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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족 여정: 젊은이들의 혼인을 위한 교회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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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13 ㅣ No.948

[가족 여정] 젊은이들의 혼인을 위한 교회의 배려

 

 

러시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거친 바다로 항해를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보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나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훨씬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나온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적인 통계를 보더라도 전쟁터나 바다에서 죽은 사람보다 결혼생활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혼인준비는 어떻게

 

그렇다면 혼인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전쟁이나 항해 준비만큼 혼인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을까요? 혼인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혼인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다음과 같은 비슷한 답이 돌아옵니다.

 

“집은 대출을 통해 전세로 구했어요. 혼수는 서로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검소하게 준비하기로 했어요. 청첩장은 다 찍어서 돌렸고, 증인은 제 친구가 서줄 거예요.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갈 예정입니다.”

 

곧, 예비부부들의 혼인준비는 OOOO년 OO월 OO일 OO시에 이루어질 ‘결혼식’ 자체를 위한 물질적인 준비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러한 물질적인 준비만 챙기기에도 너무 정신없이 바쁜 시기를 보내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기는 합니다.

 

그 반면, 정신적이고 영적인 혼인준비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혼인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혼인성사의 은총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혼인한 뒤의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가정 공동체의 사명이 무엇인지. 자녀 출산을 통해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혼인 서약은 사람의 힘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좀 더 현실적으로 들어가면 이렇습니다. 배우자와 마음을 나누는 올바른 대화 방법을 알고 있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지. 경제적인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지. 여가는 어떻게 보낼 것인지. 가사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지. 자녀는 언제 몇 명을 낳을 것인지. 육아는 누가 어떻게 담당하고 어떤 가치관을 통해 양육할 것인지. 명절에 어느 쪽 부모님을 먼저 찾아뵐 것인지. 고부갈등 같은 배우자 가족과의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지. 부부의 성(性)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졌는지.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이러한 내용에 대해 혼인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스스로 생각해 볼 시간도 부족하고, 배우자와 함께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은 더더욱 부족합니다.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 한 사람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길

 

혼인은 하느님의 부르심, 곧 성소(聖召)입니다. 여기에 응답하는 길은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을 뜻합니다. 날마다 끼니를 함께하며 한 이불을 덮고 살게 될 ‘한 사람’, 험난한 인생길에서 기쁨과 슬픔은 물론 아픔과 괴로움을 나누며 함께 늙어갈 ‘한 사람’, 인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나의 손을 잡아줄 그 ‘한 사람’을 온전히 깊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혼인준비를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한 방송국 교양 프로그램에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 전 예비교육을 받은 939쌍의 이혼율이, 예비교육을 받지 않은 부부의 이혼율의 7분의 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혼인 전 교육이 중요하고 효과도 크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의 교육만으로는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한 달 이상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혼인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는 각 교구별로 혼인교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혼인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혼인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혼인교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고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혼인교리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의무교육’이다 보니 몰입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행한 「2015년 한국천주교회 통계」 자료를 보면, 관면혼의 비율이 무려 ‘60.9%’에 이릅니다. 곧, 혼인교리에 참석하는 사람의 열 명 가운데 세 명 이상이 비신자라는 뜻입니다. 또한 신자 가운데에서도 상당수는 냉담자입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성당에 나가지 않다가 성당에서 혼인하려고 혼인교리에 참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반드시 성당에서 혼인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혼인교리는 위기이자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이 충실하게 잘 준비된다면 정신적이고 영적인 혼인준비에 큰 도움을 주는 동시에 새로운 신앙생활을 위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습니다.

 

그 반면, 교육 내용이 부실하다면 ‘혼인교리 수료증을 위한 탁상행정식 교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됩니다. 혼인교리를 충실히 시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나라 교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혼인과 가정생활을 위하여 젊은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가정 공동체」, 66항). 교회는 예비부부들이 혼인생활의 첫걸음을 잘 내딛을 수 있게 도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혼인교리뿐만 아니라 더욱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녀를 혼인시키는 부모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고, 주일학교에서부터 가정과 생명에 대한 교리를 강화해야 합니다. 성당에서 혼인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경제적인 부담을 덜 수 있게 하고, 혼인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부부들을 위한 본당 내 모임이나 교육도 필요합니다.

 

성당 유아실의 시설과 청결 상태도 점검해야 하고, 임신부 축복미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일도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정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고,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교회와 가정은 본디 하나였습니다. 교회를 가정처럼, 그리고 가정을 교회처럼 만들려면 혼인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사목적 배려가 요구됩니다.

 

“성당 잘 다니다가 혼인하고부터 냉담했어요!” “성당 잘 다니다가 아기를 낳고부터 냉담했어요!” 이런 얘기가 더는 안 나오면 좋겠습니다.

 

* 권혁주 라자로 - 한 여인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여정」, 「부부여정」 등의 가족관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8월호, 글 권혁주 · 사진 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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