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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예수회 - 가난하고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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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3 ㅣ No.141

[수도 영성] 예수회 - 가난하고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도적 수도회의 탄생

 

성 이냐시오와 그의 동료들은 1541년에 예수님의 이름을 딴 수도회를 인가해 줄 것을 교황께 청하였다. 당시는 수도회가 난립한 상황이라서 교회법상 기존 수도회들과 다른 형태의 생활양식을 택하는 수도회 설립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결국 새로운 형태의 수도회, 곧 사도적 수도회의 탄생을 축복해 주었다.

 

 

사도직에 파견되는 사람들

 

예수회의 영성은 이냐시오의 “영신수련”과 “예수회의 회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회는 ‘파견되는 사람’들의 단체로서 사도적인 영성으로 살아간다. 죄악과 죽음에 노출된 세상에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성자께서 세상에 파견되신 것처럼(“영신수련” 107), 예수회원은 하느님의 일을 위해 세상에 파견되는 사람들이라는 의식이 처음부터 강하게 지배하였다. 초기 예수회원들은 ‘주님 안의 벗들’로서 예수님과 열두 사도들처럼 가난하게 살면서 여기저기에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며 애덕 활동을 실천하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용의로 살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와 같은 생활양식에 장애가 되는 공동 성무일도 영창을 포기하고 고유한 수도복을 제정하지 않고 그 대신 해당지역의 교구 사제들과 같은 복장을 착용하도록 하였으며, 의무적 공적인 고행극기를 없애고 사도적 기동성을 유지하고자 자매 수녀회와 재속회를 두지 않았다.

 

이냐시오는 트리엔트 공의회에 파견되는 신학자들에게, 시간을 내어 인근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에게 봉사활동을 실천하라고 권고하였다. 실제로 이 권고를 얼마나 실천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그들이 사도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알려주는 일화라 하겠다.

 

 

수도서원의 사도적 이해

 

“예수회의 목적은 회원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고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같은 은총으로 모든 이웃의 영혼이 구원되고 완성되도록 힘껏 돕는 데 있다.”(“회헌” 3)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수도서원을 수도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사도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

 

그들은 정결의 의미를 개인적 성성(聖性)을 지향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위한 자유를 얻는 것으로 이해한다. 정결로 인해 철저한 사도적 순응성을 가질 수 있으며, 어느 한 문화나 장소에 머무는 정주성(定住性)에서 초연하여 자신을 어디로 파견하든지 그에 순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청빈 역시 사도적으로 이해한다. 청빈으로써 온갖 소유욕에서 자유로워진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가난하고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믿게 될 것이다.

 

순명은 사도적 특성을 완성하는 덕목이기 때문에 이냐시오는 예수회가 특히 순명의 덕에서 탁월하기를 바랐다. 그는 회원들에게 죄가 되지 않는 한 장상의 명령에 따를 것을 요구하였으며, 단지 실행의 순명이 아니라 의지와 이해의 순명에 이르기를 바랐다.

 

 

교회의 얼굴을 새롭게 함

 

하느님과 교회의 선교 사명에 동참하고자한 그들은 개신교가 발흥하던 유럽 지역의 선교와 대중교육의 보급에 힘쓰는 한편 미지의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그들은 세계 어디든지 거침없이 나아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전파하였다. 그 결과 16세기에 유럽 세계에 제한되어 있던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동양 세계에까지 복음을 전파하면서 명실 공히 보편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낙관주의

 

예수회원의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인격적 사랑과 함께 세상에 대한 낙관주의에서 나온다. “영신수련”의 결론에 해당하는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은 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사실은 우주 만물 어디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임을 일깨워준다.

 

세상과 역사는 하느님의 작품이며 아직 불완전하지만 그분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활동과 관상이 둘이 아니다. 만사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그분과 하나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예수회 영성은 이처럼 세상과 역사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복음서의 가르침대로 이 세상은 하느님이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보내실 만큼(요한 3,16 참조) 하느님에게 소중한 곳이다.

 

역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우리 땀과 노력으로 일구어야 할 일터다. 이러한 태도로 선교에 임한 마태오 리치(중국)와 데 노빌리(인도)의 적응주의적 선교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이들은 토착문화를 존중하면서 하느님을 모르는 그들이 추구하여 마지않던 완성을 하느님 안에서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마태오 리치를 선교사의 모범으로 제시하셨다.

 

 

하느님의 교회를 사심 없이 섬김

 

예수회원들은 선교사명을 수행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한다.

 

이냐시오는 각 회원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분별 있는 사랑”을 발휘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도록 독려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교에 사심 없이 임하였고 세속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돌보아 주지 않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보살폈다.

 

그 결과 영화 ‘미션’에서 보듯이 세속의 정치, 경제 권력자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일도 적지 않았고, 마침내 그들의 압력을 받아 약 40년간 해산되는 비운을 맛보기도 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러한 예수회의 전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교회의 어느 지역에나, 곤란이 많은 활동 분야나, 첨단을 이루는 분야 어느 곳에나,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교차로에,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영역에, 인간들의 간곡한 염원과 복음의 선포 사이에 차질이 생기는 곳에는 반드시 이냐시오의 회원들이 등장하였고 지금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수의 회원들이 난민 보호활동(Jesuit Refugee Service)에 헌신하고 있다.

 

 

세상과 대화하는 영성

 

오늘날 예수회원들은 신앙의 봉사와 하느님 나라의 정의 증진이 불가분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또한 신앙의 봉사와 정의 구현은 복음과 문화의 대화 및 타종교와 대화를 제외하고서는 올바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회원들은 신앙을 위한 봉사와 정의 구현, 문화에 대한 참여와 타종교들의 체험에 대한 개방을 자신의 선교사명의 본질로 여기고 그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정제천 요한 - 예수회 신부. 광주 가톨릭 대학교 교수.

 

[경향잡지, 2008년 6월호, 정제천 요한 예수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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