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원 산책: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2-27 ㅣ No.382

김선자 기자의 수도원 산책 ②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대구대교구 내에서 활동하는 남자 수도회 중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을 찾아 수도자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2009년 한국진출 100주년을 맞이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하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에 속한 자치 수도원으로 정식 명칙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이다. 베네딕도 성인의 직제자인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며 한국전쟁으로 흩어졌다 다시 모인 북한 덕원 수도원 수도자들과 만주 연길 수도원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1952년 7월 6일 지금의 왜관에 설립되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의 발자취

1952년 설립된 왜관 수도원의 기원은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네딕도 수도회는 1909년 뮈텔 주교의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수도자들과 전쟁이 끝난 후 다시 파견된 독일인 수도자들이 남한으로 피신한 북한의 덕원 수도원과 만주 연길 수도원 수도자들과 합치게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라는 성 오틸리엔 수도원의 크리소스도모 총아빠스의 명을 받고 1952년 1월 디모테오 신부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회원들은 대구 주교관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디모테오 신부는 대구교구장 최덕홍(요한) 주교의 제의를 받아들여 그해 6월 왜관과 낙산에서 본당사목을 시작했다.

1953년, 왜관지역이 감목대리구로 설정되면서 비테를리 신부가 감목대리로 임명됐다. 1955년에는 왜관에 수도원 건물이 세워졌고, 옛 선교사들이 다시 내한하여 수도원 식구가 늘고 본당 수도 증가함에 따라 1956년 1월 9일 로마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그해 대구대교구장 서정길(요한) 대주교로부터 이미 위임받은 3개 군 외에 또다시 3개 군에서 사목할 권한을 위임받게 된다.

1955년 4월에는 왜관의 순심 중고등학교를 인수하고 성 마오로 기숙사를 운영하며 청소년 교육에도 진출한 왜관 수도원은 덕원과 연길의 출판사업의 소명과 전통을 이어받아 1960년 분도출판사와 인쇄소를 설립했다. 이후 철공소, 목공소와 같은 작업장을 건설했고 현대식 농장을 경영하는 등 자급자족을 이뤄냈다.

1964년 한국에서 처음 피정의 집을 운영하여 1971년 부산, 1979년 서울에 각각 피정의 집을 건립했으며 서울 피정의 집은 신학원 역할도 담당했다. 이밖에도 본당증설과 더불어 교회건축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본당과 신자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도원 가족도 크게 늘어나 대수도원의 면모를 갖추게 되어, 1964년 2월 17일에는 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되어 자립 수도원으로 확고한 기반을 다졌다. 이후 서울 근교 불암산 기슭에 단순한 노동으로 기도생활에 전념하고 베네딕도회적 삶을 지향하는 성 요셉 수도원을 설립했으며 2009년 한국진출 100주년을 맞이했다.

 


기도와 노동의 영성

왜관 수도원 수도자들은 1500년 전 이탈리아 누르시아의 베네딕도 성인(480~547년)이 쓴 규칙서의 정신에 따라 살아간다. “그리스도보다 아무 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성 베네딕도 규칙서 72,11)”는 말씀 등에 따라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는 삶 자체가 목적인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의 하루는 기도와 노동으로 짜여 있다. 하루 다섯 차례 성당에 모여 공동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오전, 오후에는 각자가 맡은 소임에 따라 일터에서 노동을 하며 생활한다.

베네딕도회 삶에서 기도 다음으로 중요한 노동은 금욕적인 차원과 실제적인 차원을 지니며 수도공동체의 생계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은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노동을 통해 얻은 결실을 가난한 이웃과 나눔으로써 애덕실천의 수단으로 삼는다.

베네딕도 성인의 “자기 손으로 노동함으로서 생활할 때 비로소 참다운 수도승들이 되기 때문”이라는 말씀에 따라 수도공동체의 자급자족을 위해서, 또 교회의 요청에 따라 또는 선교적 목적으로 일을 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양성과정

수도생활에 뜻을 둔 형제가 6개월 이상의 견학기를 거쳐 수도원에 입회하면 지원기와 청원기를 보내게 된다. 이 기간은 수도생활을 배우기 전, 공동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들을 갖추고 수도생활에 대한 갈망을 키워 나가는 적응 및 준비기간이다.

지원기와 청원기를 마치고 병역을 필한 사람은 1년간의 수련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수도생활을 배운다. 수련기는 수도생활의 기초를 놓는 단계로 공동체 안에서 수도생활에 필요한 교육인 수도생활 역사, 규칙서, 전례와 기도, 성경, 관례 등을 공부하게 된다.

수련기 막바지에 공동체의 투표를 거쳐 수련자는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첫 서원인 유기 서원을 하게 되는데, 이는 평생 하느님께 봉헌하는 종신 서원과는 달리 일정 기간을 두고 봉헌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4년간의 유기 서원 시기를 보내는 동안 수도자는 자신의 성소를 확인해 나가고 수도원이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업에 투신하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결정적으로 응답하기 위해 준비한다. 이 기간 평수사 지망자는 신학원에, 성직 수사 지망자는 신학교에 다니게 된다.

4년의 유기 서원기를 거치면 종신 서원을 받게 되고 이때 성직을 지망한 형제는 부제품을 받고 후에 다시 사제품을 받아 수사 신부가 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에서 하는 일들

현재 대구대교구 내의 대명동, 왜관, 석전, 약목, 신동, 가실성당에는 수사 신부들이 파견되어 사목하고 있으며 대구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 베네딕도 수녀회,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회에도 신부를 파견하여 지도하고 있다.


또한 수도자들은 서울, 부산, 요셉, 왜관 피정의 집과 손님의 집을 운영하여 신자들의 영적 성장과 영성 교육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수도자 교육을 위한 대구 대명동 가톨릭 신학원, 서울의 가톨릭 교리통신교육회, 왜관의 순심 중고등학교 등의 영성 및 교육사업을 운영하며 종사하고 있다. 아울러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성인 신자들을 위한 ‘봉헌회’와 젊은이들을 위한 ‘베네딕도의 벗들’ 모임을 마련하고 있다.

교회와 문화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분도 인쇄 출판사와 베네딕도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리화 공예실, 성작과 성반, 감실, 촛대 등을 제작하는 금속 공예실과 분도 가구공예소 등을 통해 교회 문화예술에도 기여하며 사회사업으로는 분도노인마을, 구미 가톨릭 근로자 센터를 운영하는 등 양로사업 및 노동사목 분야에서도 일하고 있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 하는 욕심을 좇아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는 삶을 지향하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 수도자들. 그들의 삶은 신앙인으로서 우리들의 현재 위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을 생각하게 한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성소 및 피정 문의 : 054) 970-2000, 2323

[월간빛, 2012년 2월호, 취재 김선자(수산나) 기자]



3,76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