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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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성 베네딕도의 길1: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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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4 ㅣ No.398

성 베네딕도의 길 1 -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만들자


공동체는 오늘날 사회가 궁구하는 화두 중 하나이다. 곳곳에서 공동체들이 생겨나지만, 또한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결코 쉽지 않으나, 진정 살아있는 공동체 건설이 시급한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함께 모였다고 공동체가 아니라 모두가 중심을 향하여 다양성의 일치를 이뤘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서로 좋아한다고 공동체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방향과 중심이 같아야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수도원 역시 공동체이다. 수도원은 ‘주님을 섬기는 학원’(RB 머리, 45)이고 수도승들은 모두 이 학원의 학인(學人)들이다. 모든 학인이 주님 한 분을 섬기기 때문에 공동체의 항구한 일치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베네딕도 성인은 이렇게 가르친다.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RB 4,21)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안에서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라.”(RB 4,72)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RB 72,11) 내 삶은 물론 공동체의 중심이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거나, 삶의 중심에 놓아서는 안 된다. 수도승들은 물론 많은 현대인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중심 없이, 생각없이, 영혼없이 자기를 잃고 살아가기에 문제이다. 작금昨今의 입시위주 학교 교육도 이런 ‘자기’ 없는 인간을 양산하는 추세다.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는다면 그 세상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수도승들에게 그리스도 없이 살아가는 것은 영혼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아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리스도는 수도승은 물론 수도공동체의 중심이자 영혼이다.

‘참 나’를 살기 위하여, 또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그리스도를 우선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면 저절로 섬기기 마련이다. 이런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 섬김이다. 수도승은 물론 우리 믿는 이들에게 영성이 있다면,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이 있을 뿐이며,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뿐이다. 믿는 이들은 모두 영적으로 주님의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를 섬기러 왔던 주님에 대한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응답이다. 이를 깨달아야 기쁘게 자발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다. 우리의 유일한 참 스승은 그리스도 예수뿐이다.(마태 23,8) “너희 가운데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3ㄴ-45) 평생 종과 섬김의 영성을 몸소 살았던 주님이었다. 하늘 높이 올라가야 만나는 지고한 주님이 아니라 땅 낮은 곳에 내려와 종과 섬김의 영성을 살아야만 만날 수 있는 겸손한 주님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주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섬기면서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학원공동체가 바로 수도공동체이다. 이를 두고 오늘날의 학교제도로 생각하기보다는 자발적 모임의 배움터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 수도승들은 이 배움터에 평생 정주하면서 주님 섬기는 법을 공부해야 하는, 죽어야 졸업인 평생 학인들일 수밖에 없다. 나이가 바로 학년이고 죽는 날이 바로 졸업이다. 수도승의 공부 목표는 단 하나, 주님을 잘 섬기는 것이다. 하여 주님과 주님의 뜻을 잘 알아야 주님을 잘 섬길 수 있기에 주님을 알아가는 평생 공부는 필수이다.

주님을 섬긴다는 표현은 막연한 게 아니다. 진정 주님을 섬기는 삶은 수도승들의 모든 수행을 통해 표현되기 마련이며 좋은 수도원은 주님을 섬기는 분위기가 가득한 학원공동체이다. 결국 침묵, 기도, 노동, 성독(聖讀), 절제 등 모든 수행은 주님을 잘 섬기기 위한 방편들이다. 특히 사순절은 각자에게 적절한 섬김의 분량인 절제의 수행에 힘써야 할 때이다(RB 49.5).

주님을 직접적으로 섬기는 수행은 매일 참여하는 공동기도 시간이다. “그 무엇도 하느님의 일보다 앞세우지 마라.”(RB 43,3)는 말씀대로 수도승들에게 주님을 위한 섬김의 의무(RB 16,2)는 먼저 공동기도인 미사와 성무일도이다. 활동의 섬김에 분주했던 마르타(루카 10,41)보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함으로 주님을 잘 섬겼던 마리아(루카 10,39)처럼, 주님의 말씀을 새기는 공동기도가 참으로 중요하기에 규칙서의 많은 부분(RB 8-20장)도 공동기도에 할애되고 있다. 비록 여행 중 홀로 있게 되더라도 섬김의 분량인 기도에 소홀해선 안 된다(RB 50,4). 공동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소통은 물론 형제들과의 소통도 원활해져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도 촉진된다. 특히 매일 거행하는 미사를 통해 형제들은 모두 정성껏 주님을 섬기며 주님 역시 당신 말씀과 성체의 사랑으로 우리를 섬긴다.

주님을 섬김은 형제들을 섬김으로 표현된다. “형제들은 서로 섬길 것이며(RB 35,1) 모든 것에 앞서 모든 것 위에 병든 형제들을 돌보아야 한다(RB 36,1). 참으로 그리스도께 하듯이 그들을 섬겨야 하며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 또한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으로 맞아들여야 한다(RB 53,1).” 이처럼 수도승들은 서약한 거룩한 섬김 때문에 장상과 형제들은 물론 특히 병약한 형제들을 섬겨야 한다.

주님을 섬기는 학원인 수도공동체는 얼마나 아름다운 복음적 공동체인가! 그러나 세상에 이상적인 공동체는 없다. 수도공동체 역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상적 섬김의 공동체를 향해 여정 중에 있는 수도공동체이다. 성 베네딕도는 그의 규칙서에서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학원공동체의 설립을 위해 평생 배워야 할 마음가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도승들은 지극히 열렬한 사랑으로 이런 열정을 실천할 것이다. 즉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RB 72,3-12).”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 수도원에서 평생 주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주님의 학인들로 살아가는 복된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이다.

[분도, 2009년 봄호, 글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전각 정호경 루도비코 신부(안동 교구), 사진제공 박현동 블라시오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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