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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이벽의 성교요지 등 위작 주장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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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28 ㅣ No.632

“이벽의 작품 ‘성교요지’는 가짜다”


수원교구 윤민구 신부,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통해 주장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이벽(요한 세례자, 1754~1785?)의 작품으로 알려져 온 ‘성교요지’(聖敎要旨)가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원교구 윤민구(손골성지 전담) 신부는 국내에 전해지는 한문본 성교요지 2종류와 한글본 성교요지 1종류 등 3종류의 성교요지에 대한 사료 비판을 통해 성교요지는 이벽이 쓰지 않았을 뿐더러 내용도 한국 교회 초기나 박해시기 천주교 신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가짜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천주교의 핵심 교리를 담았다는 뜻의 ‘성교요지’는 1967년 개신교의 고 김양선 목사가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성교요지’가 이벽의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 관련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윤 신부는 ‘성교요지’에 사용된 용어, 성서 관련 내용, 교리 내용 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 ‘성교요지’를 이벽이 썼다는 근거는 애초에 없었고 △ 본문에 초기 천주교 신자들과 박해시기 천주교 신자들이 사용한 성서 용어와는 다른 개신교 용어들이 가득했고 △ 성서 내용은 물론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읽었던 서학 관련 책들과도 맞지 않는 엉터리 내용으로 가득했다고 밝혔다.

윤 신부는 또 ‘성교요지’가 실린 문집 「만천유고」(蔓川遺稿)에 있는 또 다른 천주교 관련 글인 ‘십계명가’(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십계명의 각 계명을 운율에 맞춰 우리말로 노래한 글)와 이벽이 지었다는 ‘천주공경가’도 모두 가짜라고 밝혔다. 만천(蔓川)은 한국 천주교회 첫 영세자 이승훈(베드로)의 호로, 「만천유고」에는 이승훈을 비롯한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중요 인물들의 글이 들어 있다고 알려져 왔다.

윤 신부는 이 밖에 이벽이 죽은 지 60년 후에 정학술이라는 사람이 꿈에 이벽을 만나 대화한 내용을 기술했다는 「이벽전」과 일반 부녀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기술한 글로 이벽의 부인 안동 권씨의 작품으로 여겨져 온 「유한당 언행실록」도 가짜라고 주장했다.

윤 신부는 거의 3년에 걸쳐 작업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최근 국학자료원을 통해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성교요지/십계명가/만천유고/이벽전/유한당 언행실록은 사기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윤 신부가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에서 허위 또는 사기라고 주장한 작품들은 모두 1967년 개신교의 고 김양선 목사가 초기 한국 천주교 관련 자료라며 숭실대 측에 기증한 것들이다.

윤 신부의 이러한 주장과 관련,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는 19일 오후 2시 평화방송 빌딩 4층 교회사연구소 회의실에서 윤 신부의 저서 제목인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 성교요지ㆍ십계명가ㆍ만천유고ㆍ이벽전ㆍ유한당 언행실록은 사기다’를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열 예정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발표회에서는 윤 신부가 발표자로 나서고 서종태(전주대학교) 교수와 차기진(양업교회사연구소) 박사가 토론자로 참여한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13일, 이창훈 기자]

 

 

“‘성교요지’, 개신교를 아는 인물이 지어낸 위작”


윤민구 신부의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해설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책을 집필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윤민구 신부.


수원교구 윤민구(손골성지 전담) 신부가 이번에 책으로 발표한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별다른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천주교 관련 자료들에 대해 사료 분석이라는 비판적 잣대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벽의 ‘성교요지’에 대한 비판이다.


배경

김양선(1907~1970) 목사는 개인적으로 수집 소장해오던 자료들을 1967년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기증 자료들에는 천주교 관련 자료들도 있었고 그 가운데는 한국 천주교회 시작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이벽(요한 세례자, 1754~1785)과 첫 영세자 이승훈(베드로, 1756~17801)과 관련된 초기 천주교 자료들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대표적인 자료가 이승훈의 호 만천(蔓川)을 딴 「만천유고」(蔓川遺稿)였다.

이승훈과 그의 지인들이 쓴 글을 엮은 문집이라는 「만천유고」에는 이벽이 썼다는 ‘성교요지’와 ‘천주공경가’, 정약전(1758~1816)과 권상학(1761~?) 등이 지었다는 ‘십계명가’, 그 밖에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과 ‘경세가’(警世歌) 같은 천주교 관련 자료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회사학계에서는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성교요지’와 ‘천주공경가’ 등을 이벽의 작품으로 당연시하면서 교회사 관련 연구에 활용했다. 이 자료들에 대한 사료 비판이 필요하다는 일부 지적도 있었지만 유야무야됐다. 사료 비판은 역사학 연구에서 필수적이지만 이 점이 소홀히 여겨졌고, 윤 신부는 서강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성교요지’와 「만천유고」 자체에 대한 사료 비판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어떻게 분석했나

윤 신부는 「만천유고」에 나오는 한문본 ‘성교요지’와 이를 모본으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한글본 ‘성교요지’ 외에 「당시초선」(唐詩?選, 당나라 시에서 뽑아 모음)이라는 또 다른 문집에도 한문본 ‘성교요지’가 있는 것을 보고 이 세 종류의 ‘성교요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성교요지’에 나오는 용어와 본문 내용 자체 그리고 그 내용의 교리적 의미 등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윤 신부는 ‘성교요지’에는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박해 시기 신자들도 사용하지 않는 개신교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주목했다.

예를 들면 감람(橄欖, 올리브)ㆍ유태(猶太, 유다)ㆍ약단(約但, 요르단)ㆍ이새야(以賽亞, 이사야)ㆍ법리새(法利賽, 바리사이)ㆍ희률(希律, 헤로데)ㆍ아백(亞伯, 아벨)ㆍ방주(方舟, 궤)ㆍ이색렬(以色列, 이스라엘)ㆍ야화화(耶和華, 야훼) 같은 한자들은 모두 개신교 용어라는 것이다. 천주교 관련 한문 서적들에서는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윤 신부는 논증한다.

한글본 ‘성교요지’도 마찬가지다. ‘성교요지’에서는 올리브를 감람나무이라고 표현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오리와’라고 불렀다. 한글본 성교요지에서는 ‘노아’라고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1977년 개신교와 공동번역성서를 같이 사용하기 전까지는 노아가 아니라 ‘노에’라고 불렀으며 ‘방주’가 아니라 ‘궤’라고 표현했다.

나아가 이벽이 ‘성교요지’를 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성교요지’ 본문 어디에서도 이벽이 썼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제목 아래에 붙이는 부기(附記)에 이벽의 호가 나오는데 한자로 광암이 아니라 광엄이라고 잘못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당시초선」 한문본 ‘성교요지’에서는 이벽이 모아 편집했다고만 돼 있다.

그뿐 아니라 ‘성교요지’의 본문을 살펴보더라도 △초기 천주교나 박해 시대 천주교 신자들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구약성경 혹은 적어도 구약의 창세기가 번역된 이후에나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들 △천주교 교리와도 맞지 않는 내용들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는 대목들이 나온다고 윤 신부는 지적한다.

한 마디로 ‘성교요지’는 이벽이 쓴 것일 수 없고,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나 박해 시대 신자들을 위한 것일 수도 없다는 주장이다.

윤 신부는 ‘성교요지’ 외에 ‘십계명가’ ‘천주공경가’ ‘경세가’ 같은, 「만천유고」에 나오는 다른 천주교 관련 글들도 같은 방식으로 분석해 허구라고 주장한다.


누가 언제 왜 썼나

윤민구 신부는 여러 전거를 들어 한문본 성교요지는 아무리 빨라도 개신교 구약성경이 번역돼 소개되기 시작한 1906년 이후나 또는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온 이후 중국에서 들어온 개신교 한문성서를 보고 쓴 것으로 추정한다.

한글본 성교요지는 한문본을 바탕으로 했기에 이보다 더 빠를 수 없지만, 한글본 성교요지 말미에 나오는 부기(附記)를 근거로 1920~1930년대 이후에 쓰였다고 추정한다.

그러면 왜 가짜 ‘성교요지’를 썼을까. 윤 신부는 두 가지 점을 주목한다. 하나는 1925년에 로마에서 79위 순교자 시복식이 거행되면서 천주교 안에서 순교자들과 관련된 유물이나 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관심을 이용해 순교자들의 것임을 빙자한 사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성교요지는 따라서 개신교와 관련이 있는 혹은 개신교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인물이 지어낸 위서라는 게 윤 신부의 결론이다.


과제

한국사학연구소장 노용필(다니엘) 박사는 “역사학 연구에서는 사료 비판이 일차적이고 기본인데 최근 들어 소홀히 여겨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윤 신부님의 연구는 이런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신부의 이런 주장에 대한 검증 작업도 요청된다. 따라서 윤 신부의 새로운 주장에 대해 얼마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검증할 수 있느냐가 과제가 될 전망이다. 19일 교회사연구소에서 열리는 발표회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13일, 이창훈 기자]

 

 

교회사 자료 연구, 사료 비판이 선행해야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발표회에서, 「성교요지」 위작에 대한 의견 같이해


 

「성교요지」(聖敎要旨) 등 초기 한국 천주교 자료의 위작(僞作) 논란이 교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는 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 윤민구 신부가 최근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 「만천유고」(蔓川遺稿)나 「이벽전」(李檗傳), 「유한당 언행실록」(柳閑堂言行實錄) 등에 대한 사료 비판을 시도, 이들 자료가 ‘사기’라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본보 2014년 7월 13일자 제1273호 참조).

이에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는 19일 연구소 회의실에서 제182회 연구발표회를 갖고, 윤 신부의 주제발표와 차기진(루카)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장과 서종태(스테파노) 전주대 교수의 지정토론을 들었다.


위작 여부

학계에선 이들 저작이 위작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교회사학자들은 한결같이 위작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면서 “속이 후련해지는 결론”이라거나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도 검토를 한 뒤 위작으로 판단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차기진 연구소장은 지난 2003년께 시복시성주교특위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을 추진하다가 「성교요지」나 「이벽전」 「영세명부」「영세명장」 「영세명패」 「경신회 규범」 등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자료를 검토했으나 모두 위작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후에 편찬한 시복시성주교특위 자료집에는 하나도 인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종태 교수도 이들 자료에 대한 인용이나 연구는 대부분 1980년대 들어 문학 전공자들에 의해 이뤄졌는데 최근 들어 사학 쪽에서도 이들 자료를 인용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시점에서 이들 사료에 대한 비판을 해주신 것은 연구사적으로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조광(이냐시오) 고려대 명예교수도 토론을 통해 “이들 자료를 1970년 무렵에 처음 봤는데, 사료비판이 안 된 자료였다”면서 “역사학에서 사료비판이 안 됐다는 것은 자료로 활용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위작의 파장은

이른바 이벽의 작품이라고 주장돼온 「성교요지」나 ‘십계명가’ 등을 인용해 연구한 학자는 교회사학계든, 일반 역사학계든, 국문학계든 일부다. 다만 이들 자료가 위작으로 판정 나면서 이들 자료에 근거한 연구나 사료 분석은 바로잡아야 할 상황에 부닥쳤다.

조 교수는 이에 대해 “잘못된 자료는 언젠가 그 진실이 밝혀지게 마련이지만, 역사학적 입장에서 사료비판이 선행된 이후에 사료 분석이 위주인 문학 쪽에서 연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1983년에 한국천주교회에 대한 기원연구 논문에서 이들 사료에 대한 사료비판이 없었다는 점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후속연구를 하지 못한 건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아쉽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이벽이나 이승훈과 관련된 성지 개발은 이벽 등 초창기 교회지도자들이 내왕했던 지역인 것만은 틀림없기에 성지와 사료 문제는 연관 짓지 말고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향후 과제는

그렇게 오랫동안 위작 논란이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교회사학계에서 이들 자료에 대한 자료에 대한 사료비판을 시도하지 않은 건 큰 문제다. 또 교회사 연구가 ‘사료 비판도 없이 이뤄지는 연구’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목소리가 나온 데서 드러나듯 교회사 연구가 실증적으로 이뤄지도록 이른바 ‘신학적 판단’을 앞세우지 않는 풍토 조성도 절실하다. 또 이들 자료는 그 특성상 후대에 만들어지고 후대의 용어가 가필될 수밖에 없는 필사본인데, 만에 하나 이 필사본에 원 사료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있기에 추후라도 이들 자료에 대한 면밀한 후속 연구는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27일, 오세택 기자]

 

 

뿌리 째 흔들리는 한국 천주교회사


사학자들도 "윤민구 신부 「성교요지」 위작 주장" 지지

초기 교회사 연구 새 국면… 이벽 · 이승훈 시복 쟁점도

 

 

윤민구 신부(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가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성교요지/십계명가/만천유고/이벽전/유한당언행실록은 사기다-」를 발표한 후 점화됐던 교회사적 논란은 19일 오후 2시 서울 저동 한국교회사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공개 연구발표회를 통해 윤민구 신부의 주장이 참석 토론자들의 전반적인 동의를 얻음으로써 새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윤 신부는 이날 연구발표회에서 “50년 가까이 이어진 과오를 바로잡는데 앞으로 40~50년이 걸릴 것이고 지금 바로 「성교요지」 등과 관련된 교회 내 활동은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발표회에는 지정 토론자로 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 차기진(루카) 박사와 전주대 서종태(스테파노) 교수가 나섰다. 이 외에도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조광(이냐시오) 교수와 영남대 김정숙(소화데레사) 교수, 충남대 김수태(안드레아) 교수 등 연구진도 발표회 장에 참석해 토론에 가담하며 윤 신부의 견해를 일관되게 지지했다.

윤 신부는 「성교요지」 등의 위작 문제가 그동안 교회 내에서 제대로 거론되지 못한 배경에 대해 “1925년과 1968년 두 차례의 시복식, 1984년 시성식을 거치면서 고 김양선 목사가 기증한 초기 천주교 관련 자료에 대해 비판하는 행위가 마치 이단설을 주장하는 것으로 매도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설명했다.

차기진 박사는 토론에서 “윤 신부님의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는 검증 내용과 방법이 객관적이고 철저한 고증 아래 이뤄졌고 그 동안 소극적으로 비판돼 온 내용을 과감히 드러내 속이 후련해지는 결론을 도출했다”면서도 “책 제목에 ‘위작’이라는 용어로 충분한데도 ‘사기’라는 용어를 쓴 것은 아쉬운 감이 있다”고 전했다.

서종태 교수는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를 통해 한국교회의 숙원이 해결됐다”고 말해 윤 신부 견해에 대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광 교수도 “1970년에 이미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된 초기 천주교 자료들이 진본이 아님을 알고도 공개적으로 입장을 드러내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김수태 교수는 “윤 신부님이 그동안 잘못된 연구로 야기된 혼란을 정리한 것에는 감사드리지만 책 내용에 학자로서의 합리성을 다소 벗어나 감정적 어휘가 개입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교요지」 등의 위작 문제와 함께 이벽의 시복추진에 대한 찬반 토론도 이어졌다. 윤 신부는 “시복추진은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시복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김정숙 교수는 “이벽의 공로를 고려할 때 시복이 가능하다”는 찬성 견해를 제시했다. [가톨릭신문, 2014년 7월 27일, 박지순 기자]

 

 

윤민구 신부 ‘「성교요지」 위작 주장’ 관련 연구발표회 해설


개신교 용어 문제 ‘의견일치’ ... 시복 추진 견해는 ‘심사숙고’

 

 

지난 19일 오후 2시 서울 저동 한국교회사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 성교요지/십계명가/만천유고/이벽전/유한당언행실록은 사기다-」 연구발표회는 윤민구 신부(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가 최근 발표한 동명의 저서에서 주장한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마련됐다.


「성교요지」등 위작 주장 동의

특히 초기 한국천주교회 평신도 지도자로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되는 이벽(요한 세례자, 1754~1785)의 「성교요지」가 위작이라는 윤 신부의 주장은 교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날 연구발표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 차기진(루카) 박사와 전주대 서종태(스테파노) 교수,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조광(이냐시오) 교수, 영남대 김정숙(소화데레사) 교수 등은 윤 신부의 견해에 ‘일치된 동의’를 표시했다. 윤 신부 주장의 핵심은 이벽의 생존연대를 고려할 때, 「성교요지」에 등장하는 개신교회 용어가 ‘위작’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는 점이다. 이벽은 중국에 개신교 성경이 번역되기 전에 선종했다. 「십계명가」, 「만천유고」 등도 용어와 내용 분석을 해보면 위작임이 백일하에 드러난다고 했다.
 
윤 신부는 “책 제목을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라고 정했지만 사실 한국교회 신자들이 미사의 성경말씀과 성가 가사만 눈여겨봤어도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문제였다”고 말했다.


윤민구 신부 “논증하지 않은 허위, 진실 오인 위험”

지정 토론자로 나선 차기진 박사는 “윤 신부님의 객관적이고 철저한 검증과 결론에는 꼬집어낼 만한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다”면서 “사실상 「성교요지」, 「십계명가」 등에 대해 상당수 연구자들이 이미 위작이라는 의심을 품고 그 내용을 인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차 박사는 지난 2003년 경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자료들을 검토하고 「성교요지」와 「이벽전」 등 윤 신부 저서에서 거론된 모든 자료들을 위작이라고 결론내린 사실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차 박사는 이어 “윤 신부님의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는 초기 가톨릭 자료에 대한 비판을 객관화하고 진일보 시켰다는 데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종태 교수도 토론에서 “윤 신부님이 「성교요지」등이 위작이라는 분명한 주장을 함으로써 한국교회의 숙원이 해결됐다”고 말해 위작 논란이 한국교회 내에서 오랜 세월 진행되면서도 속 시원한 결론을 낼 연구자가 없었던 상황을 시사했다.

조광 교수는 “1970년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에 근무하는 절친한 지인의 도움으로 고 김양선 목사(1907~1970)가 기증한 자료들을 상세히 볼 수 있었고 위작임을 발견해 연구자료로 일절 사용하지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윤 신부는 「성교요지」등의 위작 여부에 대한 검토가 교회 내에서 이뤄져 왔다는 지적에 대해 “허위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것은 암암리에 허위를 진실처럼 용인하는 행위”라고 반성을 촉구했다.


이벽, 이승훈 ‘시복’ 찬반 대립

이날 토론회에서 윤 신부는 “「성교요지」등과 관련된 교회 내 활동은 지금 바로 중단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세계사를 배울 때 가톨릭교회의 어두운 이면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고 하는데 한국교회사의 진 면모가 젊은 세대에 어떻게 전달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성교요지」등의 위작 문제와는 별개로 이벽, 이승훈 등에 대한 시복 추진이 합당한지에 대해서도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차 박사는 윤 신부에게 이벽의 작품 「성교요지」등이 위작이라고 해서 이벽에 대한 시복 추진에 장애가 생겼다고 봐야 하는지 질문했다. 이에 대해 윤 신부는 “시복 추진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시복시성은 최후에 ‘법적인 문제’로 귀착되기에 시복을 적당히 넘어가듯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이벽에 대한 시복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승훈에 대해서도 그의 죽음은 종교적 순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시복을 반대했다.

그러나 김정숙 교수는 “이벽은 그의 저서가 위작이라 하더라도 초기 한국교회에 끼친 공로가 큰 점을 감안하면 시복 추진에 장애가 없다고 본다”고 윤 신부와는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가톨릭신문, 2014년 7월 27일, 박지순 기자]

 

 

수원 시복시성추진위, 「성교요지」 논란 입장 공표


“윤 신부 진실성 파악 ‘미흡’… 위작 단정 못해”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위원장 김상순 신부, 이하 위원회)는 7월 24일 오후 3시 교구청 3층 회의실에서 정기회의를 열고 최근 불거진 「성교요지」 위작 논란에 대해 “「성교요지」에 개신교적 용어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위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와 위원회 위원장 김상순 신부, 총무 김동원 신부 등 사제단을 비롯해 김정숙(소화데레사) 영남대 교수, 서종태(스테파노) 전주대 교수 등 위원단, 「성교요지」 대표적 연구자로 꼽히는 김옥희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와 하성래(아우구스티노·전 수원교회사연구소 고문) 박사 등도 참석했다.

위원회는 윤민구 신부(손골성지 전담)가「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를 통해 「성교요지」 등 초기 한국교회사 문헌들이 위작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 “이 분야에 대한 선행연구들을 되짚어 볼 필요성을 제기하고 교회사 연구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 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성교요지」 등 초기 교회사 자료에 대한 철저한 문헌학적 · 역사학적 비판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윤 신부의 저서는 세 종류로 전해 내려오는 「성교요지」의 각 사본을 분리하지 않고 비판했기 때문에 사료의 진실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미흡함이 발견됐다”고 윤 신부의 사료비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성교요지」의 원문과 주석의 저자가 다를 가능성도 있으므로 원문과 주석을 분리해 비판하는 일도 요구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위원회는 “이벽의 교회 활동이「성교요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아니며 「성교요지」가 이벽의 저술이 아니라 해도 이벽의 교회활동을 전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가톨릭신문, 2014년 8월 10일, 박지순 기자]

 

 

수원 시복시성추진위, 윤민구 신부 「성교요지」 위작 주장 반박 기고 전문(全文)


「성교요지」 연구의 새 전기 마련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윤민구 신부(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가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에서 이벽의 「성교요지」등 초기 교회사 문헌들이 위작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성교요지」를 위작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윤 신부와 반대 견해를 가진 연구자들도 상당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본지는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가 ‘「성교요지」 연구의 새 전기 마련’이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기고문을 싣는다.

 

지난 7월 24일 오후 3시 수원교구 교구청에서는 시복시성추진위원회(위원장 김상순 신부, 이하 위원회) 정기회의가 열렸다. 시복을 앞두고 그동안 노력해온 작업을 정리하며 초기 한국교회사를 튼튼히 할 ‘신앙 선조 관련 고문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립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윤민구 신부(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가 출간한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에 대해 논의했다. 윤 신부는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된 ‘천주교 관계문헌’들을 연구했는데, 그동안 이벽(요한 세례자)의 작품으로 인정돼 온 「성교요지」에 들어있는 개신교 용어들을 볼 때, 이 작품이 1930년대 만들어진 ‘위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윤 신부의 저서가 이 분야의 선행연구들을 되짚어 볼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아울러 교회사 연구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 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 신자들이 교회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한편, 윤 신부가 진행한 연구는 그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작업들이 결여됐다는 평가가 있었다. 따라서 위원회는 초기교회사에 관해 보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철저한 작업을 거쳐 그 연구를 한 단계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성교요지」 등 초기 교회사 자료에 대한 철저한 문헌학적, 역사학적 비판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성교요지」 유통과정과 서로 다른 사본의 비교가 필수

1930년대에 필사본 「성교요지」가 출현해 고서적상들에 의해 거래됐고 개신교 용어들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무조건 위작으로 단정할 수 없다. 앞으로 원본의 존재여부와 그 원본의 진실성을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원본의 진실성이 확정될 수 있다면, 이 책이 원본에서 필사된 시기, 전파 유통과정을 정확히 밝히고, 개작·탈루·수정 등의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해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윤 신부의 저서는 세 갈래로, 곧 세 종류로 전해 내려오는 「성교요지」의 각 사본을 분리하지 않고 비판했기 때문에 사료의 진실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 미흡함이 발견됐다. 아울러 「성교요지」의 원문과 주석을 분리해 비판하는 일도 요구된다. 이는 원문의 저자와 주석의 필자가 다른 사람인 경우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원회는 「성교요지」 자체에 대한 철저한 사료비판과 분석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성교요지」를 인용한 교회사 논문이나 업적을 연구시기 별로 비교분석하기로 했다. 이는 「성교요지」를 인용했던 교회사 논문 연구결과들도 각각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연구 분위기나 사학사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교요지」는 이벽이 「천학초함」을 읽고 지은 글이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성교요지」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성교요지」와 「천학초함」에 대한 내용, 표현에 대한 비교는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작업이다.

위원회는 「천학초함」에 실린 「천학실의(天學實義)」, 「칠극(七克)」, 「직방외기(職方外紀)」 등 10편의 책을 「성교요지」와 비교하는 공동연구 작업을 하기로 합의했다. 위원회는 이 모든 일이 선행돼야만 초기 교회사연구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중간보고회는 올해 10월 말경에 세미나나 심포지엄을 통해 발표하기로 했다.


천주교를 신앙으로 연 이벽, ‘사학괴수’로 몰려

성 다블뤼 주교는 「조선순교사비망기」(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ee)에서 이벽을 천주교회의 시작을 마련한 사람으로 서술했다. 또한 1801년 황사영의 ‘백서’, 이승훈이 1789년 북경의 북당 선교사들에게 보낸 편지, 다산 정약용의 「중용강의보」(1814년) 등 이벽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도 그에 관한 자료를 남겼다. 이외에도 이기경의 「벽위편」(1801년 경), 1801년 전후의 「추안급국안」과 「사학징의」 등은 물론「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관찬사 서류도 이벽이 수행한 교회 활동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김대건 신부, 최양업 신부와 달레 신부도 이벽의 활동에 대해 기록했다.

따라서 이벽의 교회 활동이 「성교요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교요지」가 이벽의 저술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벽의 교회활동을 전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설사 「성교요지」가 1930년대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 작품은 1930년대 당시 유교사회를 살던 학자가 천주교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밝혀줄 것이다.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들은 윤 신부의 연구 결과는 초기 교회사의 자료와 인물에 대해 새로운 연구의 계기를 촉발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열린 공동연구’를 통해 당시의 영성을 본받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8월 10일,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기고] 아무리 뭐라 해도 개신교 용어 나오는 「성교요지」는 가짜다

 

 

이벽이 「성교요지」를 썼다는 기록이나 전승은 어디에도 없었다. 초기교회 때는 물론 그 이후에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 1967년에 고(故) 김양선 목사에 의해 갑자기 「성교요지」의 존재가 알려지게 됐다. 김양선 목사가 자신이 수집한 「성교요지」 등 다수의 초기 천주교 관련 자료들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천주교 측 연구자들이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은 채 그 「성교요지」를 이벽이 쓴 것이라며 열광했다. 


그런데 필자가 연구해 보니 놀랍게도 바로 그 「성교요지」에 이벽이 죽고 나서도 100년이나 지난 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용어들이 무더기로 들어 있었다. 즉 ‘감람’, ‘야화화’(耶和華-여호아) 등 천주교에서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개신교 용어들이 「성교요지」에 상당수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용어들은 중국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이벽이 죽은 지 약 30년이 지난 1814년부터 한문으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일본과 한국 개신교에서도 받아들여 사용한 철저한 개신교 용어들이다.

그러니 이벽이 이런 개신교 용어들을 알 리도 없고 그런 용어들이 들어있는 「성교요지」를 썼을 리는 더욱 없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내용 또한 문제다. 「성교요지」에 나오는 내용 중에는 언뜻 보면 성경이나 예수님에 관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성경이나 가장 기본적인 천주교 교리에도 안 맞는 엉터리들이 너무나 많다.

한국교회 초기 지도자였던 이벽이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성교요지」는 이벽이 쓴 글일 수가 없는 가짜며, 심지어 1930년대 이후 누군가 개신교 성경을 대충 읽고 처음부터 판매를 통한 이윤 목적으로 지어 낸 글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최근에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라는 책을 통해 자세히 밝혔다. 그리고 7월 19일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이에 대한 공개 연구발표를 했다.

이 연구발표에 토론자로 참석한 양업교회사연구소장 차기진 박사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2003년경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는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자료들을 검토하고 「성교요지」와 「이벽전」 등 윤 신부님의 저서에서 거론된 모든 자료를 위작이라고 결론 내린 사실이 있다”고 한 것이다. 즉 주교회의 시복시성특위에서는 이미 「성교요지」가 가짜라고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주교회의 시복시성특위의 판정과는 다르게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는 7월 24일 정기회의를 하면서 필자의 책을 비판했고 그 내용을 가톨릭신문에 기고문 형식으로 실었다.

그 기고문에서 위원회는 “개신교적 용어들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성교요지」를 위작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공표하면서도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원본의 존재 여부와 그 원본의 진실성을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의 핵심은 피한 채 원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기록이나 전승이 없으니 존재하지도 않을 원본을 어떻게 찾으며, 그 진실성을 어떻게 주목한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지금도 가짜 천주교 자료들을 팔러다니는 사람들이 왕왕 있는 상황인데 이것은 또 다른 사기극을 조장해 낼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위원회에서는 또한 “윤 신부의 저서는 세 갈래로, 곧 세 종류로 전해 내려오는 「성교요지」의 각 사본을 분리하지 않고 비판했기 때문에 사료의 진실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 미흡함이 발견됐다”고 했다. 그리하여 마치 필자의 책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것처럼 발표했다.

필자는 소수의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집이나 논문을 낸 것이 아니다. 일반 사람들도 문제의 실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 종류의 「성교요지」를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한 ‘책’을 출간한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게 오히려 더 상세하게 각각의 「성교요지」에 어떻게 다르게 나오는지 일일이 예문까지 들어가며 비교 검토했다.

더욱이 그 중 한 종류의 「성교요지」는 천주교 안에서는 필자가 처음으로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면밀히 분석했다. 그리하여 고(故) 김양선 목사가 기증한 세 종류의 「성교요지」 모두 개신교 용어들과 엉터리 성경 내용들로 가득한 가짜라는 점을 증명해 냈다. 그런데도 위원회에서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에서는 아울러 “「성교요지」의 원문과 주석을 분리해 비판하는 일도 요구된다. 이는 원문의 저자와 주석의 필자가 다른 사람인 경우도 발견되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필자의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본문과 주석을 쓴 사람이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말아야 한다. 설령 필자와는 다른 연구방법론을 생각하더라도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이제까지 이벽이 썼다고 알려진 그 「성교요지」에 상당수 개신교 용어들과 엉터리 성경 내용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 말이다. 아무리 연구방법론을 바꾸어도 이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런 「성교요지」를 이벽이 썼을 리가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위원회에서 「성교요지」를 위작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천주교회와 이벽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가톨릭신문, 2014년 8월 17일, 윤민구 신부(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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