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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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주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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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5 ㅣ No.149

[수도 영성]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주님입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한 빈센트 드 폴 성인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세상에 전한 사제이다. 시대의 요청으로 나타나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들을 섬기면서 봉사한 빈센트 드 폴의 정신을 이어받아, 18세기 중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지방에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는 자비의 수녀회가 창립되었다. 이 회는 점점 성장하여 19세기 중반, 사회적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던 독일 땅으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독일의 자비의 수녀회는 한국전쟁 뒤 어렵고 가난한 환자들의 절실한 필요에 따라, 1965년 수원 땅에 세 명의 자비의 수녀들을 파견하였다. ‘자비’라는 단어는 독일에 수녀회가 설립될 때, ‘사랑(leibe)’이라는 독일어가 빈센트 성인이 말하는 프랑스어 ‘사랑(Charite)’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어 ‘자비(barmherzige)’로 번역한 데서 비롯된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주님을 섬김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요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특별히 맡기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주님들인 불우한 사람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섬기는 일입니다. …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공동체가 설립되도록 하셨습니다. …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평생토록 이 일을 위하여 선정하여 주셨으니 여러분은 얼마나 행복합니까!”(생활규범에서).

 

자비의 수녀들에게 가난한 사람이란 병자들과 노인들, 불우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 심신장애인들, 병든 수인들과 그 밖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어려운 이들이다. 그들을 섬기고자 병원, 양로원, 본당, 청소년 시설, 이주민 센터 등에서 일한다.

 

빈센트 성인은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주님을 만났고,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았다. 그것은 믿음의 눈으로 볼 때만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만났을 때,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으로 보았고, 또한 아버지께서 자신을 그 사람에게 파견하셨다고 보았다. 예수님은 당신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안에서 찾기를 원하셨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계시듯이 가난한 사람 안에 계신다는 것이 자비의 수녀들의 믿음이다.

 

 

겸손과 소박과 사랑으로

 

자비의 수녀들의 성소의 특성은 ‘겸손과 소박과 사랑’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빈센트 성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세 가지 기본적인 태도가 겸손과 소박과 사랑임을 가르치셨다. 자비의 봉사는 이세 가지 덕행이 기초가 될 때라야 비로소 가치 있는 것이 된다.

 

겸손은 모든 선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께 신뢰심을 두는 데 근본이 되는 태도이다. 빈센트 성인은 불우한 이들에 대한 봉사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아시고 그것을 손수 마련해 주시기 때문이다.

 

소박이란 단순함, 진실함, 참됨, 투명함 등을 아우르는 말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의 바탕이고 신뢰의 바탕이 된다. 반면 이중성과 거짓은 신뢰를 깨뜨리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소박한 사람은 참으로 자유롭다. 소박한 사람은 주님과 하느님 나라에 오로지 한마음으로 헌신한다.

 

그들이 하는 봉사는 위안, 권력, 명성, 경제적 안정 같은 부차적인 동기들로 얼룩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일관되게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 지극히 어려운 수행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박은 충실성이기도 하다. 자비의 수녀는 봉사하려는 구체적인 투신에 진실하고 충실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마치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인간을 그런 모습으로 사랑하셨던 것처럼. 빈센트 성인은 소박이란 단어를 ‘나의 복음’이라 할 만큼 사랑하셨다.

 

사랑에 대한 성경의 최상의 표현은 빈센트 성인이 자주 인용했듯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요한복음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감동적이며 동시에 활동적인 사랑이었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신 사랑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이와 비슷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더 많이 반영하면 할수록, 이 세상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된다. 달리 말하면 사랑은 정감적인 동시에 효과적이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돌본다는 것은 그들의 필요에 실질적으로 응답한다는 뜻이다. 빈센트 성인은 그 사랑의 힘으로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였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있을 때 단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필요만 채워주려고 하지 말고 영적인 필요도 함께 돌보아주어야 한다. 빈센트 성인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너무 열심인 나머지 이교인들을 섣부르게 개종시키려 하는 태도를 아주 경계하셨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대접해야 한다. 마치 자비로운 사마리아 사람에게서 보는 것처럼 조건 없는 절대적 사랑으로 민족, 인종, 세계관, 종교, 사회적인 지위를 가리지 않고 누구를 만나든지 존중하고 도울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사심 없이 사랑하려면 하느님의 뜻을 항상 찾아야 한다. 하느님의 뜻은 성경말씀과, 교회의 가르침, 일어나는 사건과 시대의 징표들을 통해서 알게 된다.

 

 

하느님 현존 속에 거닐음

 

자비의 봉사의 영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도이다. 먼저 기도와 말씀 봉독과 고독 중에 영혼의 모든 빛과 힘을 모은 다음,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영성적 음식의 한몫을 나누어주는 일보다 복음에 더 잘 응답하는 길은 없다.

 

여기에는 기도하는 자세로 섬긴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빈센트 성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하느님 현존 속의 거닐음’이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가난한 이들에게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다시 하느님께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들 안에 계신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기도를 떠나라는 성인의 가르침, 곧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떠나는 영성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자비의 수녀들에게 내적 ? 외적 삶의 결합이며 관상과 활동의 결합이다.

 

가난한 사람은 늘 우리와 함께 있다. 그런데 현시대에 가장 가난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주노동자, 에이즈 환자들, 외로운 노인들, 굶주리는 제3세계 어린이들….

 

자비의 수녀회 수녀들은 오늘도 이 시대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주님을 섬기고자 끊임없이 그들의 얼굴을 찾고 있다.

 

[경향잡지, 2009년 2월호, 글 · 사진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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