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그리운 이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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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4 ㅣ No.573

[허영엽 신부의 ‘나눔’] 그리운 이름, 어머니

 

 

살면서 가끔씩 미치도록 보고 싶은 사람이 꼭 한 사람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잊히는 것이 아니라 더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지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나의 어머니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변변한 선물 한번 해드리지 못한 아들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중학교 수학여행을 다녀오면서 작은 브로치 장신구를 하나 사드린 적이 전부인 듯합니다. 수학 여행지였던 부여에서 집에 돌아오기 하루 전날에야,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있는 친구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가진 돈이 많지 않았기에 작고 값싼 브로치를 골랐습니다. 다음날 집에 돌아와 가방 한구석에서 신문지로 포장한 브로치를 어머니께 내밀었습니다. “엄마, 선물이야!” 그것은 제가 어머니께 처음으로 드리는 선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날 이후부터 한동안 그 싸구려 브로치를 달고 다니셨습니다. 그때는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다른 브로치가 많으신데, 왜 하필 그것만 하고 다니셨는지 말입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지막으로 뵈었던 늙고 주름진 모습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늙으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내 무의식 안에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 오신 어머니의 모습은 다른 친구의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습니다. 나는 그때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친구들이 “네 엄마야?”라고 물어볼까봐 마음을 졸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 이후에는, 몸이 불편해 거동을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짜증이 났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셨던 어머니는 집 안에서 방바닥을 기어 다니시거나 앉아서 움직이셨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짜증스러운 표정을 내비치곤 했습니다. 정작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장 후회되는 일입니다.

 

 

염습할 때 어머니의 몸빼바지를 보자 목이 메어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뵌 것은 돌아가신 다음 날 염습할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후 17년 동안 자식들을 위해 애쓰시던 어머니는 조용히 하느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부끄럽게도 다섯 남매 중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자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반듯하게 누워 주무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입고 계시던 몸빼바지를 보자 목이 메었습니다. 평생 쉬지 않고 장사를 하셨던 어머니는 특별히 외출을 할 때를 제외하곤 늘 몸빼바지를 입으셨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의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멋지게 차려입고 다니는 친구의 어머니에 비해, 우리 어머니는 늘 같은 머리 스타일에 같은 옷차림이었습니다. “엄마, 다른 옷 좀 입으면 안돼?” 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늘 “난 이게 편하다.”며 잘라 말하셨습니다. 그때에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여자인데, 왜 멋지고 좋은 옷을 입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그저 자식들을 위해 평생 입고 싶은 것, 드시고 싶은 것을 참고 사셨던 것입니다.

 

연령회 봉사자들이 기도를 하면서 어머니의 몸을 씻고 수의를 입혀 주었습니다. 그제야 어머니가 오랫동안 무릎이 아프셔서 걸음이 불편하셨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곁으로 가서 무릎에 손을 얹고 마지막 기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누워계신 어머니의 무릎 옆으로 다가간 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작은 신부님! 걱정하지 말아요. 내 아픈 무릎은 이제 다 나은 것 같아요. 쑤시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아요.” 고개를 들어 다시 쳐다본 어머니의 얼굴은 정말 무척 편안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조금이라도 기척이 나면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 어머니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매일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어머니! 하늘나라에 가서도 이 묵주를 가지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희 못난 자식들을 영원히 잊지 말아주세요.”

 

오래 전 아버님의 산소에 가는 길에 언덕을 올라가기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동생 신부가 업어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셨습니다. 아직 자신이 등에 업혀 갈 정도는 아니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러자 동생 신부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예전에는 저희를 많이 업어주셨잖아요. 이젠 우리가 업어드려야죠.” 그제야 어머니께선 아무 말 없이 동생 등에 업히셨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언젠가 꿈에서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꿈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다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제 등에 업히셨습니다. 제 등에 업힌 어머니는 너무 야위어서 깃털처럼 가벼웠습니다. 그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혹시나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내가 눈물 흘리는 것을 어머니가 보시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서 꿈에서 깨어났고, 눈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꿈에서 깬 후에야 제가 어머니가 살아 계신 동안 한 번도 업어 드린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도록 어린 나를 업어주셨는데 말입니다. 그러자 꿈에서라도 어머니를 업어드렸다는 것이 매우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유대 속담에 “하느님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어머니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느님 사랑의 화신은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가 아닐까요?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이라고 하신 사도요한의 말을 빌려 ‘어머니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달 5월입니다. 따스한 봄 햇살 맞으며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5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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