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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평신도협의회의 찬미예수 인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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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1 ㅣ No.457

[100년의 시간 속을 걷는다] 평신도협의회의 “찬미예수” 인사운동

 

 

교회사와 같은 외부 강연은 대학수업과는 달리, 단 한 번의 기회에 청중과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문이 있다. 이는 내용뿐만 아니라 느낌도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업이다. 그래서인지 교회사 강연에 나설 때마다 늘 처음처럼 긴장된다. 그러나 단상에 서서 신자 청중을 향하여 “찬미예수님!”이라고 인사를 하고, 청중들이 “찬미예수님!”이라고 받고 나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찬미예수”는 천주교 신자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마술적 인사다. 나이도 성별도 신앙의 연한을 불문하고 한마음으로 엮어주는 까닭은 이 인사말이 시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신자들의 숱한 염원을 담아왔기 때문인 듯하다.

 

1990년 대구평신도협의회에서는 신앙생활 쇄신운동의 하나로 “찬미예수님!”이라는 인사를 살리기로 했다. 특히 외교인들과 섞여 사는 한국사회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자신을 복음화 하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하고 신자들끼리 “찬미예수님!” 인사 운동을 하자는 것이었다.

 

“찬미예수”라는 인사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천주교 신자들 간의 전통이었다. 찬미예수는 “예수를 찬미합시다.(laudate Jesum)”라는 문장을 간결하게 줄여 표현한 말이다. 이 인사말은 1862년 성직자회의에서 결정되었다. 깔래(A.N. Calais, 姜; 1833~1884) 신부는 1862년 10월 파리 교장신부에게 보내는 그의 사목활동보고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우리 선교지방에서 아름답고 좋은 또 하나의 실천 규범도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 신부들이 교우를 만났을 때나 또는 기도실에서나 성무로 그들을 접견하게 되었을 때는 물론, 교우들끼리 만났을 때도 서로 ‘찬미예수’라고 하고 ‘아멘’이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렇게 하여 700일 한대사를 수월히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깔래 신부는 1861년 한국에 입국해서 1866년 병인박해 때 한실마을에서 피난하다가 결국 중국으로 피신한 선교사이다. 깔래 신부가 선교할 당시는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 다블뤼(M.A.N.Daveluy, 安敦伊) 보좌주교 등 선교사 10여 명이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이들은 1857년 다블뤼 주교의 서품식을 계기로 그로부터 매년 성직자회의를 하며 교회의 규범을 세워나갔다. 즉 이때가 박해기 중에서는 가장 성직자가 많이 있고 조직적으로 사목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이때 <장주교윤시제우서> 같은 사목교서가 발간되어 교회의 틀이 완성되던 때였다. 선교사들은 문화바탕이 다른 ‘말씀’을 전하며, 신자들 간의 신앙실천 관습을 세우고자 노력했다. 이 해에 교회는 선교사들 관할구역을 성모님을 찬양하는 각기 다른 이름 아래에 두고, ‘찬미예수, 아멘’이라는 인사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는 인사를 매우 정중히 하는 나라이다. 우리의 인사는 방에 들어와 앉아 절을 하던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혈연사회이다. 따라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 나이, 신분 상하를 가리지 않고 인사하는 말이 마땅치 않다. 이러한 한국사회에서 만인이 형제자매임을 선포하는 선교사들과 교회지도자들은 ‘우리화’ 된 인사말을 고안해 내어야 했다. 그 작품이 ‘찬미예수, 아멘’이다. 이 인사말을 탄생시킨 아버지는 우리 교회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수고하던 선교사들이었다. 이 말을 기른 어머니는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면서 고통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우리나라 교회였다고들 한다. 이 인사말을 통해서 한국인 신자들은 자신이 찬미하고 본받아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일상생활을 통해 거듭거듭 확인하고 있었다.

 

이 말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신자들은 서로 다양하게 인사를 했던 것 같다. 프랑스 선교사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한국 전통의 편지글 말을 그대로 썼던 듯하다. 1801년 박해 당시 전주의 순교자 이순이는 어머니에게 보낸 자신의 편지 말미에 재배상서(再拜上書), 즉 “두 번 절하고 편지를 올립니다.”라는 당시의 투식에 따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반면에 1835년 프랑스 선교사가 들어온 뒤로 인사는 변하기 시작했다. 김대건 신부는 자신의 스승인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약자(JMJ)를 글머리에 써 넣었다.

 

이는 최양업 신부의 편지에서도 확인된다. 이 인사말은 19세기 당시 유럽인 선교사들 사이에 널리 쓰이던 투식이었다. 이는 ‘예수, 마리아, 요셉’으로 이루어진 성가정을 모범으로 삼으려던 노력의 표현이었다. 아마도 이 말이 조선교회에도 전해져서 신자들은 점차 ‘예수, 마리아, 요셉’을 입에 달고 지내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신들의 신앙을 확인했으리라 한다. 1862년 이후 신자들은 서로 만날 때면 ‘찬미예수’라고 인사를 건넸고, 이에 대해 ‘아멘’이란 말로 화답했다. 그리고 “찬미예수”라는 인사는 의연히 실천되어 왔다.

 

1910년에 순국한 안중근 의사는 옥중유서를 남겼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기 전에 이미 두 동생에게 유언을 남기고, 또 가족과 교회에 유언을 담은 편지를 썼다. 이 유언편지들이 당사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그의 편지는 어머니, 부인, 당시 주교인 뮈텔(Mutel, 閔) 주교와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고 종부성사를 집전한 빌렘(Wilhelm, 洪錫九) 신부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런데 이 각각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들의 첫 인사말이 “찬미예수”였다. 따라서 찬미예수란 인사는 천주교 신자 사이에 친소나 신분의 구별 없는 인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전통에 따라 1984년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찬미예수’라고 인사했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우리나라 곳곳을 두루 방문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그는 한국인을 향해서 또렷한 발음으로 ‘찬미예수’라고 인사했다.

 

박해기 교회는 이 아름다운 관행을 장려하기 위해서 이 인사를 나눌 때마다 ‘700일 한대사’를 약속했다. 대사는 고해성사로 이미 사함을 받은 죄에 따르는 잠벌(暫罰)을 사면시켜주는 특전을 말한다. 잠벌은 보속할 죄벌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연옥에서 받게 될 잠시적 벌이다. 전대사(全大赦)는 잠벌을 모두 면하게 해주는데 비해, 한대사(限大赦)는 지상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의 선행을 통해서 삭감 받을 수 있는 잠벌에 대한 제한적인 감면을 의미한다. 예컨대 ‘700일 한대사’라 할 경우에는 신자들이 지상에서 700일에 걸친 선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연옥벌의 감면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박해시대의 신자들은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전대사와 한대사를 받을 수 있는 기도와 각종 선업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다.

 

‘찬미예수, 아멘’이란 인사말에는 바로 이러한 의미가 담겨져 있고, 예수를 삶의 중심에 모시려던 새로운 결의가 들어있었다. 깔래 신부는 박해가 좀 수그러들면 다시 오려고 중국으로 몸을 피했다가 결국 들어오지 못하고, 트라피스트회에 들어가서 수사로 살면서 평생 조선교회를 위해 기도한 선교사였다. 안중근 의사는 19세 때 고향 사람 32명과 함께 영세하여 교우촌을 이루어 살게 되었고, 천주교인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은 이 짧은 인사에서 신앙의 본질을 깨닫고 힘을 얻었다. 순교자 성월, 한 번 ‘찬미예수’라고 할 때마다 그들의 위로가 다 묻어나올지 모른다.

 

이 인사말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일반적 관행에 따라 “찬미예수님!”으로 바뀌었고, 또 ‘아멘!’이라는 답 대신에 ‘찬미예수님!’을 한 번 더 반복할 정도로 변하였다. 그렇지만 이 인사말 안에는 순교자의 정신과 힘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참고자료 : 『경향잡지』 2005년 1월호, 대구평신도자료집, 깔래 신부 서한, ≪대한민국 안중근≫)

 

[월간빛, 2011년 9월호, 김정숙 소화데레사(영남대학교 문과대학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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