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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사랑의 선교회 - 그리스도의 목마름을 채워드리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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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4 ㅣ No.145

[수도 영성] 사랑의 선교회* - 그리스도의 목마름을 채워드리고자

 

 

특별한 여행

 

1946년 9월 10일 가톨릭의 한 수녀는 피정을 위해 인도의 다즐링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상을 떠나 하느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려 여행 중이던 한 수도자에게 인생 일대의 사건이 일어난다.

 

인도의 실상을 모르는 그녀가 아니었건만 그날 기차여행은 특별했다. 창밖의 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한 명의 걸인에게 그녀의 시선이 멈추었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 “목마르다”(요한 19,28).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 들려준 마지막 일곱 성언(聖言) 가운데 하나인 이 메시지가 그녀의 귀에 그날 그렇게 뚜렷이 들려온 것이다.

 

그날 이후 그녀의 삶은 바뀐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당시 학교 교장수녀였던 그녀가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된 날이 된 것이다. 이미 수도성소에 응답한 그녀에게 그날은 ‘부르심 안의 부르심’을 들은 날이고 ‘제2의 부르심’에 응답한 날이 된 것이다.

 

그녀가 바로 빈자의 어머니로 불리는 마더 데레사이다. 그녀가 수도자 신분으로 세상 밖, 가난한 이들 안으로 들어오기까지는 2년의 세월이 걸렸고 ‘사랑의 선교회’라는 수도회가 탄생하기까지는 그로부터 또 2년이 걸렸다. 한국전쟁이 나던 그해, 그렇게 마더 데레사에 의해 ‘사랑의 선교회’는 시작되었다.

 

 

목마름의 영성

 

우리 수도회의 수사, 수녀들의 생활방식과 영성은 마더 데레사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요약된 이 ‘목마름’의 영성이 사랑의 선교회의 영성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영성의 시대’ 또는 영성이 난무하는 시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러한 현대의 흐름에서 나는 사랑의 선교회의 영성을 19세기를 살다간 니체와 20세기를 살다간 마더 데레사의 철학적 만남으로 풀어보고 싶다.

 

니체는 인간의 삶을 주관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의지라고 본다. 그래서 인간들이 보편적, 종합적으로 뭔가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은 이성작용이 아니라 그런 행위를 알려고 하는 의지가 먼저 작용하며, 그런 의지의 작용이 이성이란 도구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니체가 외친 “신은 죽었다.”라는 진의는 존재론적 부정이 아니다. 신을 죽인 이들을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에게 돌림으로써 가치론적 부정을 한 것이다. 저 높은 천상, 곧 이데아의 세계인 초월계만을 꿈꾸는 교회와 사람들에게 이제 그리스도 예수는 참으로 인성을 지니고 이 세상에 자연인으로 와 계심을 주장한 것이다.

 

역사 안에 그리스도는 생생히 서른세 해를 인성으로 살다 가신 전형적인 인물이며,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의 지상 여정에서 인성을 섬겼다는 우리의 신앙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랑의 선교회의 영성은 마더 데레사가 제2의 부르심을 받은 그날, 걸인으로 변장한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가난한 이들의 가면 속에 숨어계신 그리스도’의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인성 안에 깃들인 그리스도의 신성이며 한 수도회를 탄생시키고자 준비시킨 하느님의 섭리였다.

 

 

가난한 이들의 가면 속에 숨어계신 그리스도

 

이 개념이 우리 사랑의 선교회 수사들과 수녀들의 관상적 요소의 핵심이며 우리들의 삶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하나의 단어가 있는데 ‘비참한 이들의 가면 속에 숨어계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카리스마의 ‘가면’이라는 단어이다. 이 축약된 단어 속에 그리스도께서 실존한다는 것이 우리의 참영성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어느 한 사람 빼놓지 않고 인생의 여정 길에서 고통이라는 실체를 피해 가기는 힘들다. 신비스러움 자체인 ‘삶’의 곳곳에 고통은 동반체로 자리하고 있고, 이 동반체는 너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에 깊이 동의해야만 나눔의 영성은 그 ‘참’에 이르게 된다고 본다.

 

고통의 현장에서 만난 그리스도 예수는 마더 데레사에게는 인간 그 자체였다. 십자가 위의 목마름의 실존이었고, 고통 받는 인간 속에 생생이 살아있는 자연인으로서 실존하는 분이다. 이 인성 안에 깃들인 예수의 삶에 깊이 접근하지 않았다면 마더 데레사는 제2의 부르심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사랑의 선교회는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인성에 동일함을 부여하셨던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 그리스도는 그렇게 가난한 이들의 비천한 가면 속에서 참인간의 모습으로 마더 데레사에게로 다가온 것이다. 니체가 일찍이 말한 이데아의 신, 천상적인 신은 더 이상 우리의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이 세계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자연 속에 있음이요, 마더 데레사는 이 신을 살아있는 모든 것, 종교와 인종을 초월하여 생명과 피조물 안에서 특히 우리 인간 안에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고통의 실체에서 만나야 한다고 삶으로써 증언한 본보기가 된 것이다.

 

 

사랑을 의지적으로 살아내다

 

자본주의가 절정에 달한 한국 사회에서, 모든 가치와 행복, 심지어 규범까지도 물질이 중심이 된 현실 앞에서도,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사랑과 나눔 안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이, 이성보다 의지의 우위를 인정하는 한 예라 할 수 있겠다. 니체가 이성에 앞선 의지의 철학을 발전시켰다면, 사랑을 근원적으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역설한 사랑의 선교회의 영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이제 우리 수사들과 수녀들은 온 세상에 이 영성과 그리스도의 목마름을 채워 드리고자 파견된다.

 

그러나 아직도 추수 밭에 일꾼이 적어 그 일꾼이 필요하다. 성모께서 태중의 예수님과 함께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이 첫 번째 사랑의 선교사가 된 배경이다. 세상에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전할 사랑의 선교사를 초대하며, 우리의 영성에 관한 짧고 미비한 글을 내려놓는다.

 

*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와 사랑의 선교 수녀회가 활동하고 있다(club.cyworld.com/mc-brothers).

 

[경향잡지, 2008년 10월호, 글 정민 요한 사랑의 선교 수사회 성소 담당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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