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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글라렛 선교 수도회 - 용광로 불 속에서 달구어지는 쇠막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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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3 ㅣ No.143

[수도 영성] 글라렛 선교 수도회 - 용광로 불 속에서 달구어지는 쇠막대처럼

 

 

수도회의 카리스마 - ‘얼굴’의 비유

 

성령의 선물인 카리스마가 가시적 차원을 초월하는 신비임을 감안하더라도, 필자는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얼굴’에 비유하고 싶다. 사람마다 얼굴이 제각기 다른 것은 얼굴을 구성하는 요소(눈, 코, 입, 귀, 이마 등)가 있고 없음의 차이가 아니라, 얼굴이 저마다 지니는 고유한 윤곽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각 수도회 카리스마의 고유한 특성과 차이 역시 이와 비슷한 이치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구성하는 요소(기도, 관상, 선교, 말씀 선포, 예언자적 삶의 증거, 애덕과 봉사의 실천 등)가 있고 없음의 차이가 아니라, 그 구성 요소가 저마다 고유하게 이루는 윤곽이 한 수도회 카리스마의 특성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 따라 글라렛 선교 수도회의 카리스마적 특성을 수도회의 고유한 얼굴로 비유할 수 있다. 그 얼굴은 ‘말씀의 봉사자’나 ‘사도적 선교사들의 공동체’와 같은 그리스도 신비의 여러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 물론 다른 많은 수도회도 같은 구성요소를 공유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글라렛 선교 수도회의 카리스마는 고유한 윤곽을 지닌다. 그 윤곽은 수도회 설립 이래로 역사 안에서 전수되고 구현되어 온 수도회 고유의 영적 체험으로 형성되어 왔다.

 

 

글라렛 영성의 결정체 - 용광로 변형 체험

 

글라렛 선교 수도회의 영성은 ‘용광로 변형 체험(la fragua)’을 통해 잘 드러난다. 설립자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성인은 자서전 342항에서 자신이 겪은 소명의 식별과 변형 체험을 쇠막대가 예리한 화살의 형태로 주조되는 과정에 비유하였다.

 

이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한 대장장이가 자신의 작업장에서 쇠막대를 용광로 불 속에 집어넣어 달군 뒤에 그것을 꺼내어 모루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조수와 번갈아가며 쇠망치로 치면서 예리한 화살의 형태로 주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장장이는 선교사 양성과 변형의 주도적 작인이 되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작업장은 양성과 변형의 여정을, 쇠막대는 자신의 양성과 변형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선교사를, 용광로의 불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는 성령의 불 또는 성모성심을, 모루는 변형에 수반된 고통과 시련을, 조수는 하느님의 주도력에 수덕적 자세로 응답하고 협력하는 선교사 자신을, 쇠망치로 주조함은 그리스도와 일치를 위한 양성과 변형에 필요한 여러 역동을, 예리하게 주조된 화살의 형태는 성령에 의해 파견될 준비를 갖춘 선교사를 가리킨다.

 

이러한 변형 체험은 각 단계별로 클라렛 성인의 영성적 체험을 반영하는 성경 말씀과 연결되어 전개된다.

 

1. 변형의 용광로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단계

 

클라렛 성인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마태오 복음 24장 26절을 묵상하면서, 삶의 여러 시기에 걸쳐 식별의 교차로를 체험하였다. 그것은 인간적 야망과 하느님의 영광 사이의 교차로, 안주와 투신 사이의 교차로, 자기 영역 ? 문화 ? 자리에 대한 집착과 집 없이 순회하는 사도적 삶 사이의 교차로이다. 부단한 양심성찰과 피정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그러한 삶의 교차로를 넘어설 때마다, 인간은 더욱 완전한 회개와 변형을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2. 용광로 불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단계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처럼, 변형의 두 번째 단계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있게 체험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체험은 성령의 불로 단련되어 삶의 피상적 표면에서 깊이로 넘어가는 여정을 수반한다. 아울러 이 여정은 내적 침묵 안에서 기도 수행과 성경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촉진된다. 특별히 말씀의 청취는 ‘말씀의 봉사자’라는 수도회 카리스마의 주요 구성요소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내적 침묵 안에서 말씀이 하느님 신비의 음악으로 다가와 내면을 가득 채울 때, 성령의 불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 사람을 단련시키고, 사랑의 체험을 받은 사람이 개인적 은사에 맞게 어느 방식으로든 선포하게 한다.

 

3. 그리스도와 일치를 위해 모루 위에서 주조되는 단계

 

마치 불로 달구어진 쇠막대가 모루 위에서 날카로운 화살의 형상으로 주조되는 것처럼,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이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분과 일치되어 그분의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선교사로 주조되는 단계이다.

 

클라렛 성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하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이처럼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변형되는 차원으로 체험하였으며, 이 성경 구절을 모든 선교활동의 원천이 되는 카리스마적인 힘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와 일치하도록 주조되고 그분의 사랑을 전할 수밖에 없도록 변형되는 과정은 성령의 주도력에 응답하는 사도적 생활방식과 성체성사의 영성을 수반한다. 사도적 생활방식이란 청빈과 겸손과 온유와 단순 소박함과 극기 등 사도적 덕목을 삶 안에서 함양하고 선교적 열정으로, 집 없는 순회의 삶을 사도적 공동체의 삶 안에서 통합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아울러 이러한 사도적 생활방식과 더불어 글라렛 수도회의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와 일치하고자 성체성사 영성의 삶을 살아가도록 요청받는다. 성체성사의 영성에 따라 쪼개어지고 나누어지는 자기 봉헌의 삶으로 변형됨이 그리스도와 나의 일치를 더욱 완전히 구현하는 길이 된다.

 

4. 성령의 손에 맡겨져 파견될 준비를 갖춘 단계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61장 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루카 4,18)고 선포하신 말씀은 용광로 변형체험의 마지막 단계, 곧 마치 예리한 형태의 화살처럼 주조되어 성령의 손 또는 성령으로 가득하신 성모성심에 자신을 맡기고 파견의 태세를 갖추었던 클라렛 성인의 선교 체험을 반영한다.

 

이처럼 성령의 주도하심에 기꺼이 응답하고 협력하려면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선교 영성으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클라렛 성인이 기도와 더불어 선교사의 두 발 가운데 하나로 일컬었던 것처럼, 지속적인 공부와 학습은 창조적인 선교 영성을 기르는 데 필요한 경로이다. 아울러 공동체 내의 선교 협력과 교회 내의 동반 선교를 추구하고 성장시키는 자세야말로 글라렛 선교 영성을 창조적으로 구현하는 데 필수조건이 된다.

 

용광로 변형 체험의 현대적 적용과 구현

 

글라렛 성인의 영성적 체험이 면밀히 결집된 용광로 변형 체험은 단계마다 삶의 어느 특정한 시기에만 제한하여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각 단계는 소명의 식별과 회개와 변형과 투신의 과정이 요청되는 일련의 시기에 맞게 삶의 전 과정에 걸쳐 적용될 수 있다.

 

자기 봉헌과 창의적인 투신이 온갖 소음과 자기중심의 풍조 속에 심각하게 방해받고 있는 오늘날, 용광로 변형 체험은 하느님의 영광과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글라렛 성인의 자서전, 199항) 글라렛 회원을 넘어 더욱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보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요청 속에 수도회의 영적 자산을 교회 안에서 풍요롭게 성장시키고 나누는 것이 말씀에 봉사하는 수도자들의 새로운 선교 과제로 제시된다.

 

*수도회 고유명칭은 ‘글라렛’으로, 성인명은 천주교 용어위원회 규정에 따라 ‘클라렛’으로 표기한다.

 

[경향잡지, 2008년 8월호, 김성웅 베드로 글라렛 선교 수도회 수사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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