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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2차 주회 절제해야 할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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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07 ㅣ No.599

[레지오 영성] ‘2차 주회’ 절제해야 할 덕목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술과 흡연을 생각하면 식탐이 무엇인지, 왜 악습이 되는지 쉬이 이해하게 됩니다. 음식, 더욱이 술이나 담배는 부차적인 삶의 취향입니다. 그럼에도 술과 담배를 과하게 애용하는 사람, 즉 술과 담배를 지나치게 탐하면 중독에 이릅니다. 때문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식탐이 주는 가장 큰 해악이 ‘분별력의 마비’라고 단언한 바 있지요. 성경은 폭주로 인한 향락주의를 경고하지만 인간의 구원이 먹거리로 결정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먹고 마시는 일에 온전히 자유로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 외형적인 것에 자유로울 때 참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즐거움을 외면하지 않으시기에 세상에서 술을 마셨는지 금연했는지를 따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는지를 물으실 테지요. 그럼에도 주님께로부터 얻은 몸을 아끼는 마음으로 금연하고 절주한다면 그분의 창조물로서의 도리에 합당한 자세가 될 것입니다.

 

가끔 전교를 하는 신자 분들께서 가톨릭교회에서는 “술 마셔도 괜찮아요.”, “제사 지내도 되고요.”, “담배는 자유예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습니다. 참 어처구니없고 아연실색할 일입니다. 딱한 노릇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신 예수님께 ‘죄스러운’ 행위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전하는 ‘기쁜 소식’이 고작 술과 담배가 허용된다는 것쯤으로 폄하시키는 일이니까요.

 

이 한마디가 가톨릭을 유교적인 제사를 계승한 종교인 줄로 오인하도록 합니다. 기도를 염불처럼, 헌금을 복채처럼 오인 시킵니다. 이같이 복음을 잘못 전달할 때, 가톨릭은 그저 무엇이든 허용하고 아무 것이나 다 받아들이는 종교로 인식하게 할 소지가 큽니다. 이 모두가 허튼 표현에 불과함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앞으로는 부디 이런 오도된 말로 우리 주님의 사랑을 평가절하 시키는 신자가 사라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① 술 취함

 

이성을 잃을 정도로 술에 취하는 일, 무질서하게 술을 마시는 일, 그리고 그 상태가 지속되기를 원할 때 술 취함이라고 합니다. 술의 양이 적고 많음이 아니라 이성을 잃을 정도로 ‘의지적’으로 ‘완전한’ 술 취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술 취함은 자신의 행위를 다스릴 힘을 상실시키기에 윤리적으로 중대한 죄로 취급됩니다. 이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품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주정꾼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1코린 6,10) 술에 취해 지낼 때 자신의 일이나 가정생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술 취함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정도는 이성의 다스림과 반응,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기준합니다. 술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죄는 비록 혼돈의 상태라 할지라도 윤리적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뇌 발달을 막는 ‘태아알코올증후군’이라는 심각한 병이 있습니다. 태아알코올증후군은 임신부가 섭취한 알코올이 분해되지 않고 태아에게 직접 전해지면서 생기는 일종의 기형입니다. 우리나라의 초등학생 1000명 중에서 5명이 그 병을 앓고 있는 형편인데요. 이들은 특히 주의력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산부가 임신 초기 3개월 내에 주1회 이상 소주 5잔을 마실 경우 위험도가 크게 상승한다고 하는데요. 임신 한 달 전에 마신 술도 태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니 알코올의 지독한 잔류성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육의 행실’을 설명하면서 만취와 흥청대는 술판의 해악을 적나라하게 경고하고 있는데요.(갈라 5,20-21 참조) 가임부부들께서는 잘 새겨 읽으셔야 할 구절입니다.

 

② 흡연

 

술에 의존함이 높아질수록 문제가 있는 것처럼 담배도 의존도에 따라서 판단합니다. 그동안 흡연은 막힌 생각에 생기를 주고 근심을 가라앉히고 권태를 달래주며 사회성을 조성하며 일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면을 인정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더울 때 흡연은 양미(凉味)를, 추울 때 흡연은 온미(溫味)를 주고, 우중에 떠오르는 연초 연기는 시인에게 시를 줄 것이며, 암중(暗中) 연초는 공상가에게 철리(哲理)를 준다. 식후, 용변시, 기침(起寢)시의 제일미(第一味)쯤은 상식적이며 거듭 말할 필요도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소설가 황순원도 “슬픈 일을 태우려 담배를 뻐금여 온 때문에 이젠 (담뱃)대만 물면 슬픈 일이 반짝인다.”고도 했지요.

 

하지만 습관적인 흡연이 본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의 건강까지도 해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간접흡연이 더 나쁘다는 결과를 접하는 비흡연인은 정말 억울한 생각을 갖게 되는데요. 마크 트웨인은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금연이 되지 않는 상태를 “모든 것의 ‘처음’은 단 한 번 있지만 담배는 ‘마지막’이 수없이 많다.”는 설명으로 경고한 바 있습니다.

 

담배가 더욱 해로운 것은 니코틴으로 인한 각성제 성분이 마취성분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마약류에 포함되는 것을 흡입할 때 건강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행복한 삶을 포기하고 찰나에만 집착하여 순간적 쾌감을 추구하려는 상태로 추락되기에 더 큰 문제입니다. 마약의 흡입은 참 행복과 멀어지는 지름길이니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 우리의 감각을 절제할 줄 아는 현명함과 인내를

 

모든 삶에서 균형감각을 잡는 것이 윤리적인 삶의 기본임을 기억할 때 적당한 절주와 흡연은 반드시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입니다. 신앙인이기에 절주하고 금연하는 것은 영적 삶을 위한 좋은 습관입니다. 식탐은 옳지 않은 배고픔입니다. 그러기에 계속 술과 담배를 탐하는 행위는 영적 굶주림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비시키는 과정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2차 주회를 통해서 맺어지는 인간관계의 끈끈함은 매우 소중할 것입니다. 하지만 1차 주회가 추구하는 영적인 성숙에 방해된다면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레지오의 모임은 육적인 갈망이 아니라 영적 성화의 길을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제를 통한 영적 성숙을 이루시기 바라며 기도로 글을 마감합니다.

 

“오묘하신 주님, 저희를 세상에 보내시며 저희의 하나하나를 염려하시어 일일이 지침을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당신의 진리를 외면한 채 오로지 먹고 마시며 쾌락을 추구하는 일에 몰두하는 형편입니다. 이런 세상을 보시며 억장이 무너지실 예수님! 죄송합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의 삶도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더더욱 송구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우리의 감각을 절제할 줄 아는 현명함과 인내를 선물해주소서. 하여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축복을 주소서. 언제나 유일한 진리로 저희를 붙잡아 이끌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1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교구 월평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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