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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세계교회ㅣ기타

우리말 바루기: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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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4 ㅣ No.401

[우리말 바루기] 고해성사 (1)


고백? 고해?… 2000년부터 ‘고해성사’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앞에서 주저하거나 고민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그 갈등이 너무나 커서 아예 교회와 멀어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가톨릭 신자가 되면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고해성사를 보는 고해소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외신 등을 통해 수시로 고해소에서 고해성사는 보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접하며 예전에 비해 조금은 더 친숙해진 듯하지만 여전히 고해성사에 따르는 불편한(?) 생각이나 기분은 남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고해성사는 가톨릭교회가 지니고 있는 ‘칠성사(七聖事)’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성사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도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고해성사 역시 주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소중한 통로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합니다.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이토록 어려워하는 고해성사는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 가운데서 생겨난 배교자들을 다시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공적 참회’가 생겨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일랜드 영국에서 ‘사적 참회’로 발전하여 오늘날의 고해성사 형식이 되었습니다. 고해성사가 지닌 매력은 죄로 인해 끊어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또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가 이어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성사를 두고 지금도 신자들 사이에서는 ‘고해성사’인지 ‘고백성사’인지 헷갈리는 분들이 적지 않으신 듯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몇 번 그 이름이 바뀌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온 연륜에 따라 기억하는 용어가 조금씩 다른 것입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이 성사의 이름을 줄곧 고해성사로 번역해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다가 1967년 고백성사로 바꿔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천주교 용어집이 나오면서 고해라는 말이 이 성사의 본뜻이 더 가깝다는 의견에 따라 다시 고해성사로 환원돼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을 발표하면서 “죄를 고백할 줄 아는 것은 하느님의 은사, 선물, 하느님의 작품”이라며 두려워하지 말고 고해소에 들어가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6년 9월 11일, 서상덕 기자]

 

 

[우리말 바루기] 고해성사 (2)


소원해진 하느님과 관계 회복하는 성사

 

 

가톨릭 신자들이 고해소 앞에서 주춤대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해성사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어 있는 행위입니다. 

 

고해성사 경험이 있는 신자라면 이러한 성찰이 이뤄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실천에 옮기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체험했을 것입니다. 결국 끊어지거나 멀어진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열망이 고해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잘 알고 있는 대로 고해성사는 5단계로 이뤄집니다. 첫 단계인 성찰로 시작해, 고해성사를 받을 신자가 해야 할 의무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며 성사의 핵심인 통회로 이어집니다. 통회에 이어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결심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교만과 자포자기입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결심했다 할지라도 다시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결심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신의 힘으로만이 아닌 끊임없이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신자들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성찰과 통회와 결심입니다. 잘 준비된 성사란 바로 이 세 가지를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세 단계가 잘 이뤄졌을 때 이어지는 단계가 고백입니다. 고백하는 대상은 사제이지만 하느님께 하듯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여야 합니다. 고백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남의 잘못을 함께 고발하는 태도나, 변명하는 자세, 추상적인 말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모습은 피해야 합니다. 왜냐면 고해성사는 오로지 자신의 잘못을 하느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부활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가 성탄판공이나 일 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는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90조 2항에 대한 주교회의의 해석을 근거로 1년에 한 번만 고해성사를 보면 교회법상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장애가 아니라 더 나은 삶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다리라는 생각을 갖고 하느님께 기쁘게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 다리를 건널 용기는 바로 우리들의 몫입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16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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