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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가 말하는 출생의 비밀: 커스트 쉐리단 감독의 어거스트 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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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14 ㅣ No.634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14) 영화가 말하는 출생의 비밀 - 커스트 쉐리단 감독의 '어거스트 러쉬'

정체성 회복 과정 그리며 '하느님 자녀' 일깨워


- 거리에서 우연히 아빠를 만나 교감을 하는 에반.
 

1.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TV 드라마의 단골소재이다. 시청자들은 시리즈로 계속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착하고 예쁘지만 늘 구박받으며 불행하게 살던 우리의 주인공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으로 인해 극적으로 팔자를 고치게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며 '마음이 뿌듯해진다.'
 
아쉬운 것은 TV 드라마가 지나치게 갈등과 대립의 구도로 출생 비밀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 구도는 막판 뒤집기를 통한 주인공의 신분 상승과 물질적 보상이라는 의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하더라도 대립과 갈등보다는 보다 긍정적으로 정체성을 회복하거나 새로운 관계 회복이라는 면에서 다루는 드라마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생의 의미를 다룬 영화,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 2007)에 주목해보자.


2. "들어봐. 들려? 음악 말이야. 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어. 바람 속에서도, 공기 속에서도, 빛 속에서도. 우리 주위에 다 있어. 우린 마음을 열기만 하면 돼.”
 
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이렇게 한 소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미국 뉴욕 변두리 고아원에 사는 11살 소년, 이름은 에반 테일러이다. 그는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이들 모두가 제각기 자신만의 소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자기에게 뭔가를 속삭이고 있다고 느끼는 유난히 소리에 민감한 소년이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들이 주변의 소리들과 어울려 하나의 거대한 음악이 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
 
거리 공연을 하는 에반.


이처럼 주변의 모든 소리들을 자신 안에서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재능을 가진 에반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떨어져 자신이 고아원에 머문 기록을 습관처럼 '11년 하고도 16일'이라며 숫자로 꼬박꼬박 헤아리며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들은 음악이 되어 그에게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준다.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하나로 모여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음악이 되는 그 날, 에반은 그토록 그리워하는 부모를 만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아마 내가 듣던 음악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왔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듣던 음들은 두 분이 만났던 밤에 들었던 음과 같을지 모른다. 그렇게 두 분은 서로를 찾았듯이 그렇게 날 찾으실지 모른다. 난 믿는다. 옛날 어느 때인가 오래 전에 두 분은 음악을 듣고 따라가셨다."

이러한 믿음대로 에반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모아 자신만의 리듬과 멜로디로 음악을 만들어가면서 부모를 찾아 마침내 뉴욕에 오게 된다.
 
한편 에반이 태어나기 전 공연을 위해 뉴욕에 왔던 두 남녀가 있었다. 록밴드의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이스와 촉망 받는 첼리스트인 라일라였다. 공연 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리드미컬한 음악에 빠져 따라왔다가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진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서로 공감하며 첫눈에 반했고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이들 만남은 딸의 출세를 우선시하는 라일라 아버지에 의해 계속되지 못한다. 얼마 후 라일라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버지는 딸의 미래를 위해 아이가 유산됐다고 거짓말을 한다. 에반의 출생은 비밀에 붙여지고 에반은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루이스와 라일라는 음악활동을 그만두고 루이스는 샌프란치스코에서 세일즈맨으로, 라일라는 시카고에서 피아노 교사로 살아간다. 서로 사랑하는데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음악마저도 포기한 채 결코 기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첼리스트의 길을 포기했던 라일라는 11년 후,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아이가 유산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뉴욕을 향해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를 찾겠다는 희망으로 다시 첼로 연주를 시작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즈음에 밴드 싱어로서의 삶을 포기했던 루이스마저도 기쁨 없이 지내다가 라일라를 만나러 갔던 시카고 공항에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에 이끌려 뉴욕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바로 루이스도 운명적 사랑과 음악에의 열정을 되찾고자 뉴욕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한편 에반은 뉴욕에서 '어거스트 러쉬'라는 이름으로 거리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줄리아드 음대에 들어가 'August's Rhapsody(어거스트의 랩소디)'란 곡을 작곡하고 마침내 센트럴 파크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에반에게 이 작품은 부모님을 찾기 위한 것이었고, 결국 에반이 믿었던 것처럼 음악을 통해 에반과 그의 부모인 루이스, 라일라가 같은 시간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센트럴 파크 공연장에서 아들의 공연을 함께 지켜보는 루이스와 라일라.
 

3. 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극 영화와 뮤직 비디오의 중간에 가깝다. 뮤직 비디오처럼 순간순간 시간의 순서가 뒤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의 흐름을 압축하고 인물과 사물을 극적으로 클로즈업시키다가 위쪽으로 점프하는 카메라 워킹, 음악을 배경으로 화면을 음악에 맞춘 리드미컬한 배열은 마치 한 편의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에서 현실감이나 논리성이 떨어지고 다소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극중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위보다는 한 소년이 부모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겪는 만남의 의미를 음악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가히 독보적이다.
 
또 이 영화는 에반, 루이스, 라일라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살아가다가 뉴욕을 향해 가는 과정, 영화 속에서 이들 세 사람이 평생 선을 긋듯 살다가 마침내 극적으로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평형편집이라는 독특한 편집기법을 통해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가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와 뉴욕이라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부터 뉴욕의 센터럴 파크에 같은 시간에 도착하기까지 세 사람의 여행에 섬세하게 미치고 있다는 것을 평행편집에 의해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영화의 편집기법은 때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를 영상으로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절묘한 교차편집은 똑같은 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루이스가 기타로 연주하는 록음악과 라일라가 첼로로 연주하는 클래식음악을 화면 속에서 절묘하게 결합시켜 마치 각기 다른 장소에서 하나의 음악을 연주하는 듯 한 독특한 공연을 만들어낸다.
 
편집의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일 뿐 아니라 영화 속 에반의 재능이 모든 소리를 한데 모아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증명하듯 실제로 영화 속에서 록과 클래식의 두 공연의 결합을 통해 음악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성당 성가대가 극중에서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통해 에반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마치 뮤지컬이나 오페라의 아리아를 연상하게 한다. 에반이 경찰에 쫓겨 성당에 들어섰을 때 들려오는 가스펠송, '일으켜 세워라(Raise it up)'는 성당 성가대를 통해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설 용기를 내라'고 직접 에반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메시지로 들린다.
 

4.'어거스트 러쉬'는 거리에서 만난 매니저 위저드가 달리는 트럭에 새겨진 '무더운 8월엔 해변으로 가요(August Rush to the Beach)'를 보고 '신의 계시'라며 에반에게 지어준 이름인데, 이 '어거스트 러쉬'는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Augustinus)' 성인과 무관하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그의 저서, 「고백록」에서 "주님,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영원한 안식이란 없나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영화 '어거스트 러쉬'에 나오는 에반은 자신의 재능이야말로 부모에게서 온 것이라고 믿기에 재능인 음악을 통해 부모를 찾아 쉼없이 나아갔고 결국 음악을 통해 부모 품에 안긴다.
 
성경 이야기는 우리 인간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다. 즉 우리 인간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향하는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그 출생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일깨워준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에게 그 출생의 비밀을 가르쳐주신 분이기도 하다. 때로 자존감이 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분이 일깨워주신 것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 자녀'라는 사실이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마태 6,26)
 
우리는 매일매일 삶 속에서, 만남 속에서, 자연 속에서 우리 부모이신 하느님의 체취를 느끼며 그분을 향해 나아간다. 어쩌면 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평화신문, 2012년 8월 12일, 서석희 신부(전주교구, 서강대 영상대학원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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