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 스승이며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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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3 ㅣ No.140

[수도 영성]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 스승이며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요한 10,10)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생활하고, 전파하고자 창설자를 통해 초대받은 이름이다.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는 1700년 프랑스 로렌 지방에서 요한 바틀로(Jean Baptiste Vatelot, 1688-1748년) 신부가 창설하였다. 존경을 받는 지도자는 남을 지도하기에 앞서 섬기는 자세부터 익히고, 참된 교육자는 가르치면서 배운다. 인류의 참교육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승이면서 제자들의 종이 되기를 자청하셨고(요한 13장 참조), 종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숭고한 사랑을 스스로 실천하셨다. 요한 바틀로 신부는 이렇게 스승이면서 종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가르치면서 봉사하는 교육자를 배출하고자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를 설립했다.

 

 

시대의 절박한 요청에 응답하다

 

바틀로 신부가 수녀회를 창설하던 당시(1720년 즈음) 프랑스와 독일은 알사스 로렌 지방을 사이에 두고 오랜 국경 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가난과 질병으로 영육이 피폐했고, 특히 젊은이들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채 윤리적 탈선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바틀로 신부는 그들에게 잃어버린 가치관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또한 이미 교회 안에서도 의식 있는 사제들과 수도회가 공동으로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바틀로의 눈길은 교회의 손길조차 미치지 못하는 척박한 시골 마을의 어린이와 여성들에게 미쳤다. 그는 새로운 학교를 설립하는 것보다 신심 깊고 능력 있는 교사를 양성해 현지에 직접 파견하는 방안을 찾고자 하였다.

 

이것이 수녀회의 기초가 되기는 했지만 바틀로의 뜻에 적극 동조했던 세 여동생을 비롯한 초기 교사들은 정식 수녀가 아니었다. 그들은 수도원도 없었고, 봉쇄구역이나 서원, 규칙도 없었다. 단지 자신들을 ‘바틀로트들’(창설자의 이름인 바틀로의 여성 복수형)이라고 부르며 파견된 곳에 적응하며 살아갔다.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요청에 응답하려는 몸짓이 제도와 규칙보다 앞선 셈이다.

 

파견된 교사들은 가난한 이들과 똑같이 가난하게 살았고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눴다. 그러나 그들은 파견자의 신분을 자각하고자 새벽에 일어나 함께 기도하고 일했으며, 학교를 기본적인 선교의 터전으로 삼았다.

 

바틀로 신부는 이들을 위한 묵상집과 교수법을 저술했고, 이 책들은 파견되는 교사들의 영적 도구가 되었다. 이렇게 설립된 수도 공동체는 바틀로 신부가 선종하던 1748년에는 40개의 분원이 생길 정도로 급성장했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봉사하는 사람’

 

“사도들에게는 이 세계가 그의 세상이듯이 교사에게는 학교가 그의 세상이다. 바로 그곳이 교사의 작은 세계이다. 교사는 그안에서 횃불이 되어야 한다”(초창기 문헌 제5 묵상). “학교에서 일하는 수녀들의 활동으로 이뤄지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진리를 알게 하기위해 사용하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다”(초창기 문헌 제1 묵상).

 

이와 같이 바틀로에게 교사와 사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 경건하고 품위 있고 능력 있고 열심한 사람, 인간적으로 성숙한 정돈된 영혼을 지닌 사람, 모든 면에서 조용히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사는 곧 수도자였다. 따라서 교사는 스승이며 종인 예수를 따라 ‘아는 이’가 아니라 ‘봉사하는 이’로서 존재해야 했다. 교사는 말로써 직접 가르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피교육자가 스스로 깨닫고 목표에 도달하도록 모범만 보이면 될 때도 있다.

 

바틀로는 특히 인간에 대한 신뢰심이 남달리 깊었다. 인간 안에 담긴 하느님 자녀로서 존엄성을 인정하고 믿었던 그는 형식과 규율을 뛰어넘었다. 당시 많은 수도회는 공동생활과 봉쇄구역이 보장되지 않으면 수녀들을 파견하기를 주저했지만, 그는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되면 혼자라도 파견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영감에서 나온’ 지혜와 신뢰심으로 이 세상에 제자들을 파견하신 그리스도처럼, 초창기 수녀들을 로렌 지방과 그들을 기다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파견하면서 사도적 수도생활을 권고하였다.

 

 

사도적 수도생활

 

바틀로는 수녀들이 그 지역의 필요나 형편에 따라 혼자 또는 공동체로 살 수 있는 덕행을 갖추도록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준비된 사람들은 온전히 신뢰하였다. 이런 개방적인 자세는 주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마음과 함께 인간에 대한 믿음 없이는 형성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바틀로는 “하느님께 열심히 도움과 힘을 간구하라. 하느님 없이는 그분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고자 하시는 일을 성실히 이행할 수가 없다.”는 말씀으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간직하게 하였다.

 

“창설자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은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며 사람들을 가까이 하는 생활이다.”(본회 회칙 제1조)는 우리의 신원을 분명히 말해준다.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생활에는 스승이시며 종이신 주님과 깊은 만남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 사고방식, 생활양식 등이 어떠했는지를 항상 새롭게 인식하고자하는 우리의 기도는 선교 활력의 원천이 된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스승이시며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은 수녀들의 사도직에 활력을 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바틀로는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할 때까지 이 성장을 촉진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마음에 형성되는 것”(요한 10,19; 갈라 4,19 참조)은 교육을 통해 인간 생명에 봉사한다는 바틀로의 삶의 목적이자 영성의 핵심이었다.

 

 

스승이며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는 인간의 진보와 발전에 관계되는 모든 것에 개방되어 있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생물학적 ? 심리적 ? 정신적 차원에서 모든 인간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할 때까지 인간 생명에 봉사한다.

 

“우리는 각 사람이 가는 길에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의 사명인 생명에 대한 봉사를 완수”(회칙 7조) 하며, 오늘도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수녀들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완전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를 통해 형제들에게 파견”된다.

 

[경향잡지, 2008년 5월호, 글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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