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성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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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2-15 ㅣ No.138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성탄


“트란세아무스 우스퀘 베들레헴!(Transeamus usque Bethlehem!), 일어나 베들레헴으로 가자!” 거룩한 밤에 울려 퍼지는 목자들의 외침은 2000여년 전부터 해마다 성탄이 돌아오면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기쁨에 가득 찬 말과 노래일 것이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들으라는 이 초대는 오늘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가오는 성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12월에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이 책을 선택하면서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마저도 설렘으로 가득 찰 것 같았다. 본의 아니게 또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성탄이야기 「성탄」을 소개하게 되었지만 이 책을 읽는 이들은 곧 이 책을 좋아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상 깊었던 대목은 예수 성탄 대축일 강론으로 천사의 말을 들은 목자들이 깨어 있었기 때문에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은 아기 예수님처럼 집이 없었으며 교만하지 않았다. 우리가 목자라면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를 찾아갈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서둘러 갈 수 있었을까? 이는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답은 우리 자신을 비우고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 그래야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며 새롭게 들으면서 사람들을 인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기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볼 눈이 있는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아기가 되셨습니다. 이로써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는 하느님이 되겠다고 하신 크고 신비로운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와 아주 가까이, 겸손하게, 모든 이가 그분 앞에 편하게 머물도록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아기가 되시어 우리가 존댓말을 쓰지 않아도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거리감과 위대하심을 버리고 오셨습니다.” 그만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 오셨기 때문에 어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뿐만 아니라 가까이 가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성탄전야에 우리가 켜는 불빛, 부르는 노래, 말과 행동은 그저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여기를 뜻한다. 바로 그날 밤 천사가 “너희를 위하여 주님이신 구세주가 나셨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다시 하는 말이다. 지금도 같은 뜻을 가진다.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요셉처럼 아기를 포대기에 감싸 안은 마리아처럼 오늘날 우리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초대한다. “하느님은 우리와 가까워지기 위해 엄청난 거리를 내려 오시어 사람이 되고 아기가 되셨습니다.” 황제 앞에 가난한 아기가 되신 예수님을 보면서 진정한 힘은 가장 용맹한 군대나 훌륭한 제도에 있지 않다는 것, 진정한 힘은 성령과 사랑이 있는 곳에 있다는 것, 순수함과 겸손함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참된 증거이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권능과 겸손이 만난다고 역설하신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저서의 특징은 역사의 예수와 지금의 나의 예수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오늘’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오늘이 바로 지금이다. “그리스도, 우리게 오셨네!” 이 말씀은 역사 속의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루어진 말씀이며, 오늘 바로 이 순간 그분이 탄생하시도록 마음을 열어야 하고 말씀이 우리 안에 오시기 원하시기에 서두르자고 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하느님에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시간 안에 들어오셔서 마리아의 아들이 되셨다. 영원한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마리아를 통해 역사 안의 한 인물이 되신 것이다. 오늘날 이 진리를 너무 멀게,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한다. 관용주의와 다원주의, 상대주의의 허점을 거론하고 있는데 객관적 진리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탄은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의 이야기이다. 하느님이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울며 젖을 달라고 보채는 우리의 아기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다. 신약성경과 교회의 신앙은 하느님께서 엄마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아기가 되어 오셨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느님은 우리 마음 안에 정화하고 구원하는 사랑이 피어나게 하기 위해 우리 도움이 필요한 아기가 되신 것이다. 여기에 성탄의 중요한 요소인 호의와 열린 마음의 필요성이 담겨 있다. 역사 안에서 이 주제가 얼마나 자주 반복되어 왔는지, 오늘도 아기는 우리 마음의 문을 애타게 두드린다. 주님께서 태어날 곳을 찾고 계신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강조점을 내세운다. 항상 세계적으로 눈을 돌리길 촉구하는 것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 전쟁과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성탄의 중요한 두 가지 의미를 짚어본다면 첫째는 나와 세상 사람들에게 교만과 겸손의 대비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우리를 찾아 오시는 아주 약하고 작은 아기, 하느님께 문을 열라는 것, 즉 자만심, 좁고 짧은 시야, 체면 등을 버리고 어린 아이가 되는 능력, 아기 자체가 바로 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 성탄이 우리에게 참 빛이고 생명이듯 세상의 모든 고단한 삶에 내몰린 이들, 배고픔과 목마름에 죽어가는 이, 과잉과 무절제한 소비를 일삼는 이, 여전히 질병과 가난으로 죽어가고 존엄성에 상처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사람에게 절망을 느끼는 인류에게 오늘 바로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당신 땅에’ 오신다. 이 희망을 나누라는 것이다.

성탄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탄이 나에게 참 기쁨이 되는가? 예수님이 아기가 되신 이 현실이 오늘, 바로 이 순간 이루어지는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허영과 허무, 절망으로 내모는 현실이 각박할수록 내가 스스로 지켜내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나 자신을 뛰어 넘어 내가 지닌 자만과 교만을 뛰어 넘어 겸손하게 성탄의 빛으로 인도되어 오늘의 내가 다시 아기 예수님이 되어 성탄의 참 빛을 밝게 세상에 비추어 주길 기도하자.

[월간빛, 2012년 12월호,
김계선(에반젤리나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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