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수도 ㅣ 봉헌생활

성 베네딕도의 길4: 환대(Hospita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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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4 ㅣ No.401

성 베네딕도의 길 4 - 환대(Hospitalitas)


환대란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환대를 받은 기쁨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환대하면 ‘산처럼’이라는 자작 애송시가 생각난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아버지 산 앞에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
모자를 벗는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살 수는 없을까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늘 행복할 수는 없을까
산처럼.”

가슴을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아버지 같은 수도원 뒷산은 우리를 환대하시는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닮았다. 성경은 사람들을 환대하시는 하느님과 하느님을 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주님은 말씀처럼 가슴을 활짝 열고 모두를 환대하신다. 주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 먹보요 술꾼(마태 11,19) 이라는 별명을 얻었듯이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이들을 환대하셨고 스스럼없이 이들과 어울리셨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길손들을 반가이 맞아들여 하느님을 환대했고(창세18,1-15),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루카10,38-42), 그리고 자캐오는 주님을 환대했다(루카19,1-10).

환대의 관행은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에서도 유구한 전통을 자랑한다. 수도원은 하느님의 환대를 상징하는 ‘환대의 집’이며, 이 하느님의 집에 사는 수도승들 또한 하느님의 환대에 기대어 살다가 떠날 하느님의 손님들이다. 수도원의 앞문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고 뒷문은 사막을 향해 열려 있다. 뒷문으로 열린 사막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앞문을 통해 찾아오는 세상 사람들을 기꺼이 맞아들인다. 하느님 체험이 바로 환대의 원천이다. 매일 수도원 성당에서 거행되는 성체성사와 공동 전례기도를 통해 하느님은 수도승들을 환대하시고 수도승들은 하느님을 환대한다. 공동 전례기도를 통해 반갑게 주님을 환대한 수도승들은 손님도 그렇게 맞이할 것이다. 고독과 침묵의 사막과 같은 수도원에서 공동 전례기도를 통해 수도승들을 찾아오신 주님은 똑같이 세상 사람들을 통해 수도원을 찾아오신다.

수도승들은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 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RB 53,1). 수도원의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야 하고 수도승들은 수도원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 성 베네딕도의 말씀대로 수도승은 온갖 사랑의 친절로서 맞이할 것이며(RB 53,3), 온갖 겸손을 드러낼 것이니(RB 53,6)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서 흠숭받으시고 영접받으시기 때문이다(RB 53,7). 그러나 수도승들은 아무나 손님을 반가이 맞아들일 수 없다. 환대의 공동체적 특성상, 장상이나 장상에게 명을 받은 사람만이 손님들을 접대할 것이며(RB 53,8), 명령받지 않은 사람은 손님들을 영접하거나 대화를 하지 말 것이니(RB 53,23), 공동체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하지 않기 위함이다. 손님들의 방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형제가 맡아보게 하고, 하느님의 집은 지혜로운 사람들에 의해 지혜롭게 관리되도록 한다(RB 53,51-52). 과례(過禮)는 비례(非禮)가 되기 쉬우니 자기와 상관없는 손님들을 마주치거나 보게 되면 겸손하게 인사하고 손님과 더불어 이야기할 수 없음을 말하고 지나감이 좋다(RB 53,24). 수도승의 손님 접대는 분별과 지혜가 요구되는 섬세한 기술이다. 수도승들은 손님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듯이, 손님들은 수도승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난다. 손님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수도승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만남이 환대 영성의 절정이다.

수도승들은 손님 환대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을 맞아들일 때 더욱 그러하다(R B 53,15). 손님으로 오는 수도승들을 맞아들이는 여러 예식들(RB 53,8-13) 이 오늘날에 와서는 시행되지는 않지만 환대의 영적 가치를 환기한다. 특히 손님을 영접하는 아빠스와 모든 형제들이 그들의 발을 씻어 준 후 함께 외우는 계응송이 환대 영성의 핵심을 밝혀 준다. “당신 성전 가운데에서 하느님이여, 우리는 당신 자비를 받았나이다”(RB 53,14). 손님들을 통해 주님을 환대할 때 수도승들 역시 자비하신 주님의 환대를 받는다. 규칙의 손님맞이 예식을 살펴보면 손님은 주인이 되고 주인인 수도승은 종이 되어 온갖 친절과 사랑과 겸손을 다해 손님을 섬긴다. 금식이 인간의 법이라면 환대는 하느님의 법이다. 깨뜨릴 수 없는 중대한 금식의 날이 아니면 장상은 손님 때문에 금식까지도 해제한다(RB 53,10). 이렇게 손님을 통해 오시는 주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대접한다고 환대가 아니다. 손님을 기꺼이 맞아들이고 받아들여야 진정한 환대이다. 복음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마리아가 진정한 환대의 모범이다. 마르타는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어 정작 주님은 안중에도 없었지만(루카10,40), 마리아는 주님을 모시고 그분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진정으로 그분을 환대했다.(루카10,39)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을 찾는다. 이들은 수도승들의 공동 전례기도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들을 환대하시는 주님을 만난다. 또 수도승들은 수도원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며, 손님들 역시 수도승들 안에서 자기들을 환대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난다. 몇 달 전 문득 깨달은 바가 지금도 생생하다. 수도원 산책 중 주차장 주변에 이르러,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크고 둥근 해바라기 꽃들의 환한 얼굴을 보는 순간, 이것이 진정으로 환대하는 이의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그때 떠오른 시구로 글을 마친다.

“해를 향해, 해를 닮아, 해를 담아
크고 둥근 환한 얼굴
해바라기 꽃들
주변이 환하다
저절로 활짝 열리는 마음
환대는 해바라기 꽃처럼 하는 것이다.”

[분도, 2009년 겨울호, 글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전각 정호경 루도비코 신부(안동교구), 사진제공 박현동 블라시오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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