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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새로 보는 교회사1: 수도회가 교회에 끼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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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5 ㅣ No.155

[새로 보는 교회사 1] 수도회가 교회에 끼친 영향

 

 

주제 선정

 

역사는 인간이 남긴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정치 ? 경제 ? 사회 ? 종교 등 모든 학문이 역사의 연구 대상이다. 교회사 역시 역사의 한 부분이나 다른 모든 역사와 깊은 연관을 맺는다. 이렇듯 정치 ? 경제 · 사회 · 학문의 발달 과정과 교회사와는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사 안에서 연구할 수 있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교계 제도에 관한 역사, 선교의 역사, 국가와 관련된 역사 등 어느 한 줄기도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런 면에서 교회사 속에서 어느 부분부터 관심을 갖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취향에 따를 것이다. 물론 사건별로 본다면 단편적인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가톨릭 교회사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면, 초대 교회를 지나 중세 교회서부터 수도회의 역할이 무척 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복음의 선교나 일반 대중의 영적 교육, 학문의 발달이나 사회 사업 분야 등 모든 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렇듯 수도회는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수도 생활에 관한 역사를 전반적으로 알아볼 기회는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수도회에 관한 역사 연구가 적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수도회가 자신들의 수도회에 관한 역사를 연구해 왔고, 수도회의 성인에 관한 연구는 모두 책으로 엮어져 있다. 성인들의 가르침과 아울러 행적을 세세히 연구한 것이다. 그러나 수도 영성과 수도 영성의 역사에 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하였지만, 이 모든 수도회를 묶어서 일반사, 즉 유럽의 정치 · 경제 · 사회의 변화와 함께 연관 지은 역사 연구는 빈약하다는 뜻이다.

 

교회사 가운데서 흥미 있는 주제를 정하여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려 한다면 나는 이 수도 생활의 역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앞으로 이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해 나가고자 한다.

 

 

내용과 한계 설정

 

수도 생활의 역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 첫 부분은 수도 생활의 시작이 어떻게 되어서 베네딕도 성인에까지 이르는 부분이다. 에집트나 소아시아 등에서 카리스마스적인 은수자들을 통해서 발전해 온 역사이다. 나는 이 부분에 관한 역사는 이야기 속에서 건너뛰려고 한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미 소개된 바가 많아, 원한다면 얼마든지 쉽게 알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두 번째 부분이 소개하고자 하는 역사의 내용이다. 베네딕도 성인에서부터 12세기 탁발 수도회가 생성되기까지가 둘째 시가이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소위 말하는 게르만의 침입으로 유럽은 큰 변화와 함께 새로운 유럽이 생성되는 시기로, 그리스도교가 유럽에 정착되는 시기이다.

 

셋째 부분은 가장 길고 복잡하면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잘 알려진 시기로 오늘날까지 이르는 역사이다. 내용 한계 설정이라는 의미는 수도회의 기원과 초대 교회 시기는 수도회 역사 속에서 생략하겠다는 의미이다.

 

 

유럽의 형성 시기(580년경에서 1140년경까지)

 

로마 제국의 잔재와 야만인들의 요소가 합치된 시기에서부터 새로운 유럽이 형성되는 시기의 역사이다. 이전부터 존재하던 로마 제국의 사람들과 새롭게 나타난 게르만 · 슬라브족들의 관습이 겹쳐지면서 아주 다른 문화를 형성하는 시기이다. 이전까지 존재하던 모든 관습과 발달된 문화는 깨어지고, 비잔틴 이외의 로마 제국의 지역에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게르만의 유럽 유입은 교회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교 문화가 생성되고 아리아니즘 같은 이단이 성행하고, 관습과 문자가 없는 새로운 종족에게 선교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회의 수사들이 노력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야만적인 관습을 고치게 하고 문자를 가르치고 학문을 가르쳐서 하나의 사회가 되게 하였다. 중세를 흔히 신 중심의 사회라고 하지만, 유럽이, 중세 초기부터 그리스도 교회를 통해서 공통된 신앙, 공통의 법과 공통의 사회를 이루기까지는 여러 세기에 걸친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유럽 형성에 수도회의 수사와 수녀들이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수도 생활 자체로 유럽이 제 모양을 갖추게 되는 12세기까지 발전을 해온 것이다. 12세기에 와서는 수도회가 성 아우구스띠노, 성 바실리오, 성 베네딕도의 규칙 세 가지로 정착이 되고, 시골에서부터 도시로 진출하기에 이른다.

 

여기서는 유럽의 형성 시기를 한꺼번에 이야기하지 않고 나누어 말하고자 한다. 시대 구분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역사 이해를 도우며,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구분하여 말함으로써 교회사가 좀더 명확해진다는 생각에서이다.

 

· 첫 번째 시대 : 유럽의 선교와 유럽 정리 시대(약 581~962년)

 

1. 지역 국가 교회 안의 수도 생활(581~755년)

2. 칼 대제 제국 교회와 그 부속 국가 안의 수도 생활(755~887년)

3. 정치적 배타주의 속의 수도 생활(887~962년)

 

· 두 번째 시대 : 서구 사회가 형성되고 가톨릭 교회가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시기(962~ 1140년)

 

1. 신성 로마 제국의 부흥 시대와 여러 국가의 수도 생활(962~1059년)

2. 유럽의 확장 시대와 그레고리오 개혁 시대의 수도 생활(1059~1123년)

3. 가톨릭 교회의 구조 속에 수도회가 침투하는 시기(1123~1140년)

 

시대 구분을 하는 것도 연대를 적는 것도 확실한 기준이란 없다. 정치 경제와 사회의 변화로 지역에 따라 그 시기가 변하기 때문에 어느 지역을 기준으로 구분하는가도 문제이다. 따라서 이 구분은 개략적인 개념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리고 역사 안에 등장하는 지역도 처음부터 유럽의 전지역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서 차츰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l. 지역 국가 교회 안의 수도 생활

 

지역 국가 교회라는 의미도 먼저 규정해야 한다. 지역 교회가 비록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로마 교회와 무관한 것이 아니었고, 로마 역시 지역 교회 형성에 방관자로 있지도 않았다. 먼저 유럽을 침입한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그 다음으로 온 노르만인, 헝가리인과 아랍족의 침입으로 생성되는 지역적인 특성과 그들의 전통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를 지역 국가 교회는 담고 있다.

 

서고트의 교회는 고전 문화의 유산자이고, 주교들이 개종시켜 초대 교회의 법을 지키며 지속적인 활동을 해온 교회였다. 앵글로 색슨 교회는 켄트 왕국의 로마 교회가 바로 옆에 있었지만 북쪽의 켈트족이 개종시킨 교회이다. 그리고 페르시아인과 오슬렘인들에게서 또 이교도들에게서 도망쳐 온 수사들의 선교 활동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그러니 로마로부터 독립된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각 교회가 자신들만이 갖는 특수성은 보존하고 있었다.

 

수도 생활 역시 지역 국가 교회의 특수 상황 안에서 발전되어 왔는데, 네 곳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1) 아일랜드와 프랑스의 수도회, (2) 이탈리아 반도, (3) 서고트 교회, (4) 앵글로 색슨 교회의 수도 생활이다.

 

 

(1) 아일랜드-프랑스의 수도 생활

 

1. 아일랜드 교회의 팽창

 

아일랜드 교회는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중세기에는 게르만 민족을 회개시키는 큰 역할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영국과 미국 가톨릭 교회의 모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교회가 이런 역할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 교회의 시작에서부터 특색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일랜드는 켈트족이 점령한 땅이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이 유럽에서 점령하지 못한 유일한 땅이었다. 이 섬에 복음을 전한 사람은 ‘아일랜드의 사도’로 불리는 성 빠뜨리치오이다. 성인은 영국의 오래된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으로 16세에 아일랜드 해적에게 잡혀가서 6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였다. 그 뒤에 탈출을 하여 수사가 된 빠뜨리치오는 아일랜드를 전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섬으로 들어가, 대략 432년에서 461년까지 선교를 하였다. 이로써 아일랜드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탄생하게 된다.

 

처음엔 로마 교회의 모든 조직과 구조를 가지고 출발을 했지만, 켈트족의 고대 종교인 드루이드교와 대항하면서, 또 그들이 갖고 있던 문화적인 전통에 따라서, 대륙 교회와 단절되어 있었던 이유 등으로 인해 아주 독특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로마법이 통용된 적이 없었으며, 도시가 생성되지 않았고 농촌 지역으로 묶인 부족만이 있었다. 자연히 중앙 집권적인 권위 형성이나 본당 등과 같은 조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발달된 것이 수도원 중심의 교회 사목이었다. 그들의 중심은 부족이지 지역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수도원은 그 부족의 중심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남녀 수도원이 생겼다. 그리고 수도원장은 그 지역, 즉 그 부족의 주교의 권위를 갖고 사목을 했고, 만일에 그가 주교의 직을 받지 않았다면 그 수하에 주교를 두고 사목을 하였다. 수도원장은 모든 교회 사목뿐 아니라 부족의 일반적인 일까지도 도맡아 통치했던 것이다. 그것은 부족의 중심이 수도원이었고 수도원장은 교회 일이든 사회적인 일이든 유일한 권위자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아일랜드의 수도원은 대륙이 문화적으로 질서가 잡혀 있지 않을 때, 학문적으로 초대 교회의 가르침 등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수도원에서는 학문 연구와 함께 서적들을 필사하여 보존하였으며, 교회적으로도 개개인의 회개가 강조되고 고신 극기, 성인들에 대한 공경 등의 신심이 대륙에 전파되어 온 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2. 아일랜드 수사들의 순례

 

아일랜드 수사들의 공적이 문화적으로, 언어적(라틴어)으로, 신심적(특히 고해성사)으로 대륙에, 후대에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무엇보다 대륙 선교의 공을 무시할 수가 없다. 아일랜드 수사들에게 여러 가지 수도 고행 중에서 가장 큰 고행은 자발적인 추방이었다. 조국과 가족, 친지를 떠나서 아무도 모르는 곳, 일반적으로는 적대적인 곳에 가서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일이었다. 즉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는데, 이들은 이 고행을 그리스도를 위한 또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한 순례(Peregrinatio pro Christo o pro amore Dei)라고 불렀다. 성서와 기도서를 넣은 가죽 가방을 하나 메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이런 순례를 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와 모험심이 필요했다. 항상 자연적인 위험이나 사람들의 적대감에서 오는 위험 등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용감하게도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가서 아직까지 개종하지 많은 부족들을 개종시키고, 수장과 함께 개종은 하고 세례는 받았지만 미신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강조하였다. 이들 가운데서 성 골롬반의 선교 여행은 가장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하나의 흠은 전체 교회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교회를 가지고 가서 자기의 교회를 심은 것이라는 것이다.

 

골롬반 성인은 아일랜드 북부 밴고르(Bangor)의 수도원에서 590년경에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프랑스에 상륙했다. 그는 메로빙거 왕조의 콘트라도 왕과 왕비의 후원을 받으며 593년까지 세 곳에 수도원을 세운다. 성인은 수사들에게 세상을 완전히 버리는 백색 순교를 요구하고 아주 독특한 고행의 녹색 순교를 요구하였다. 그는 열성과 고행과 가르침으로 많은 제자들을 얻었지만, 20년 후에는 자신이 요구하는 관습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과 알력이 생겼는데, 그가 그리스도교적 윤리를 너무 엄하고 강하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결국 추방령을 받지만 그는 사람들의 회개를 요구하는 순례 여행을 계속했다. 라인강을 따라서 남쪽으로 여행을 하다가 알프스를 넘어 보비오(Bobbio)에 수도원을 세운 성인은 그곳에서 615년에 죽었다.

 

* 아일랜드-프랑스 수도 생활의 이야기가 다음 호에 계속되겠습니다.

 

[경향잡지, 1994년 1월호, 구본식 안드레아 신부(대구 관덕정순교기념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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