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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록의 선교사가 남긴 인간적이고 진솔한 이야기: 다블뤼 주교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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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02 ㅣ No.986

[서평] 기록의 선교사가 남긴 인간적이고 진솔한 이야기

《다블뤼 주교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유소연(역), 내포교회사연구소, 2018

 

 

1. 들어가는 말

 

다블뤼 주교는 제5대 조선 대목구장이었으며 병인박해 이전 가장 오랫동안 조선에 체류했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이다. 베르뇌 주교의 순교 이후 대목구장 직을 맡은 기간은 불과 23일에 불과하지만, 조선에 선교사로서 21년, 그중 9년 동안 부주교로 지낸 연륜을 지닌 사목자이다. 특히 다블뤼는 교리서 저술 및 출판뿐만 아니라 교회사 연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박해 시대 조선에 체류했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중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선교사였다.

 

다블뤼 주교가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문헌은 8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중 3, 4, 5권에 해당하는 《조선사 서설 비망기》(Notes pour l'instroduction à l'histoire de Corée), 《조선 순교자 역사 비망기》(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Notice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은 조선의 역사와 순교자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며,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ée)의 기본 자료가 된 문헌이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기해박해까지의 기록이며 다블뤼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다. 이에 비해 8권에 해당하는 조선 입국 이후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는 다블뤼가 살았던 당시 조선 천주교회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개인의 이야기도 담긴 기록이다. 순교자 약전이나 비망기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상세히 이야기해 주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 편지는 교회사에 대한 중요한 기록을 저술한 선교사가 본인이 생생하게 겪은 일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더 큰 가치를 지녔다.

 

최근에 내포교회사연구소에서 이 문헌을 《다블뤼 주교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제목의 책으로 번역 출간하였다. 이 번역물의 구성과 내용을 파악한 후에 이에 대한 평가와 제언을 하고자 한다.

 

 

2. 구성과 내용

 

다블뤼 주교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번역한 이 책은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편지 목록과 다블뤼 주교의 가계도 및 연표, 그리고 일러두기 등의 도입 부분이 있다. 이어서 본론이라 할 수 있는 편지 번역문이 나온다. 말미에 이 편지에 대한 해제가 있다. 도입 부분은 편지의 내용과 형태 및 번역 방식을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편지 번역문을 다 소개한 이후에 나온 해제는 편지의 번역 과정과 내용 및 가치에 관해 서술한 부분이다.

 

다블뤼 주교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판본과 번역 사항에 대한 설명은 도입 부분의 일러두기와 해제 안에 있다. 우선 번역 대본이 원본이 아닌 필사본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어서 필사본을 판독하고 번역한 과정도 서술하였다.1) 비록 필사본과 판독본 자체를 게재하지는 않았지만, 번역문 안에 필사본과 판독본의 표시를 그대로 실었으며, 파리 외방전교회 측에서 필사본에 부여한 쪽 번호도 그대로 넣었다. 필사본과 판독본은 차후 출판할 예정임도 밝혔다.2)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도 해제에서 다루었다. 가족들과 나눈 사적인 내용보다 다블뤼 자신이 처한 현실이나 활동들, 조선의 문화나 풍습들, 조선 사람들과 순교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갖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가족 간의 유대와 가족의 신앙에 대해서 알 수 있음도 밝혔다.3) 그러나 이 책의 해제에는 이 편지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다블뤼 주교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면 다음과 같다.

 

1) 다블뤼가 박해받는 조선 천주교회 선교사로서 느끼는 기쁨과 희망, 고통과 근심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1847년 10월에 부모에게 보낸 편지의 다음 부분에서 그러한 면이 드러나 있다.

 

‘기쁨은 미래에 대한 희망 안에 있고, 희망은 인간의 삶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선교사의 삶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끝내 기다려보면, 어쩌면 무엇인가 오겠지요.4)

 

이 구절에서 다블뤼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그 안에서도 반드시 기쁨과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표현을 하였다. 그의 편지 곳곳에 선교사로서 겪은 고통과 어려움이 나와 있다. 특히 박해받는 신자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약한 처지에 대한 탄식도 나와 있다. 하지만 큰 박해가 없이 평온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는 표현과 더불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말도 거듭하고 있다. 조선이라는 매우 열악하고 어려운 공간에서 선교사로 살아가는 이의 인간적인 부분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선교사를 표현한 것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기쁨과 희망을 찾아가려고 애쓰는 선교사의 모습도 동시에 드러나 있다.

 

2) 프랑스 교회와 자신의 가족과의 유대를 끊임없이 표현하였다. 특히 가족들 중 부모에게 보낸 편지의 비중이 높다. 다른 가족과는 달리 부모에게는 매년 편지를 빼놓지 않았으며, 더 구체적이고 솔직한 내용을 담아 보냈다. 이렇게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블뤼는 조선 천주교회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기도를 끊임없이 부탁하였다. 한편으로 프랑스 교회와 자신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면서 기도를 약속하였다. 19세기 중반에 끊임없이 이어진 혁명과 정변으로 인하여 혼란스러운 프랑스의 정세와 그 안에서 발생한 교회의 수난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러면서 박해의 광풍이 잠시 멈춘 자신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평온하다고 표현하면서 고국과 교회에 대한 기도를 잊지 않고 있다. 또한 가족의 대소사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면 이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표하면서 어려움에 있는 가족 구성원을 위한 기도도 잊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가족 중 성직자와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형제자매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표하고 있다. 가계도에서 나와 있듯이 다블뤼 주교의 누나인 테레즈(Thérèse)와 폴린느(Pauline), 여동생인 아델라이드(Adélaïde)가 수녀이며, 남동생인 이시도르(Isidore)가 신부이다. 큰 누나인 테레즈 수녀에게 매년 편지를 보냈으며, 남동생인 이시도르에게도 그가 신학교에 입학한 1856년부터 매년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통하여 가족이라는 부분을 뛰어넘어 성소자로서의 공감을 표하고 있다. 특히 자신과 같은 사제의 길을 걷는 이시도르에게 더 각별한 애정을 표하면서 선배 사제로서 조언도 전하였다. 특히 사제 서품을 앞둔 동생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였다.

 

좋은 벗이여, 이만 작별합시다. 하느님의 사업을 훌륭히 수행하게나. 부디 자네의 보살핌에 맡겨진 사람들이 주님의 선택을 찬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들을 구원함으로써 자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시게. 왜냐하면 사제는 자기 혼자만으로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는 법이니까. “너는 성품을 받음으로써 네 짐을 가볍게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니 너무 겁먹지는 마시게.5)

 

이 글을 통해 다블뤼는 자신의 동생에게 가족의 정을 넘어 같은 길을 걸어가는 선배 사제로서의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제로서의 길이 쉽지는 않지만 하느님께서 그 길에 늘 같이 계시며 도와주실 것임을 표현하였다.

 

3) 조선 천주교회 신자들의 미담을 소개하고 있다. 매년 보낸 편지 안에 미담이 없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1864년 10월에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더 많은 미담이 들어가 있다. 이 편지 안에는 4건의 조선 신자 관련 이야기가 있다. 첫째 미담은 예순 넘은 여성 입교자가 무당의 굿을 거부하고 하느님께 기도하였는데 천연두에 걸린 손자가 나은 이야기이다. 둘째 미담과 셋째 미담은 모두 미신을 거부한 신입 교우의 이야기이다. 넷째 미담은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입교한 양반 신자의 이야기이다.

 

앞서 밝혔듯이 다블뤼 주교는 조선 천주교회사 저술에 대한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교회사 관련 저술을 남겼다. 그 교회사 저술은 다블뤼 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박해의 순교자에 대한 기록이다. 그런데 이 기록은 과거에 대한 서술로 다블뤼 본인이 조선에 체류했던 동시대에 관한 서술은 아니다. 그래서 다블뤼가 기해박해까지의 교회사만을 서술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그가 사목 활동을 하는 가운데 들었거나 보았던 미담들을 충실히 기록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편지를 보낼 당시에는 단순한 미담에 불과하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렇듯 다블뤼는 그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역사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있었던 당대의 일에 대해서도 충실히 기록하였다.

 

4) 순교에 대한 다블뤼의 열망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그는 자신이 순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오히려 불안해하고 있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이후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이러한 표현이 있다.

 

저는 제가 받을 수 있었을 가장 아름다운 칼의 일격을 놓쳤습니다. 이 나라 국왕은 우리의 존재를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 작은 칼의 일격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그것을 받을 자격도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해야 할지 아니면 절망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6)

 

이러한 심정은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후, 동생 이시도르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나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쯤에나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날까? 어쩌면 자네는 긴 칼날이 내 목숨 줄을 끊어놓은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만 전혀 그렇지 않다네. 오히려 나는 순교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더 굳혀지고 있어. 나는 그와 같은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네만, 솔직히 자백하면 나는 그와 같은 은총을 자주 간구하지도 않았거든. 아무튼 그 은총의 시기는 지나가 버린 것 같네.7)

 

이를 통해 다블뤼는 순교하는 것도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부여하는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를 접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이후에도 순교하지 못하고 지내는 상황에 대해 아쉬워하는 표현을 하였다. 박해받는 지역 교회의 선교사로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지만 순교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다블뤼 주교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는 조선의 선교사로서 살면서 가진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는 당시 조선에 체류했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3. 평가와 제언

 

다블뤼 주교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번역한 책을 보면서 그가 가진 생각과 감정을 현장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이 편지의 프랑스어 필사본과 판독본을 접하지 못했기에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평가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자가 다블뤼 주교의 어조를 현장감 있게 전달해 준 것은 분명하다. 프랑스어 원문을 확인하지 못해서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대체로 원문에서 느낄 수 있는 어조와 감정을 거의 그대로 전해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주석을 통하여 당시 교회사에 관련된 일들이나 생소한 용어 설명을 적절히 한 것도 이 책이 지니는 장점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원문 필사본이나 판독본이 없어서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러두기 부분에서 언급하였듯이 차후 출판될 원문본에 대해 기대를 걸어보고자 한다. 또한 다블뤼가 조선에 입국하기 전 시기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아직 번역하지 않은 상황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에 번역한 책은 가족에게 보낸 전체 편지 중 절반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블뤼가 조선에 입국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자신의 포부와 심정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향후 이 부분에 대한 번역이 이루어지면 다블뤼의 진면목을 더 상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파리 외방전교회에 보낸 공식적인 편지와는 달리 선교사 본인의 삶에 대한 상세한 부분까지 나와 있다. 조선 입국 전에 보낸 편지까지 포함한다면 선교사로서 살아간 여정과 애환을 과감히 드러낸 자료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편지 전체를 모으면 사실상 자서전으로서의 가치를 가진 문헌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샤를 살몽(Ch. Salmon)은 《다블뤼 주교의 생애》(Vie de Monseigneur Daveluy)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이 편지들을 인용하였다. 살몽은 이 전기의 서문에 가족과 친구들이 전기 발간을 원하면서 적극 협조하였다고 밝히면서 다블뤼가 부모에게 보낸 편지가 주요 자료가 되었음도 언급하였다. 다블뤼의 조선 입국 이후 별도의 자료가 없기에 편지에 많이 의존했음도 밝혔다.8)

 

이렇듯 다블뤼 본인이 자서전을 쓴 적은 없지만 매년 빼놓지 않고 쓴 편지를 바탕으로 다른 이가 전기를 써 주었다. 본인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으로 보낸 편지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사료가 되었다. 조선 천주교회와 순교자들의 역사를 기록한 선교사가 자신의 신상에 대해 편지를 썼으며, 그 편지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자료가 되었다.

 

다블뤼 주교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세 가지 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제 이 세 가지 활용 방안을 언급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제언을 해 보고자 한다.

 

우선 영적 도서와 사목일지로서의 가치를 지닌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비록 조선 입국 이후의 편지만 번역본이 나왔지만 그 안에서도 선교사로서 다블뤼가 지닌 면모가 드러나 있다. 선교사로서 가지는 기쁨, 희망, 고뇌, 좌절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내는 공식 서한에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까지 서술하였기에 더욱 내면적인 부분이 들어갔다. 박해시대 조선 천주교회 성직자의 서한으로 이미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편지가 책으로 편찬되어 보급되었다. 이 자료 역시 한국 천주교회의 사제와 신학생, 수도자 그리고 일반 신자들까지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영성 서적이다. 하지만 공식 서한의 성격이라는 한계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에 반해 다블뤼 주교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이보다 더한 영성 서적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가톨릭교회 내에서 성인들이 남긴 편지나 자서전은 매우 중요한 영적 도서로써 평가를 받고 있다. 다블뤼의 편지 역시 그러한 가치 부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 내 구성원들에게 널리 보급되는 영적 도서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또한 다블뤼 주교의 사목 활동이 시기별로 드러나 있는 사목일지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기에, 한국 천주교회 사제들이 귀감으로 삼고 충분히 참조할 도서로 추천해 본다.

 

한편으로 교회사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가치도 있다. 다블뤼 주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연구 성과들이 나왔지만 대체로 순교자 약전이나 순교자 역사 비망기와 같은 교회사 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다블뤼 본인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가족에게 보낸 편지 번역본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다블뤼에 대한 연구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의미도 담고 있으며 교회사 연구자들에게는 더 큰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이미 살몽이 쓴 다블뤼 주교 전기의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바 있다.9)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전기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를 다수 인용하였다. 전기와 편지를 교차 검증하는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편지는 교회사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자료가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특히 다블뤼 주교가 편지 안에 남긴 조선 신자들의 미담은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다. 병인박해 150주년을 지낸 2016년에 다블뤼 주교의 생애를 소재로 한 ‘앙투완 사랑한다’라는 제목의 연극 공연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이번에 번역한 편지를 읽어 보면 연극에 나온 내용이 상당히 들어가 있다. 더 내면적인 기록의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는 것은 더 자세하고 풍부한 콘텐츠가 나올 가능성도 담고 있다. 이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역사 소설, 영화, 연극 등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편지 안에 등장한 조선 신자들의 미담은 현대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도 충분한 이야깃거리로 만들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4. 나가는 말

 

다블뤼 주교는 교회사 관련 기록들을 서술한 기록의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기록의 선교사가 타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도 진솔하게 기록하였다. 다블뤼 주교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그러한 면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가졌던 기쁨과 고통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며 프랑스에 있는 가족과 가진 신앙의 유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미담도 다수 소개하여 후대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겼다. 어렵게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이 편지 모음집을 신앙인을 위한 영적 도서,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 교회 콘텐츠의 원천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차후 조선 입국 전에 보낸 편지뿐만 아니라 동료 선교사들에게 보낸 공식 서한까지 번역이 이루어져서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 범위가 더욱 풍부해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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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제〉, 《다블뤼 주교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내포교회사연구소, 2018, 485~487쪽.

2) 〈일러두기〉, 같은 책, 11쪽.

3) 〈해제〉, 같은 책, 485쪽.

4) 같은 책, 78쪽.

5) 같은 책, 423~424쪽.

6) 같은 책, 59쪽

7) 같은 책, 422쪽

8) Ch. Salmon, Vie de Monseigneur Daveluy, Paris : Librairie Bray et Retaux, 1883, pp.xiii-xv.

9) Ch. Salmon, 정현명(역), 《성 다블뤼 주교의 생애》, 대전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6.

 

[교회사 연구 제52집, 2018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김규성(인천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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