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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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블랑 주교 시기 순회 사목 구역 운영 - 교세통계표(1881~1890) 분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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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1-06 ㅣ No.1632

블랑 주교 시기 순회 사목 구역 운영

‒ 교세통계표(1881~1890) 분석을 중심으로 ‒

 

 

1. 머리말

2. 순회 사목과 교세통계표

3. 사목 구역 운영과 고찰

4. 맺음말

 

 

국문 초록

 

본 연구는 블랑 주교 활동 시기에 순회 사목 구역을 어떻게 운영하였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블랑이 입국한 1876년에는 10여 년을 지속한 병인박해로 서울 · 경기 · 충청 · 경상 교우촌이 파괴되고, 교우들은 외교인 마을로 흩어지거나 강원 · 전라 산골로 피신해 있었다. 블랑은 박해기에 수행한 순회 사목으로 교우들을 찾아 연결하여 공동체를 재건했다. 한미조약(1882) · 한불조약(1886) 체결 등 시대 전환기에 들어서자, 블랑은 ‘조선대목구 시노드’(1884, 서울)를 열고 새로운 사목을 준비했다.

 

현재 보존된 블랑 주교 시기 교세통계표(1881~1890)를 통해 구체적인 사목 구역 운영을 밝힐 수 있었다. 박해기(1876~1881)는 순회 중에 사제의 병 · 체포 · 추방 등으로 구역 지원 · 이동 · 확대가 잦았으나, 문호 개방기(1882~1885)는 사제들의 원활한 입국으로 블랑은 구역 이동을 최소화하고 구역을 세분화했다. 그 결과, 사목의 질을 높이고, 신앙의 기초를 다져 교우촌을 안정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선교 자유기(1886~1890)는 입국 사제가 늘어 구역을 더욱 세분화하고 병인박해로 파괴됐던 교우촌을 회복해 갔다. 사제들은 교우들이 찾아오기 쉬운 곳으로 거처를 옮겨 경당을 마련했고, 교우들은 성사에 대한 열정으로 사제 거처 주변으로 이주해 거처 사목이 증가했다.

 

블랑은 교우촌과 사제의 여건에 맞게 사목 구역을 설정했고, 박해기에 순회 사제의 병 · 박해(추방) 등에 대응하여 구역을 이동 · 확대 · 축소했다. 한국의 지리적 상황을 고려하여 인접 · 경계 지역을 두고 구역을 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순회 경로 · 일정 · 순서는 교우촌 위치와 기후 등을 감안하여 사제가 자율적으로 정했다.

 

조선대목구 사제들은 『사천 시노드 교령』(1803)에 따라 매년 순회 사목하면서, 교세통계표(사목활동표)를 작성하여 대목구장에게 보고하고, 대목구장은 이를 취합하여 파리 본부와 로마 교황청에 전달했다. 블랑 시기부터 남아있는 교세통계표는 사제 사목 활동을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병인박해 전 사목 운영 체계를 찾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또 이 사료들은 병인박해 후 교우촌 변화와 공동체 회복 과정, 교우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교회사 연구 제62집, 2023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김장환(한국교회사연구소 특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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