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레지오 단원이라면 색욕의 악습도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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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07 ㅣ No.591

[레지오 영성] 레지오 단원이라면 색욕의 악습도 극복해야

 

 

생명은 고귀합니다. 그 생명의 출발점이 성입니다. 성은 늘 거룩해야 하고 더더욱 거룩해져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인간에게 허락하신 행위 가운데 가장 거룩한 것이 성이기 때문입니다.

 

성(Sex)의 어원은 라틴어의 Sexus에서 비롯되었습니다. Sexus란 ‘나누다, 자르다’라는 뜻으로 모성으로부터 탯줄을 자름으로서 개별적인 남성이나 여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엄마라는 생명의 매개체에서 완전히 독립된 인간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성(性)이라는 한자도 아주 유사한 의미를 갖는데요. 마음(心)과 몸(生)을 합하여 性이라는 단어를 구성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동서양을 불문하고 성을 정신과 육체를 총칭하는 전인적 인간(全人的 人間)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습니다.

 

이렇듯 성은 부부 일치를 확인하는 상징이며 부부 행위는 생명을 향해 열려진 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부가 형성한 문을 통해서 생명을 선물하십니다. 한마디로 생명을 향한 개방성을 통하여 부부들은 자녀를 낳고 자녀 교육과 성장에 투신합니다. 때문에 가정은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수렴점이며 ‘생명’을 잉태시키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힘은 사회를 위한 가장 바람직하고 소중한 자원인 것입니다. 사회에 일어나는 갖가지 병폐와 범죄가 사랑이 없는 가족, 무심한 가정의 결과물로 드러나는 분명한 이유라 하겠습니다.

 

 

성(性)의 상품화, 거룩한 성을 왜곡시켜

 

그럼에도 세상은 생명의 시작인 거룩한 성을 왜곡시킨 지 오래입니다. 현대의 경제적 논리에 따라 성(性)은 상품이 되었습니다. 생명을 죽이고 더럽히는 사교, 오락, 유흥 등 향락을 위한 각양각색의 퇴폐업소들이 번창하여 ‘국민의 소모품’으로 등극한 느낌마저 듭니다. 성의 상품화는 사랑과 삶의 신비에 대한 불경이며 배우자와 후손에 대한 참된 예의가 아니며 불의한 행위이기에 스캔들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육체를 상품화하는 일에 골몰하고 지냅니다. 자신을 성적인 상품처럼 평가하는 허위의식에 젖어서 마치 몸매와 외모를 통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양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개인의 성가치관에 혼란을 일으켜 인간의 품위를 비인격적인 존재로 비하시키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 성을 상업적 이해관계로 인식한 대중매체의 조작에 따른 결과입니다. 대중매체를 통한 공공연한 성의 노출과 상품화가 세상을 망치고 인간의 수준을 추락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셈입니다. 동물적 유혹에 빠져 무분별한 이기심에 갇혀 살아간다면 행복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영적인 것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아 인간의 품위를 저버린 파렴치한 모습을 살아가게 될 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위기의식에 따른 결단이 시급합니다. 참된 성문화로 이끌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성을 본래의 목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애써야 할 것입니다.

 

이 위급한 문제를 풀기에 앞서 인간이 생성되는 순서를 살펴보고 싶은데요. 태아는 먼저 머리가 생성된 다음, 머리에서 가까운 부분부터 하나하나 형성되어 갑니다. 그리고 최후에 성기가 형성됩니다. 이야말로 인간 형성의 알파(시작)가 머리이고 오메가(끝)는 성기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머릿속에는 마음이 담기고 성기 속에는 생명의 씨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인간이 성과학이나 성교육을 논의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 인간의 머리, 즉 인격체의 마음에 담긴 성가치관이며 성기에 관련된 영역은 맨 나중이라는 의미라 헤아립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과도한 성적 자극이 판치는 대중문화 속에서 넘쳐나는 포르노 산업에 갇혀서 신음할 뿐입니다. 청춘남녀의 무책임한 연애에서 비롯되는 성관계로 인해서 임신과 낙태가 묵인되고 조장되는 어둡고 스산한 죽음의 문화가 파 놓은 깊은 구덩이에 빠져 허덕일 뿐입니다.

 

긍정적이고 성숙한 성에 대한 생각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또 하나의 지표입니다. 이제 ‘식별력 교육’과 ‘예방 교육’을 위하여 어린 시절부터 ‘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성공’이 아니라 윤리와 양심에 기준한 승리가 필요하며 윤리와 양심을 벗어난 기업과 나라의 미래는 아무리 겉으로 융성해 보일지라도 악의 산물일 뿐임을 교육해야 합니다. 옳고 바르고 좋은 가치관에 익숙해지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성적 결합은 단순히 말초신경의 쾌락만을 일컫지 않습니다. 생리적 활동인 남녀의 육체적 결합을 이끌어 내는 모든 감정과 느낌이 포함되지만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결혼한 남녀에게 허락된 유희의 선물입니다. 그럼에도 이 선물은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진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쾌락의 추구를 자제하지 못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악습으로 자랄 수 있는 까닭입니다.

 

 

색욕의 극복은 자신을 다스림과 고행에 있어

 

색욕은 독특한 형태의 탐욕입니다. 성적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여 무질서하게 추구하려는 악습일 뿐입니다. 때문에 색욕은 성적 쾌락이 마치 ‘그 목적 자체’이며 ‘자제력 없이’ 팽개친 상태에서 발생하는 형언할 수 없는 탈선, 고통, 죄들의 원천이 됩니다. 성을 자제하지 못할 때 육체에 속한 종의 신분으로 전락시킵니다.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듭니다.

 

색욕에 빠짐으로써 따라오는 갖은 병폐는 많고도 많습니다. 지성에 눈이 멀고 천박해지며 성급하여 불안정한 삶을 삽니다. 자기애에 취하여 하느님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쾌락을 얻기 위해서 현세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결국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품는 일들에 휩싸입니다. 이렇듯 색욕으로 인한 성적 쾌락에 모든 힘을 쏟는 사람은 영신적 가치를 수용하지 못하여 지극히 즉흥적이고 육체적인 것에 빠져 지내게 됩니다.

 

색욕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을 다스림과 고행에 있습니다. 모든 악습을 이기는 전제 조건은 자기 자신의 의지를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보석과 같은 영적 세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영적 여정의 일부이기에 우리로 하여금 매우 괴롭고 힘든 투쟁을 기꺼이 시작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스스로의 마음과 몸을 단속하는 지혜를 줍니다. 이 영적 여정을 포기할 때 온갖 환상은 거짓된 모습으로 우리 안에 스며들어 공허한 마음을 주입시키고, 기도할 마음을 잃게 하며, 미사에 등한시 하도록 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어느 한 순간에 신앙의 활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무상으로 주었지만 유혹을 견뎌내지 않아도 되고 악마와 전투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영적 삶,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은 있을 수 없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것, 신앙생활에 맛들이고 하느님의 참된 사랑에 대한 열성만이 세상이 말하는 거짓 사랑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보석은 한번 가공해 놓으면 그대로 모양을 유지하지만 사랑은 자라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사랑이기에 꾸준히 가꾸고 틈 없이 돌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레지오 정신에 충실하다면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열매를 맺어 거짓 사랑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주님 사랑이 부쩍부쩍 커나가기를 기대하시는 성모님께서 힘껏 도와주실 테니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9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 부산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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