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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자연이 좋아하는 플라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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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21 ㅣ No.129

[과학과 신앙] 자연이 좋아하는 플라스틱


사람들이 인류의 발명품 중 가장 최악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질문의 답이 핵무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놀랍게도 비닐을 비롯한 각종 플라스틱이 그 답이었습니다.


친환경적으로 평가받는 플라스틱

그렇다면 플라스틱이 없는 인류생활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 포장을 하려면 플라스틱 대신 유리나 종이 또는 금속 재료를 사용해야겠지요. 포장을 안 하면 되지 않겠냐고요? 그러면 많은 상품들이 소비되기도 전에 대부분 변질되거나 부패될 것입니다. 그리고 상품의 제조회사와 유통일자, 내용물의 성분, 주의사항과 바코드 등을 표시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유리나 금속은 다시 녹여서 재사용할 수 있고 종이는 자연환경 속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포장재로서 플라스틱에 비해 더 친환경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각종 재료가 생산, 사용, 폐기되는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플라스틱이 이들 재료보다 훨씬 더 친환경적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유리나 금속은 600-800℃에서 성형하여야 하는 반면 플라스틱은 이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성형할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훨씬 적습니다. 또한 플라스틱은 유리나 금속에 비하여 무게가 가볍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생수를 제조한 뒤 서울까지 운반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서울 시민이 1,000만 명이고 한 사람이 하루 평균 0.1리터씩 생수를 마신다고 하면 하루 1,000톤의 생수를 운반해야 합니다. 그런데 1,000톤을 운반할 때, 생수를 유리병에 담으면 1,300톤이 되지만, 플라스틱 병에 넣으면 1,050톤만 운반해도 됩니다.

유리 용기를 사용할 경우 플라스틱 용기를 쓸 때보다 포장비용이 더 높은 것을 제쳐놓고라도 만약 20톤 트럭으로 생수를 운반한다면 트럭을 하루 12.5대 더 많이 운행해야 하므로 물류비용도 더 많이 듭니다. 더구나 트럭은 디젤유를 소모하면서 움직이며 디젤이 연소될 때 탄산가스(CO2)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킵니다. 금속 용기도 유리 용기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종이는 제조 단계에서 강산과 강알칼리가 많이 쓰일 뿐만 아니라 폐종이를 소각하면 아황산가스를 비롯한 유해한 가스가 플라스틱에 비하여 훨씬 많이 생성됩니다. 종이로 식품을 포장하면 내용물이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종이는 산소를 만들어내는 나무를 베어서 만듭니다.

독일 비스바덴에서 발표한 포장재의 환경영향 평가에서 다른 재료들에 비하여 플라스틱이 가장 환경 친화적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입니다.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식물?

그렇다고 해서 플라스틱에 따른 쓰레기 문제를 그냥 덮어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먼저 절약(reduce),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절약, 재사용, 재활용하는 것이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분해되는 분해성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됩니다.

분해가 잘 안 되는 기존 플라스틱이 흙 속에 파묻히면 빗물이 잘 빠지지 않고 고이는 수막현상을 일으켜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지만, 흙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 의하여 분해되는 플라스틱은 흙 속에서 썩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을 피할 수 있습니다. 분해성 플라스틱은 또한 어망이나 부표 등 어업용 도구를 만드는 데도 활용되어 폐어구에 따른 해양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플라스틱은 대부분 석유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석유가 고갈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원유 값이 이미 배럴당 미화 100불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을 찾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식물이나 해조류로부터 에탄올(에틸 알코올)을 만드는 기술이 실용화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에탄올을 더 값싸게 만들기 위한 원료를 찾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해조류를 이용하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에탄올도 석유와 같이 연소되고 나면 물과 CO2가 생성됩니다. 그렇지만 에탄올은 석유와는 다르게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석유는 땅속에서 퍼내어 사용하므로 석유 속의 탄소 성분은 원래 대기 속의 탄소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땅속에 갇혀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석유의 탄소 성분이 연소될 때 생성되는 CO2는 대기 속의 CO2 농도를 높여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베리아를 비롯한 추운 극지방에는 각종 유기물들이 매몰되어 있는데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많이 오르면 이들로부터 메탄과 같은 유기물 기체가 발생되며, 이 기체 역시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기 때문에 기온이 더욱 상승하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면 지구는 더 이상 아름답고 살기 좋은 행성으로 남아있지 못할 것입니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광합성으로 물과 대기 중의 CO2로부터 에탄올의 원료가 될 수 있는 물질을 만들기 때문에, 식물에서 추출한 에탄올이 연소하여 CO2를 생성하더라도 대기 속의 CO2 농도는 증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에탄올은 지구 온난화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대체 물질입니다.

또한 석유는 만들어지는 데 수만 년이 걸리지만, 식물은 해마다 다시 수확할 수 있으므로 석유와는 달리 고갈될 염려가 없는 재생 가능한 자원입니다.


완전 분해가 가능한 플라스틱

플라스틱도 에탄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농촌의 비닐하우스나 멀칭필름 또는 비닐봉지 등을 만드는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폴리에틸렌의 원료는 에틸렌인데 이 에틸렌은 에탄올로부터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존의 폴리에틸렌은 원유를 고온 또는 촉매 아래서 분해할 때 생성되는 에틸렌을 원료로 하여 생산하고 있는데, 이 에틸렌은 에탄올로부터 만들어지는 에틸렌과 분자구조가 똑같기 때문에 어떤 에틸렌으로 폴리에틸렌을 만들더라도 (생산 원가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특성은 모두 동일합니다.

브라질은 사탕수수의 발효에 의하여 생산된 에탄올로부터 에틸렌을 만든 다음에 이를 원료로 하여 폴리에틸렌을 제조하는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음료수를 담는 데 많이 사용되는 페트병도 대부분 석유 자원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있습니다만, 원료 일부를 식물 자원의 발효로 제조하여 페트병을 생산하는 기업도 등장했습니다.

한편, 젖산은 주로 옥수수 전분을 발효하여 만들며, 인체에 전혀 해가없습니다. 이 젖산으로부터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젖산고분자(PLA : polylactic acid)입니다. 따라서 PLA는 옥수수로부터 만들어진 플라스틱이지요. 젖산을 더 값싸게 만들고자 옥수수 이외에 다른 원료를 찾으려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생물이 체내에 플라스틱을 만들어 저장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추출하여 만든 PHB(poly-β-hydroxy butyrate)와 같은 플라스틱도 있습니다. PLA와 PHB는 미생물에 의하여 물과 CO 2 로 완전히 분해될 수 있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좋은 예입니다.


플라스틱 활용을 위한 우리의 선택은?

마태오 복음 25장을 보면, 주인이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맡기고 먼 길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시 돌아와 보니 두 종은 맡은 재산을 잘 활용하여, 주인에게 많은 이윤을 남겨 되돌려준 반면, 한 종은 맡은 재산을 땅속에 파묻었다가 그대로 되돌려줍니다. 당연히 앞의 두 사람은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질책을 받습니다.

플라스틱이 심각한 쓰레기 문제를 일으키므로 우리가 플라스틱의 사용을 기피함으로써 생활의 극심한 불편을 감수하거나 원시시대로 되돌아가면 되는 걸까요? 이것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자연과 재능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보존하기에만 급급한, 맡은 재산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땅속에 파묻었다가 그대로 되돌려준 종의 방법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플라스틱을 절약, 재사용, 재활용하는 기술과 함께 대기 중의 CO2 농도를 증가시키지 않는 플라스틱과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적극적으로 개발 활용하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재능과 자연을 잘 활용하여 더 살기 좋고 아름다운 지구를 가꾸어 나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곧 많은 이윤을 남겨 주인에게 많은 재산을 되돌려준 두 종이 선택한 방법일 것입니다.

이제 플라스틱이 인류의 발명품 중 최악이라는 누명을 벗겨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 윤진산 안드레아 - 인하대학교 나노시스템공학부 교수. 프랑스 콩피에뉴 대학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고분자학회 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2년 10월호, 윤진산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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