 신뢰성 떨어져

 

성 수의가 이렇게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 수의의 가치를 격하시키고 싶은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와 증거로 성 수의가 진품이 아니고 가짜이며 중세 시대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이유와 증거들은 신뢰성이 대단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때때로 근거가 없거나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을 확인된 것으로 믿고 이를 인용해 성 수의가 진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 수의에 대한 단편적 정보나 지식을 가진 사람 중에는 성 수의가 이미 가짜라는 것이 증명됐고 또 그렇게 선포돼서 성 수의의 진위 논란은 이미 끝났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평화신문, 2016년 9월 4일,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수녀회 원장)]

 

 

[특별기고] 토리노 수의(사본), 한국 오다 (2) 토리노 성 수의의 진위 논란 (가)

 

“13세기 것” 주장은 신뢰성 떨어지는 오염부위 검사

 

 

- 레온치오 가르자 발데스 교수(왼쪽)와 그가 발견한 ‘리케노테리아’ 박테리아(오른쪽).

 

 

성 수의가 참된 예수님의 수의라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과 증거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는 성 수의에 대한 진위 논란과 상관없이 성 수의를 대단히 소중히 다루면서 2002년에는 성 수의를 새롭게 복원하는 작업을 수행했고, 중요한 계기가 있을 때 성 수의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2010년 일반 공개 때 성 수의를 보기 위해 토리노에 온 관광객은 250만 명에 달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성 수의 앞에서 기도하고 “이 장례용 천은 복음서들이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의 시신을 감쌌던 천”이라고 말했다.

 

2015년 일반 공개 때도 100만 명이 성 수의를 보고자 인터넷으로 신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수의 앞에서 “오, 주님, 자신의 십자가 무게에 억눌리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 안에서… 제가 지금 당신을 뵈옵게 하소서. 오, 주님, 저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당신을 증거하는 이콘이요, 신도네(성 수의)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성 수의가 가짜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1988년 실시한 탄소(C-14)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 결과 성 수의가 1260~1390년대의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동안 여러 과학자와 성 수의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먼저 탄소14 방사성 연대 측정에 있어 과정상 여러 가지 불법이 있어 실제로 정확한 측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째, 탄소14 측정을 위한 조건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결과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건은 모두 6가지였는데, 이 중 4가지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 둘째, 오염이 아주 많은 부분이 검사를 위한 표본으로 선택됐다는 점이다. 성 수의는 화재를 당했고, 물을 뒤집어썼으며 150회 이상 일반에 공개돼 대기에 노출됐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맨손으로 천을 쥐었다. 그런데 측정을 위한 표본을 사람 손이 제일 많이 가는 곳으로 선택했다. 또 나중에 확인해 보니 C-14 샘플이 채집된 부분은 16세기에 제작된 면을 섞어 원본 아마포와 구별되지 않도록 새로 짠 부분이었다(성 수의는 과거에 수선한 적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미국 로스 알라모스 국립과학연구소의 레이 로저스 화학 교수는 ‘샘플에 문제가 있었고, 성 수의에서 비정상적인 부분을 갖고 실험했으며 C-14 테스트 결과는 성 수의 본체의 나이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2005년 1월 「Thermochemicalactor」지에 발표했다.

 

그는 바티칸에 재조사를 공식적으로 요청했지만, 암으로 사망했다. 그 후 같은 연구소 동료들이 C-14 샘플 시료를 재실험해, 결국 1988년 행해졌던 C-14 측정은 신뢰도가 1% 미만임을 밝혀냈다. 

 

이와 함께 탄소14 측정 결과와 다른 정보들이 발표됐다. 1995년 5월 5일 캘리포니아 샌안토니오 대학 레온치오 가르자 발데스 교수는 성 수의 천 조각에서 ‘리케노테리아’라는 박테리아가 발견됐다고 했다. 이 박테리아는 사막의 바위와 모래 표면에 플라스틱 같은 코팅(원생체 코팅)을 만든다. 그 코팅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탄소 측정을 할 경우, 검사결과는 수백 년의 오차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기원전 1500년의 것으로 알려진 한 이집트 미라에 실험한 결과 코팅된 미라의 아마포는 탄소 연대가 서기 215년으로 1700년의 오차를 보였다. 따라서 박테리아에 의해 생긴 코팅으로 오염된 물질을 실험할 경우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근래에 적외선을 이용한 화학적 및 기계적 테스트와 과학 수사에 흔히 사용되는 라만 분광법(방사선 주파수를 측정하는 방법)을 사용해 성 수의 섬유의 연대를 측정해 봤더니 예수님 생존 시대(BC 4~AD 30)를 포함하는 BC300~AD400년 사이로 추정됐다. [평화신문, 2016년 9월 11일,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수녀회 원장)]

 

 

[특별기고] 토리노 수의(사본), 한국 오다 (3) 토리노 성 수의의 진위 논란 (나)

 

오른쪽 눈에 놓인 동전은 진실을 알고 있다

 

 

- 본시오 빌라도가 발행, 유통시킨 ‘렙톤’ 동전.

 

 

성 수의가 가짜라고 하는 주장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근거는 성 수의가 등장한 것은 14세기 중반이며, 그 이전에는 성 수의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 수의는 14세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사실로 알 수 있다.

 

 

1. 1193~1195년에 그려진 프레이 사본(Prey codex)은 성 수의를 보고 그린 것이 분명하고, 따라서 성 수의는 이미 그 이전에 존재했다는 뜻이 된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도서관에 있는 프레이 사본 27쪽의 그림에 성 수의에 나타나고 있는 몇 가지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가장 뚜렷한 것은 성 수의에 나타난 인물의 팔이 엇갈려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엄지손가락이 손 안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손에 못을 박으면 엄지가 손안으로 들어간다), 또 천을 조각한 기하학적인 무늬가 성 수의의 무늬와 같은 헤링본 무늬라는 것이다. 또 다른 특성은 천 위에 있는 ‘L’자 모양으로 난 구멍이다. 성 수의에는 이런 모양의 구멍이 4번 있다. 이것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분명히 성 수의를 보고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2. 1204년의 기록과 ‘애통하는 사람’의 이콘도 성 수의가 이미 오래전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1204년 콘스탄티노플의 십자군에 관한 기록에서 제4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로베르 디 클라리는 “발키르나의 성모 마리아 수도원에 우리의 주님을 감쌌던 아마포(신도네)가 매주 금요일 똑바로 들어 올려져(성 수의를 전시하는 일종의 의식) 우리 주님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정복 이후 그 천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기록했다.

 

- 프레이 사본.

 

 

또한, 그 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 유행했던 그림인 ‘애통하는 사람’의 이콘을 보면 엇갈린 팔과 숨겨진 엄지, 마치 부활하는 것처럼 상자 모양의 무덤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런 그림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이에 대해 역사가들은 성 수의가 분실되기 전 대중에 공개될 때는 통상 어느 상자에서 세워져서 펼쳐지는 방식으로 전시됐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애통하는 사람의 이콘이 그 당시 많이 유행했다는 사실에서 이미 1204년 이전에 성 수의가 존재했다는 설명이 된다.

 

 

3. 스페인의 오비에도에 있는 ‘수다리움’(수건 혹은 헝겊)

 

스페인의 오비에도에는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다리움’이 있는데, 크기는 83×52㎝이다. 재질 역시 성 수의와 같은 아마포다. 이 수다리움에는 많은 양의 혈흔 등 얼룩이 보인다. 수다리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무덤으로 옮겨지는 도중, 천을 이중 삼중으로 해서 입 등에서 역류하는 혈액과 허파에서 나오는 물을 막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무덤에 도착해서 시신을 수의에 눕혀 필요 없게 된 수다리움을 ‘말아서 다른 장소에’ 놓아두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개켜져 있었다”(요한 20,70).

 

이 수다리움의 피와 토리노의 성 수의의 피는 그 특성과 형태가 같다. 같은 AB형이고, 가시관에서 흘러나온 피와 이마 등의 핏자국 형태도 같다. 이 두 천을 서로 겹쳐보면 피의 형태와 핏자국의 형태가 일치한다. 이것은 두 천이 모두 같은 한 사람에게서 사용됐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수다리움은 공식 문서가 있어서 정확하게 5세기까지 그 존재가 입증된다. 그렇다면 성 수의도 이미 5세기에 존재한 것이 된다.

 

 

4. 성 수의 얼굴의 눈에 있는 동전

 

사람이 죽으면 묻기 전에 시신의 눈에 동전을 얹어 놓은 것이 유다인들의 관습이었다. 성 수의에는 오른쪽 눈에 동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 같은 사실은 1978년 ‘VP-8 분석기’를 통한 실험에서도 입증됐다. 이 동전은 본시오 빌라도가 기원후 29~32년에 발행했고, 29~36년까지 유통시켰으며, 팔레스타인이나 다른 지역에선 다시 발행된 일이 없는 ‘렙톤’ 동전과 일치한다. [평화신문, 2016년 9월 25일,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수녀회 원장)]

 

 

[특별기고] 토리노 수의(사본), 한국 오다 (4) 토리노 성 수의의 진위 논란 (다)

 

성 수의, 예수 부활 증거하는 가톨릭 신앙의 유산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보관 중인 납화 성상.

 

 

5. 시나이 산 기슭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에 보관 중인 납화 성상

 

비잔틴 미술품 중 기원 550년쯤에 제작돼 현재 시나이 산 기슭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에 보관 중인 납화 성상은 토리노 수의의 성상과 250군데나 일치한다. 법정에서는 45~60군데만 일치해도 동일 얼굴의 신원으로 확인한다. 예를 들어 왼쪽 눈의 작은 눈물, 입술의 튼 상처, 머리 근처의 꽃 모양 등이다. 이 성화는 당시 성 수의의 이미지가 널리 알려졌고 예수님의 모습으로 인식됐음을 말해 준다. 비잔틴 시대의 많은 성상 학자들은 6세기부터 자신들의 예술 작품에 사용했다.

 

 

6. 성 수의에 묻어있는 꽃가루와 꽃 이미지

 

꽃가루는 식물의 기관 중 가장 오래 남는 것으로 수천 년이 지나도 그 모양 그대로다. 그렇기에 꽃가루를 통해 식물의 종류ㆍ지역ㆍ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성 수의에는 약 58종의 꽃가루가 묻어있는데 17종만 유럽산이고 나머지는 팔레스타인이나 터키 남부산이다. 에뎃사와 콘스탄티노플은 터키 남부에 있다. 성 수의가 언젠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다. 또 13개의 꽃가루는 팔레스타인산으로 현재 이스라엘에서 자라는 식물과 같다. 만일 성 수의가 14세기 프랑스의 모조품이라면 성 수의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꽃가루만 묻어 있어야 한다.

 

성 수의에서 발견된 예루살렘에서 자라는 꽃들의 이미지.

 

 

또 성 수의에서 많은 꽃의 이미지가 발견됐다. 그중 28개의 특정한 꽃의 이미지를 상당히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데, 그 꽃들은 모두 예루살렘이나 그로부터 약 32㎞ 안에서 자란 꽃들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예수님 죽음을 애도하며 무덤에 예루살렘에서 자라는 여러 종류의 꽃을 뿌렸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런데 꽃의 이미지가 꽃을 꺾은 지 24시간에서 36시간 사이의 모습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시간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시간대와 일치한다.

 

 

7. 성 수의에 있는 십자가형의 형태가 로마 시대와 일치한다


로마 시대 채찍.

 

 

성 수의에 있는 십자가형의 형태를 보면 ① 매 맞은 자국의 크기와 형태 ② 옆구리 상처의 크기와 형태 ③ 못 박힌 상처의 형태가 로마 시대와 일치한다. 즉, 매 맞은 크기와 형태를 보면 로마 시대의 채찍(손잡이에 2~3개의 가죽끈이 달려 있고 그 끝에 작은 아령 모양의 금속이 있음)이 분명하고, 옆구리 상처의 크기나 모양을 보아 옆구리를 찌른 창도 로마 시대의 창이다. 못도 손목과 발목에 박은 것으로 보아 로마 시대에 행해진 형벌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성 수의는 로마 시대의 것이다.

 

 

8. 이 밖에 성 수의가 참된 예수님의 수의라는 것을 보여 주는 예는 다음과 같다.

 

① 성 수의 이미지는 중세 때의 방법을 이용해서는 재생할 수 없다.

 

② 성 수의 이미지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성 수의에 어떤 염료의 흔적도 없이 이미지가 찍혀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더구나 성 수의 이미지는 완전히 표면층에만 존재한다. 천의 탄수화물층까지만 착색(착색 두께가 머리카락 굵기의 1/10)돼 있다. 어떤 종류의 염료로도 이러한 수준의 착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③ 성 수의에 새겨진 네거티브 이미지는 성 수의가 진품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사진 촬영이 최초로 이루어진 해가 1800년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보다 훨씬 앞선 중세 때의 예술가가 명암이 피사체와 반대가 되는 이미지를 새길 이유가 없고, 또 그런 기법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④ 손목에 못이 박혔다는 사실이 성 수의가 진품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오늘이나 그 당시나 예수님 십자가는 못이 손바닥에 박힌 것으로 나온다. 만일 성 수의가 모조품이라면 그 당시 누구나 그랬듯이 손바닥에 못이 박힌 것으로 만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성 수의는 손목에 못이 박힌 것으로 나온다.

 

 

9. 맺음말

 

성 수의는 수난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형상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 준다. 즉, 성 수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파스카의 과정이며 결과를 잘 드러내 준다. 그러므로 성 수의에 대한 관심과 바라봄 그리고 묵상은 바로 파스카의 사건에 대한 관심, 바라봄이고 묵상이다. 우리는 성 수의를 바라보면서 인간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를 묵상할 수 있다. 특히 성 수의는 가톨릭 신앙의 근간이 되는 예수님 부활을 결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우리는 성 수의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2일,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수녀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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