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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 교회사가 밝힌 등불: 기근과 1815년 박해 그리고 교우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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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20 ㅣ No.1375

[한국 교회사가 밝힌 등불] 기근과 1815년 박해 그리고 교우들의 삶 (2)

 

 

- 행복(심순화 作).

 

 

1815년 초에는 해마다 겪는 ‘보릿고개’에다 지난해에 이어진 흉년과 수재로 끔찍한 기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기근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픔과 굶주림으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삶 가운데 공동생활을 하며 서로 가진 것을 나누던 교우들은 굶주림으로 죽는 경우가 훨씬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우들에게 또 다른 위기가 있었습니다. ‘1814-1815’년의 기근이 빌미가 되어 천주교 신자들의 양식과 물품을 강탈하려는 목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박해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상도 지역의 전지수라는 교우는 평소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며 교우촌에 들어가 교우들에게 돈과 옷, 양식을 갈취하며 살았습니다. 교우들은 자신들의 형편도 곤궁했지만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애덕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필요한 것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다 1815년 전국적인 기근이 닥치자 산 속에 살던 신자들의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고 교우들의 애긍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전지수는 가난한 천주교 신자들의 궁핍한 재물까지 전부 갈취하려는 욕심으로 배교를 결심하고 그 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관청에 찾아가 천주교 신자들이 살고 있는 교우촌의 위치를 밀고합니다.

 

1815년 조선에서는 사제가 없던 관계로 교우촌마다 ‘공소집’을 정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교우촌 신자들은 주일과 축일이 되면 첨례를 지키고, 성경을 읽거나 교리 공부를 했으며,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배교자 전지수는 1815년 예수 부활 대축일에도 산 속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교우들이 ‘공소집’에 모여 대축일 첨례를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청송의 머루산에 있는 교우촌의 ‘공소집’에서 교우들이 예수 부활 대축일을 지낼 때 전지수의 밀고로 청송 고을 포졸들이 들이닥쳤고, 교우들을 체포한 후 경주 진영으로 압송하고 대구 감영으로 끌고간 것입니다. 당시 교우들이 포졸들에 의해 끌려가던 상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녀노소 도합 100여 명이 붙잡혔다. 이 중에서 자기네 고향 옥중에서나 혹은 감영으로 가는 도중에 굶주려 죽은 이들도 있고, 마음이 약하여 배교한 사람들도 있어, 이제는 겨우 13명이 남아 있을 뿐이다.”

 

또 다른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의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으면, 이 불쌍한 신자들 중 적어도 20명 가량은 며칠 동안 천신만고를 하며 끌려다니다 어떤 이들은 허기가 지거나 상처가 덧나 길가에서 죽으니 포졸들이 그들을 버리고 갔다. 어떤 이들은 주막에 들렀다가 돈이 없어 아무 것도 사 먹지 못해 죽기도 하였다. 또한 많은 신자들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 부끄럽게 배교하였는데, 배교한 자들은 거저 석방되기도 하고, 혹은 이 도道 저 도道로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 여름쯤 되어서는 몇몇 증거자 밖에는 대구 감옥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감옥에 갇혀 옥살이를 하던 교우들은 박해 당국자에게 계속적인 고문과 배교를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나 교우들은 끝까지 천주교 신앙을 지켰고, 천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 각오를 하고 순교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감옥살이를 하던 교우들이었기에 옥 안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게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교우들은 그렇게 오래 옥살이를 하고 있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뿐 아니라 외교인들에게까지도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 의지할 데 없이 옥에 갇혀 있으며 낮에는 먹고 살아가기 위하여 거의 모두가 짚신을 만들며 살았다. 밤이 되면 등불을 켜 놓고, 함께 성서를 읽으며 큰 소리로 공동기도를 드렸다. 당시의 법률에 따라 죄인이 되었지만, 이들의 기쁨과 안심, 화목은 외교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일이었다. 다투는 일 한 번 없고 욕설이나 짜증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감옥에 갇힌 교우들은 옥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했고 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수에 대한 용서와 사랑, 자비를 실천했습니다. 그 같은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을 밀고하며 살던 배교자 전지수는 개인적으로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 체포되어, 자신이 밀고하여 잡혀 있는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경상 감사는 예외없이 ‘전지수를 굶겨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밀고자 전지수 때문에 옥에 갇힌 천주교 신자들은 자신들을 밀고한 그를 원망하거나 증오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교우들은 자신들 앞으로 하루 한 끼, 좁쌀밥 한 줌이 나왔을 때에 각자가 그것을 조금씩 떼어 전지수가 먹을 분량을 만들어 그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밀고자 전지수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우들은 밀고자 전지수가 석방될 때 알몸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자, 그의 몸을 가릴 옷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신앙 선조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느님께 자신들의 믿음을 굳건히 할 수 있도록 기도했고, 자신의 목숨을 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것 자체를 영광스럽게 여겼던 분들입니다. 신앙 선조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을 믿고 있음을 주님의 섭리로 생각했고, 그에 대한 감사 기도를 언제나 드렸으며,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하는 것조차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단련하는 영적 수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을 따라 걸었던 신앙 선조들의 삶을 묵상하며 하느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날마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절망, 좌절, 아픔, 고통, 불안, 두려움 등을 이겨낼 수 있도록 신앙 선조들에게 간구하면서 그분들이 걸었던 순교의 길을 ‘용서와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함께 걸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 땅에서 천상복락을 누리는 기쁨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입니다.

 

강석진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소속으로 전북 고창의 심원 공소/개갑 성지 담당 신부이며, 저서로 『순교, 생명을 대변하는 증거』 등이 있다.

 

그림 심순화 - 가톨릭미술가회 회원. 성화 작가로 활동 중이며 성당, 성지, 수도원 등에서 작업하고 있다.

 

[생활성서, 2021년 5월호, 강석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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