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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에서 평화를 찾다5: 스르프스카 학살의 진실, 화해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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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21 ㅣ No.373

[발칸에서 평화를 찾다] ⑤ 스르프스카 학살의 진실, 화해와 용서


도움 · 나눔의 손길로 분쟁의 땅을 평화의 땅으로 일궈

 

 

- 바냐루카교구의 성 보나벤투라주교좌성당 앞 예수성심상 기단석에는 “Mir Vama!”, 곧 “너희에게 평화를!”(요한 14,27)이라는 뜻의 성경 구절이 씌어 있다.

 

 

“용서요? 날마다 기도를 통해 용서를 청하고 또 용서합니다.” 

 

바냐루카교구청에서 만난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의 한 수도자는 “세르비아계 스르프스카공화국 비밀경찰이 자행한 학살을 용서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1996년 3월 20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과 스르프스카공화국 간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보스니아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데이튼 평화협정 덕이었다. 양쪽의 포로는 석방됐고, 진실 규명과 함께 전범 재판도 시작됐다. 그 마지막 재판은 취재진이 지난 4월 중순 바냐루카를 찾아가기 20여 일 전에야 결말이 났다. ‘보스니아의 학살자’로 불린 라도반 카라지치(71)가 네덜란드 헤이그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40년 형을 선고받은 것. 

 

‘눈에 보이지 않는’ 학살과 성당 파괴가 끝나자 바냐루카교구는 재건을 시작했다. 그런데 재건 방향이 특별했다. 교구장 프란요 코마리차 주교는 교회 재건에 앞서 ‘주교관’을 카리타스 보건소로 내놓았다. 주교관을 개축한 보건소를 통해 교구는 18년 동안 20만 명의 난민과 환자들을 치료하고 공중보건 혜택을 제공했다. 오갈 데 없는 노인과 가족, 학생들을 위해서는 요양원과 기숙사, 사회교육센터, 협동조합 등을 설립, 운영했고 어려운 형편에 놓인 소녀들을 위한 가정과 생명 센터와 미혼모의 집도 열었다. 난민 사목과 함께 교구는 외국의 지원을 받아 파괴된 2500여 채의 집과 아파트를 보수했다. 그 뒤에야 파괴된 성당과 사제관, 수도원, 오라토리오(청소년 기도의 집 겸 교회 학교)를 다시 짓고 있다. 그간 15개 성당을 새로 지었고, 59채의 교회 건축물을 보수했으며, 지금은 25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바냐루카교구 카리타스 담당 밀렌코 아니치치 몬시뇰은 이렇게 말한다.

 

- 주교관을 리모델링한 바냐루카교구의 카리타스 보건소.

 

 

“모든 이에게 똑같이 도움의 손길을 펼친다는 게 저희 교구 카리타스의 원칙입니다. 그 결과는 평화로 돌아왔습니다. 코마리차 주교님은 인종과 종교 간 갈등으로 얼룩진 비극을 씻어내고자 사회복지 활동과 함께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하는 평화포럼을 열어 분쟁의 땅 보스니아에 평화를 정착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에는 코마리차 주교님께서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습니다.” 

 

보편 교회도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평화 증진에 힘을 보탰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6월 ‘전격적으로’ 바냐루카를 찾았다. 중화기로 무장한 보스니아 군경의 삼엄한 경계 속에 사목 방문한 교황은 2차 세계대전 중 가톨릭 수사가 포함된 크로아티아 민병대 우스타샤가 세르비아인 2500여 명을 학살한 데 대해 용서를 청하고 발칸의 화해와 평화를 촉구했다. 또 1차 세계대전 참전 뒤 가톨릭 전례 운동과 평신도 운동을 펼친 바냐루카 출신 이반 메르츠(Ivan Merz, 1896∼1928)를 복자품에 올렸다. 복자의 유해를 담은 관과 복자화, 시복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앉았던 의자 등이 성 보나벤투라 주교좌성당 내 안치실에 그대로 남아 있다. 

 

주교좌성당 정문 앞엔 예수 성심상이 세워져 카리타스 보건소를 찾는 모든 이를 반긴다. 기단석에는 큰 글씨로 “Mir Vama!”라고 씌어 있다. 보스니아 말로 “너희에게 평화를!”(요한 14,27)이라는 뜻이다. 그동안에는 수없이 들으면서도 무심히 지나쳤던 이 말씀이 이제야 평범하지만은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하는 의문이 취재 내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인터뷰] 바냐루카교구 마르코 셈렌 보좌주교

 

 

바냐루카교구 마르코 셈렌 보좌주교.

 

 

“용서는 정말 힘겹고 고통스러웠지만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바냐루카교구 총대리 마르코 셈렌 주교는 “비밀경찰의 학살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면서도 “학살은 비극이었지만, 우리를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게 했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고 고백했다.

 

 

인종 · 종교 상관없이 도움의 손길 뻗어 

 

셈렌 주교는 “교구 카리타스와 함께 인종이나 종교의 장벽을 두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심지어는 교구 신자들과 사제들, 수도자들을 처형했던 세르비아 정교회 신자들은 물론 무슬림과 유다교 신자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돌봤다”며 “그 힘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셈렌 주교는 내전 당시 동료 사제들이 당한 수난도 그대로 전했다. “당시 교구 사제가 6명이나 살해당했는데, 살아남은 분도 있었습니다. 그분들 중 한 분이 스티포 쇼시치 신부님이셨죠. 비밀경찰에 끌려가신 뒤로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었는데, 우연히 그분이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해서 적십자사를 통해 석방을 요구하니까, 한밤중에 다른 수용소로 빼돌리려다가 발각돼 결국은 석방되셨지요. 그 신부님이 석방되던 날, 수용소에 가보니 갇힌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오시는 게 아니겠어요? 갇혀 있는 동안 두 손이 묶인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니게 했다고 합니다. 훗날 그 신부님이 「어둠까지」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스웨덴에서 난민 사목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정세덕(오른쪽) 신부가 바냐루카교구 보리스 요르기치 부제에게 이반 메르츠 복자의 유해와 복자화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얘기를 전한 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셈렌 주교는 “중요한 것은 용서가 아니라 ‘주님, 제 상처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주님 앞에 모든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야 주님께서 그 상처를 모두 짊어지실 수 있고, 가해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며 “요즘도 교구 신자들의 기도는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님이 주신 희망을 안고

 

셈렌 주교는 이어 “지금도 교구 상황이나 선교 여건은 열악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희망을 주셨고 우리는 그 희망을 안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기에’(히브 7,19 참조) 카리타스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그렇게 살아가는 힘은 바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19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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