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종교철학ㅣ사상

내 삶을 흔든 작품: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2-15 ㅣ No.135

[내 삶을 흔든 작품] 젊은 날, 그 여정의 초상

토마스 만의 「마(魔)의 산(山)」


1970년대 대학 시절, 꿈을 꾸는 한 선배가 있었다. 지금은 꽤 이름 있는 소설가로 그의 글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는, 정씨 성을 가진 그 선배는 대학 시절 두툼한 책을 늘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정 선배는 당시 그 책을 뛰어넘는 글을 쓰고야 말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다녔다. 정 선배가 사주는 술을 가장 많이 얻어먹었던 나는 예의상(?) 그 선배와 정신세계를 공유하고자 결국 그 책을 사고 말았다. 토마스 만(왼쪽 사진)의 「마의 산」을 읽게 된 것은 이런 경로를 통해서였다.


30대에 다시 읽어본 「마의 산」

소설의 배경은 스위스 다보스 산 속 베르크호프 결핵요양원이다. 대학에서 조선기술을 공부한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이곳에서 요양 중인 사촌을 3주 예정으로 방문한다. 그러나 그도 이곳에서 결핵이 발견되어 7년간 머무르다 다시 세속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 7년간 한스 카스토르프는 그곳에서 요양 중인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는데, 19세기 유럽의 합리주의적지식인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학자 세템브리니, 원시 그리스도교의 공산주의적 공동체를 옹호하는 예수회 수도사 나프타, 일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면서 한스 카스토르프를 원초적 사랑의 세계로 이끄는 러시아 귀족 부인 쇼샤, 이성보다 본능과 감성에 충실한 삶의 진정성을 역설하는 걸물 페파코른 등이 그들이다.

글을 읽다가 나는 중간에 글 읽기를 포기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등장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과 그들의 삶에 관련을 맺는 주인공의 내면 풍경들이었다. 극적인 사건의 전개도 없고, 문체 또한 번역 때문인지 딱딱했다. 게다가 그때까지 쌓아온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그 논쟁들의 내용이 난해하기 짝이 없었고, 산 속 요양원이라는 배경에서 풍겨 나오는 음울한 분위기도 짜증나게 했다. 대학을 다니는 젊은이에게는 신나고 재미있는 다른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30대가 되어서였다. 그 무렵 정 선배로부터 한 묶음의 원고를 받았는데, 정 선배의 첫 소설 원고였다. 미리 읽어보고 일반인의 시각으로 논평을 해달라는 거였다. 정 선배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글을 썼는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바로 숙독에 들어갔다.

그 원고를 읽어나가면서 뭔가 기시감을 느꼈다. 그렇군! 토마스 만, 그리고 「마의 산」이군!

정 선배의 글을 다 읽고 나는 바로 「마의 산」을 다시 손에 들었다. 다시 읽어보는 「마의 산」은 흥미진진했다. 아, 그때 좀 더 참고 끝까지 읽어볼 걸…. 나는 손으로 땅을 쳤다.


파란만장한 모험적 여행에 빠져들다

산 위 요양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범상치 않게 다가왔다. 그곳은 현실로부터 고립되고 폐쇄된 세계이면서도 현실세계를 조감할 수 있는 관념적 지점이란 의미로 독해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나’를 현실로부터 격리시켜서 자아와 대상 간의 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스 카스토르프는 요양원에서 현실을 대상화할 수 있는 거리감을 확보했던 것이다.

또한 거기서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만나는 인물들은 바로 당대 현실을 떠받치는 관념과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겪게 되는 자아정체성의 편린들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19세기를 물들이면서 시대를 이끌었던 발전적 합리주의(세템브리니)와 그 대척점에 있는 원시 공산사회(나프타)의 논쟁이라는 이원적 구조는 소설의 맥락을 긴장감 있게 만들고 있었다. 이 둘이 표상하는 이성주의는 또한 함께 감성과 본능이라는 인간의 또 다른 존재론적 의식(페파코른)과 이원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원초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쇼샤) 또한 인간에게 빼놓을 수 없는 규정적 요소가 아닌가.

이제 한스 카스토르프의 7년에 이르는 요양원 체류는 인간과 현실이 이루어놓은 거대한 파도를 헤쳐나가면서 인생의 항로를 찾는 파란만장한 모험적 여행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토마스 만이 「마의 산」에서 만들어놓은 음울하고 기묘한 분위기에 나는 점점 빠져들면서 중독되어 갔다. 그야말로 ‘마(魔)의 세계’였다. 세상과 격리된 경계선상에서….


“독일 ‘교양소설’의 최고 백미”

이 소설에서 큰 축을 이루는 것은 논쟁이다. 국가는 국민의 의지가 발현되어 구축된 합리적 구조체라고 주장하면, 다른 한 쪽은 국민의 의지 외에 신의 의지가 빠져있으므로 불완전하다고 반박한다.

문학이 구체적 묘사를 통해 이해력을 높이고 도덕적 세련성과 정신적 고양감을 높인다고 주장하면, 다른 쪽은 기만적인 수사학의 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삶과 죽음, 유한과 무한,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 역사와 자연, 합리주의와 공산주의, 동양과 서양 등 거의 전분야에 걸쳐 이러한 논쟁이 이어진다.

이 논쟁을 통해 세계가 대립적이면서도 상보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되는 주인공의 여정이 펼쳐지고 있는데, 독자로서 ‘나’도 어느새 이 여정에 기꺼이 동참하면서 그 논쟁을 즐기고 빠져들고 중독되어 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독일 ‘교양소설’의 최고 백미”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교양소설은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 궤적을 따라가는 소설로 ‘성장소설’이라고도 한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헤세의 「유리알 유희」 등도 교양소설로 뽑힌다. 이 소설에서 토마스 만도 인문사회과학적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엔지니어 한스 카스토르프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된다”

7년간 이런 과정을 거친 한스가 산을 내려가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전쟁에서 죽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작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이 어떠한 정신적 성숙과 인격적 완성을 이루었는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대신 토마스 만은 “우리는 깊은 심연에 빠진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만은 우리를 심연의 어느 깊이까지 빠뜨리고 싶은 것일까? 우리를 심연에 빠뜨려놓고 그는 192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나도 깊은 심연에 빠진 것일까? 이 깊은 심연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단테의 「신곡」과 노자의 「도덕경」을 찾았다. 「마의 산」을 읽었을 때처럼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정 선배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듯하다. 벌써 소설집을 열 권 넘게 내놓았다. 루카치의 말대로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된다.”

* 이상요 토마스 아퀴나스 - 한국방송(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 1985년 PD로 입사하여 주로 심층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부산방송총국 제작부장, 편성기획부장, 기획팀장(국장급) 등을 지냈고, 1999년 10부작 대하다큐멘터리 ‘20세기 한국사-해방’으로 방송위원회 최우수상, 2008년 6부작 ‘차마고도’로 한국방송대상을 받았다.

[경향잡지, 2012년 12월호, 이상요 토마스 아퀴나스]


2,03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