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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수도원 순례: 남미와 아시아에 가톨릭 신앙 전파한 포르투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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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2-27 ㅣ No.380

[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 유럽 수도원 순례] 남미와 아시아에 ‘가톨릭 신앙’ 전파한 포르투갈 (하)

인도 · 마카오 등 아시아에 신앙의 씨앗 심어


- 15세기 중요한 건축물로 손꼽히는 바탈랴 수도원은 1385년 카스티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카스티야의 침입으로부터 포르투갈을 지켜낸 페레이라 장군 기마상이 수도원 앞 광장에 서있다.


전통 가톨릭국가로서 포르투갈은 많은 업적을 세웠다. 가톨릭 불모지였던 인도, 마카오, 일본 등 아시아에 신앙의 씨앗을 심었다. 또 남미 브라질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항해술이 발달한 덕분이라 하더라도, 포르투갈 교회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위용을 현재 포르투갈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아름답고 화려한 성당들이 그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아름다운 ‘왕의 회랑’, 바탈랴 수도원

리스본 북쪽에 위치한 바탈랴(Betalha) 수도원도 같은 처지다. 소나무 숲이 펼쳐진 분지에 위치한 성당은 주앙1세에 의해 착공됐다. 1385년 카스티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성당이었다. 15세기의 중요한 건축물로 손꼽히는 성당은 권력의 상징이자 왕실의 묘지로 사용됐다. 입구에서 성당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왕을 기리는 공간이 마련돼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곳에는 주앙1세와 왕비의 돌무덤이 있었는데, 주변은 화려한 조각들로 장식돼 있었다. 특히 바다의 나라답게 조각들이 해초나 바다의 상징물 등으로 형상화된 것이 눈길을 끌었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왕의 회랑’.


성당은 후기고딕 양식과 마누엘 양식을 띠고 있다. 마누엘 양식은 포르투갈 왕 마누엘 1세 통치기에 행해진 건축양식으로, 매듭무늬나 어개류(魚介類) 해초 등을 모티브로 한 풍부한 장식이 특징이다. 또한 이슬람문화권의 영향에서 파생된 양식으로 유럽에서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만 발견된다. 성당 규모는 높이 32.5m, 길이 79m이며, 성당 문 모퉁이에 있는 6개의 기둥에는 천사, 교황, 성인, 왕 등 100여 개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성당 규모와 내부 장식을 보면 카스티야와의 전쟁에서의 승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다.

바탈랴 수도원이 유명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유럽에서 아름답기로 이름난 걸작 ‘왕의 회랑’ 때문이다. 많은 봉쇄수도회는 수도자들의 기도, 묵상, 독서를 돕기 위해 수도원에 회랑을 설치했다. 너비 50m, 길이 55m 규모의 왕의 회랑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1층 뾰족한 아케이드와 2층 고딕양식의 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좁은 원기둥에 설치한 아치 사이에 섬세하고 화려한 마누엘 양식의 장식들이 당시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현재 군인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바탈랴 수도원은 완공 직후 15세기 기사수도회의 분원으로서 역할을 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교도와 전쟁을 치르고, 그들을 막아낸 기사수도회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카스티야의 침입으로부터 포르투갈의 독립을 지켜낸 페레이라 장군 기마상이 서있는 수도원 앞 광장부터 바탈랴 수도원이 ‘군인’ 일색인 데도 다 배경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수도원에는 무명용사들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용병이 구조를 요청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었다. 사람들은 사진 속 주인공을 ‘참호의 예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기념관 직원은 참호에 폭격을 맞고 하반신을 잃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예수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도원 내부에는 ‘무명용사를 위한 기념관’이 마련돼 있다. 그곳에서 만난 ‘참호의 예수’ 사진.


황금빛 성당 포르토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포르투갈 제2의 도시라 불리는 포르토(Porto)는 해안 도시인 만큼 아름다운 전경으로 유명했다. 수백 년의 전통적 문양과 양식을 간직한 건축물과 거리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포르토를 대표하는 한 가지는 바로 ‘포도주’다. 포도주는 도루강 유역의 포도를 원료로 제조되며, 영국과 프랑스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아직도 도루강 주변에는 많은 와이너리(winery)가 위치해 있어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순례단은 ‘수도원 순례’의 목적에 맞게 와이너리가 아닌 성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향했다. 포르토 시내에 위치한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포르투갈에 세워진 최초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이라고 한다.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은 고딕양식으로 세워졌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었다고 한다. 건물의 외부는 여느 유럽 성당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규모로 인해 성당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 못하는 관광객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황금으로 장식된 내부를 봤다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성당은 화려함 그 자체다. 청빈과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포르투갈에서는 처음으로 세워진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성당. 소박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황금으로 치장돼 있어 ‘황금성당’이라고도 불린다.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성당의 역사를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포르토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수도회가 아닌 재속회가 관할한다. 13세기 포르토 지역 유지들이 모여 가장 화려한 성당을 짓고, 수도회에 기증했다고 한다. 유지들은 종교에 대한 경건함도 갖고 있었지만 성당에 자신과 가족들의 시신을 이곳에 매장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붙였다. 실제로 성당 건물 맞은편에는 지하묘소인 카타콤베가 있다. 카타콤베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매장돼 있었지만 공포감보다는 수 세기 전 사람들이 묻혀 있다는 사실에 경외심이 들기도 했다. 시신이 묻혀 있는 바닥은 숫자가 새겨진 나무판이 깔려 있었다. 숫자는 카타콤베에 묻힌 순서를 의미한다고 한다.

지하의 카타콤베를 벗어나 외부로 나갔다. 언덕에 위치한 성당에서는 포르토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겨울임에도 작열하는 태양이 내려앉은 도루강 물결에는 15세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포르투갈 교회의 역사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가톨릭신문, 2012년 2월 19일,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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