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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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친절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노고(가스등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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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7 ㅣ No.580

[레지오와 마음읽기] 친절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노고(가스등 효과)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가스등’(1944년 작)이라는 흑백영화가 있다.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이모가 살해된 후 모든 유산을 상속받은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는 그레고리(찰스 보이어)와 사랑에 빠지고, 상속받은 저택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레고리는 폴라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폴라의 외출을 막으며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아간다.

 

그러던 중 이모의 팬이었던 런던 경시청의 브라이언 경위(조지프 코튼)가 밤마다 방 안의 가스등이 희미해지고 다락방에서 미심쩍은 발자국 소리가 난다는 폴라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의 전모를 추리해 내는데 성공한다. 사실 그레고리는 이모의 살인범이었다. 그는 이모의 값비싼 보석을 가로채기 위해 폴라에게 접근하여 결혼을 하여 밤마다 근처의 빈집을 통해 폴라의 집 다락방으로 숨어들어 이모의 보석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밝혀지고 폴라는 자신을 되찾게 된다.

 

‘가스등’은 전기가 사용되기 전 집안에 불을 밝히던 것으로, 영화에서는 폴라가 분명히 집안의 가스등이 매일 밤 흐려지는 걸 목격하지만 그레고리는 단지 상상에 의한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폴라가 본 현상을 스스로 믿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를 상징한다. 이 영화의 이름을 딴 ‘가스등 효과’는 미국의 심리치료사인 로빈 스턴이 명명한 것으로,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일종의 심리적 학대를 일컫는다.

 

 

‘가스등 효과’는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일종의 심리적 학대

 

즉 어떤 사람(가해자)이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반복적으로 교묘하게 조작해, 상대(피해자)가 자신의 현실감각이나 판단력, 기억력 등을 의심하게 되어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의존하여 가해자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행위를 말한다. 이렇게 되면 둘의 관계는 서로를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갑을인 수직적인 관계가 되어 버리고,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긍지나 자부심이 없이 무기력해져서 가해자에게 끌려가는 상황이 되고 만다.

 

실제로 가해자들이 잘 쓰는 말들은 “네 능력은 내가 더 잘 알아,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라는 것들이고, 피해자들이 주로 하는 생각은 “내가 정말 이상한 건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것 같은데”라는 것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관계는 친구나 가족, 배우자, 연인 등 친밀한 사이에서 자주 일어날 수 있고, 피해자들 대부분은 동정심이 많고 공감능력이 뛰어나거나 온순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K자매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어 돌봄을 받지 못한 탓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어려워 매사를 점쟁이에게 의존하며 생활하다 세례를 받게 되었다. 영세 대모는 자신도 같은 처지로 자랐다며 그 자매를 마치 엄마처럼 돌봐주면서 일일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려주자, K자매는 대모와 늘 붙어 다니며 의지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대모가 이사를 가게 되자 의지할 곳이 없어 불안해진 그녀는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레지오에도 입단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조금씩 대모의 말들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즉 그녀의 대모는 대녀가 냉담하면 대모가 지옥에 간다며 그녀가 대모가 되는 것을 말렸는데 반하여, Pr.에서는 대모를 서주지 않으면 어떻게 영세자들이 나올 수 있느냐며 대모가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사소하지만 많은 부분이 대모에게 배운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그녀는 조심스레 Pr. 단장과 상의하였고, 결국 대모가 가진 종교적 편견이 자신에게도 전해져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제가 영세를 받은 건 가톨릭 신자들이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신자가 되고 오히려 더 많은 금기로 자유롭지 못했어요. 이유는 대모님이 저를 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당시 가끔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으니 저에게도 문제가 있었어요. 다행히 레지오 단원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지고 기쁘게 생활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길로 여겨져요.”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에도 분별이 필요해

 

“레지오 활동의 본질은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것”(교본 434쪽)이다. 하지만 레지오가 본당의 다른 단체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형태의 지원을 제공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올바른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교본 496쪽)고 되어 있는 것처럼,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에도 분별이 필요하다. 가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남을 지배하려는 욕구에 휘둘려 친밀감을 내세워 지나친 간섭으로 상대가 나를 의존하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맞추며 끌려가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왠지 그 사람과 있으면 잘못이 없는데도 잘못한 것 같고 미안함이나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고, 실제로 그 사람은 내가 한 행동이나 말들에 대해 비난을 하면서도 나를 사랑해서라고 한다면 이것은 관계의 적신호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감정과 소망을 느끼고 지니고 있는지를 알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표현은 소중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존중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각 단원은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개인이고, 각자 다른 욕구를 지니고 있다.”(교본 308쪽)고 하니 하느님의 훌륭한 작품으로서의 나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비록 남들과는 다른 생각이나 감정이라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어머니(마리아)는 주님을 양육하신 것처럼 인류를 양육하신다”(교본 533쪽)고 하니 우리들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마리아께 의지해야한다.

 

레지오는 규율이 중요하여 자칫 규율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가스등 효과의 함정에 빠질 확률도 높다. 이런 함정을 피하는 방법은 “주님의 사도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을 늘 흡족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교본 296쪽)는 말을 명심하는 것이다. 하늘을 향하여 함께 자라는 나무들도 서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햇빛을 받기 어려워 서로의 성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 관계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고 그 거리는 힘의 균형을 가져다준다.

 

‘개인적인 사도직’이란 결국 다른 이들과 우정의 관계를 쌓는 일인데, 이는 상대방의 삶을 바르게 이끌어 주기 위해 항상 친절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노고가 따르기 때문에 자기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교본 310~311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6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행복디자인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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