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뇌과학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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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28 ㅣ No.133

[과학과 신앙] 뇌과학과 삶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뇌(brain)다?’ 데카르트는 이 말 가운데 ‘나’에 관하여 평생을 생각한 분이다. 뇌질환을 연구, 치료하는 내게는 영혼과 육신에 대한 의문점을 넘어 창조와 진화에 대한 주제도 관심거리다.


뇌는 어떠한 일을 하며, 의식과 감정이란 무엇인가?

의식의 생성은 현재까지 뇌과학의 어려운 질문이지만, 17세기 인간중심주의의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면서 뇌과학자들은 인간 이성의 산물인 과학으로 영혼을 치유하겠다며, 뇌질환 환자의 치료와 관찰을 통해 뇌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바티칸에 있는 라파엘로의 그림, ‘예수님의 변모’(오른쪽 사진)에는 엘리야와 모세 사이에 계신 예수님께서 신의 모습으로 눈부시게 변하고, 그 앞에 제자들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하단 우측에는 목과 눈이 오른쪽으로 향하여 마치 펜싱을 하는 듯한 자세로, 한 소년이 간질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에는 그냥 간질이라고 했지만, 현대 신경의학으로 보면, 소년의 질환부위는 뇌의 전두엽, 그 가운데서도 보완운동영역(supplementary motor area : SMA)에서 발생하는 간질로 추정할 수 있다.

간질환자의 전두엽 위쪽을 전기적으로 자극하면 웃음이 유발되고, 전두엽에서 뇌간으로 이르는 웃음회로에 뇌졸중이 생기면 뇌간에 대한 조절기능이 잘못되어 상황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웃는 병적 웃음(pathologic laughter)이 발생한다. 또한 시상하부(視床下部)에 종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발작증상이 웃음으로 나타나는 홍소발작(laughing seizure)을 보인다.

이렇게 환자를 치료하면서 뇌병변 부위와 증상의 비교 관찰로 국소 뇌기능을 추론하고, 조직검사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뇌신경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뉴런으로,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이다. 이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되어 신경망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만남 곧 시냅스가 한 신경세포당 수천 개 형성되고 신경전달물질이 분출되어 전기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신경연결망의 과정인 시냅스의 총화가 뇌의 운동작용이고, 우리의 의식, 기억, 사고, 행동이다.

다시 말해 뇌세포의 운동으로 전기가 발생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웃고, 울고, 화내고,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고, 인식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예측하고, 상상을 한다.


신경연결망

신경연결망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는 외부세계의 변화에 대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먼저 뇌 뒤쪽에 있는 1차 체감각 영역, 1차 시각 영역, 1차 청각 영역에서 접수되고, 2차 영역인 연합영역(association area), 곧 체감각 연합영역, 시각 연합영역, 청각 연합영역에서 다시 종합적으로 처리된다. 처리된 감각정보들을 재통합하는 곳이 다중감각 연합영역(multisensory association area)이며, 총체적으로 변연계(邊緣系)로 가서 기억 속에 저장된다.

변연계인 내측두엽의 해마와 편도체에서 전전두엽으로 가 보완운동영역과 전운동영역(premotor area: PA)을 거쳐 1차 운동영역으로 간 다음, 기억과 관계된 자발적 운동이 시작된다. 이렇게 뇌가 운동할 때 뇌에서 생긴 미세한 전기를 100만 배 증폭하여 리듬을 측정하는 의료기기가 바로 뇌파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뇌자기공명촬영이나 뇌컴퓨터촬영은 마치 뇌의 단면을 육안으로 보듯 해부학적인 이상을 찾을 수 있는 뇌 의료장비이다.


뇌질환

뇌질환이란 단지 뇌세포가 괴사되어 정상적인 뇌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뇌세포가 살아있어도 전기적 홍수가 발생하여 뇌기능이 과잉으로 나타나든지, 왜곡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뇌세포가 괴사되어 마비가 오는 질환이 뇌졸중이며, 뇌세포 기능의 이상 항진으로 전기적 홍수가 생겨서 유발되는 질환이 간질(뇌전증)이고, 또 환각성 약물로 지각이 왜곡 변형되어 의식혼수가 오기도 한다.


우울증과 뇌

얼마 전 불꽃축제로 유명한 부산 광안대교 상·하판에 자살 예방으로 ‘생명의 전화’가 설치되었는데, 무색하게도 4일 만에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또 대학원생이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도 있다.

이러한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기 쉬운 우울증도 뇌자기공명촬영이나 뇌컴퓨터촬영에서 이상이 보이지 않는 비기질적인 정신적 질환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으로 이러한 증상도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내측두엽의 해마와 편도체 등 변연계 부위의 신경전달물질 기능과 관계있는 뇌 질환으로 밝혀졌다. 감정의 문제 또한 뇌과학자는 물론이고, 누구라도 공부하고 싶은 흥미 있는 주제이다.

우울은 슬픔과는 다르다. 슬픔은 어떤 대상을 상실했을 때 어느 기간 동안 서러움과 연민을 느끼는 상태로서 인간의 정상적인 정서이다. 그러나 우울은 객관적인 상황과는 관계없이 일어나는 정서의 병리현상이다. 우울한 환자는 자기의 모든 생활이 우울한 기분으로 덮여있고, 정신운동의 저하, 그리고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슬픔과 구별된다.

평소에 하던 일도 어렵게만 느껴지고, 자신이 없고, 잠을 못 자고, 주로 아침에 기분의 저조가 심하며, 무능력감, 열등의식, 절망감, 허무감이 생기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살의욕이나 자살기도 등의 충동을 느낀다. 일부 우울증 환자는 ‘몸이 약하다, 허하다, 간이 나쁘다, 심장이 약하다, 뇌암이 생긴 것 같다, 위장이 나쁘다, 힘이 약하다.’ 등의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 내과 검사를 반복적으로 받아보지만 명확한 원인은 나오지 않고, 우울증의 진단과 치료가 늦어져 더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신체 증상이 지속될 때는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나의 치료경험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는 마치 터널 안에서 터널을 통해 밖을 보는 것 같다. 곧 터널 속 시야로 세상과 환경을 어둡고 좁게 보는 것이다. 따라서 감기가 낫듯 이 터널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전문가의 약물 치료가 터널에 있는 시간을 단축하고, 이전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악화되기 전에 미리 치료를 받는 것이며, 또 자살을 예방하는 것이다. 걷기, 조깅, 수영 등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우울증상을 감소시킬 수 있다.


사고의 훈련

우리가 운동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단지 머릿속으로만 운동한다고 상상하는 경우에도 뇌파에서 같은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생각이나 상상과 같은 사고의 훈련으로 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 동네에 있는 산의 정상에서, 나와 나의 주위환경을 보는 가상의 사고 훈련으로 세상 보는 눈을 변화시킬 수 있다.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볼 수도 있다. 뇌에 대한 연구로 그 시대의 사상과 생각의 흐름, 사고법칙의 체계, 변화하는 세계를 보는 눈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거울처럼 고정된 틀을 벗어나 세상을 넓게 보는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과 세상을 받아들이게끔 확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교육의 차원에서도 지식의 주입이나 전수에서 벗어나, 지식을 터득하여 지혜를 가지고 통찰, 비판하는 능력을 키우는 시도가 필요하다.


뇌와 컴퓨터

컴퓨터는 전원(on, off)에 따라 운영시스템을 작동하여 작업하지만, 우리 뇌의 의식에서는, 소멸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생성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가 힘들다.

소멸인 뇌사는 신경망 전기에너지의 리듬을 측정하는 뇌파기로 진단하기도 한다. 한편, 의식의 생성이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이성능력의 구체화인 자연과학이 경험되지 않는 세계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의식도 변형된 물질, 사람도 물질의 진화로 된 것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이성능력의 한계를 가진 인간이므로 오히려 하느님의 세계와 우리의 오감으로 받아들인 사실의 세계는 충돌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우리 시대는 극한적으로 말하면, 과학문명, 물질문명, 기계문명, 자본주의 경제체계에서 인간 중심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으로서 인간 매몰, 인간성의 파괴 속에 다음의 문명을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시대는 흘러 또 다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비약적인 발전이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어느 분이 주신 책의 말미에 이런 글이 있었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영적 존재로서 지음을 받았기에 하느님과의 관계가 있었고, 죄로써 그 관계를 상실하였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관계를 회복할 약속의 복음을 주신 것이다.”

마음속에, 기도 속에 하느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같이 계실 때 나는 든든하다.

* 정대수 미카엘 -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신경과학 교수.

[경향잡지, 2012년 11월, 정대수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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