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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길 수도의 길: 카푸친 작은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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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30 ㅣ No.340

[영성의 길 수도의 길] (38) 카푸친 작은 형제회


가난, 겸손... 프란치스코 닮으려는 '작은 형제들'

 

 

십자가를 중심으로 아래에 두 손이 엇갈려 있다. 옷 소매가 보이지 않은 오른쪽 손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고, 옷 소매가 보이는 왼쪽 손이 오상의 은총을 받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손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영으로, 육으로 완전히 일치한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르는 형제들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손으로 형상화했다.

 

 

둥그레 뭉쳐진 하얀 꽃눈이 시리도록 곱다.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효창운동장으로 접어드는 길목엔 백목련이 줄지어 있다. 소담스럽게 핀 목련꽃 향기가 아슴아슴 번지는 서울 효창동 주택가에서 수도원을 만났다.

 

 

올해 한국 진출 25돌 맞아

 

작은 형제회, 꼰벤뚜알 프란치스꼬회와 함께 1회 프란치스칸의 세 기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한국보호구(보호자 에드워드 다울리 형제) 천사들의 성 마리아 형제회 수도원이다.

 

라틴어 원문 그대로라면 '카푸친 더욱 작은(Minoritas) 형제들의 수도회'로 번역돼야 할 이 수도회는 기도와 형제애, 복음화, 가난, 더욱 작음의 영성으로 프란치스코가 살아간 삶을 닮으려하는 '형제적 공동체(Fraternitas)'다.

 

그래선지 수도원에 들어서자마자 맨 처음 들은 단어는 '형제'라는 말이었다. 공동체 안팎 어디서나 사제든 평수도자든 차별 없이 형제라는 호칭만으로 불리는 공동체를 접하니 좀 낯설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처럼' 살며 형제애를 중시하는 공동체에 호감과 편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동시에 '더욱 작은 자'로 살고자 하는 형제들 삶에 대한 궁금함도 커졌다.

 

카푸친들 삶의 목적은 기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스스로 곧 기도가 된 사람,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사진은 공동체 낮 전례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긴밀히 체험하며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는 한국 카푸친들.

 

 

올해로 한국 진출 25돌을 맞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사도직은 단출하다. 서울 지역 형제회 경당을 개방, 고해성사를 상설화하고 성체조배경당으로 발전시켰으며, 수련소가 있는 가평 지역 형제회에선 소규모 피정을 지도한다.

 

힘이 닿는 한 재속 프란치스코회원 양성과 영성 보조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주요 사도직 가운데 하나다. 이마저도 지난 2009년 성탄 전야부터 본격화됐고, 이전엔 관상생활과 함께 수도 공동체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데 주력했다.

 

상설 고해성사 마련은 1986년 카푸친 형제들을 서울대교구에 초청한 김수환 추기경의 교구민을 향한 사목적 사랑이 계기가 됐다. 유럽에 갈 때마다 신자들이 카푸친회 성체조배경당에 들러 자유롭게 기도하고 고해성사를 받는 모습을 마음에 담아뒀던 김 추기경은 카푸친 형제들을 초청해 성체조배와 고해성사 거행을 한국에서도 활성화하려 했다. 김 추기경은 생전에 한국 카푸친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 이 사도직을 펼칠지 궁금해 했다.

 

이같은 김 추기경의 오랜 바람과 '고해실의 사도'로 불린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모범을 따라 한국 카푸친들은 지난해 3월부터 서울 형제회 경당에서 고해성사를 주고 있다. 평일엔 오후 2~5시, 토요일엔 오후 2~7시다. 토요일엔 영어 고해성사도 1시간(오후1~2시)씩 주고 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적을 땐 대여섯 명, 많을 땐 열댓 명에 그치지만, 수도회측은 단순한 숫자보다는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는 데 더 비중을 둔다.

 

카푸친들의 고해성사는 편안하기 이를 데 없다. 고해소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과 화해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것이기에 편안하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신변잡사를 얘기해도 고해성사에서 신자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위로를 해주는 데 더 주력한다.

 

한 자리에 모인 한국 카푸친 형제들.

 

 

2008년 한국인으로는 첫 카푸친 사제가 된 강주현(프란치스코 마리아) 형제는 "화해와 기쁨의 성사인 고해성사가 한국교회에선 냉담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며 "하느님 자비를 청하는 고해성사가 마치 심판인 것처럼 오해를 받고 보속 부담으로 또 다시 냉담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고해성사를 상설했다"고 말한다.

 

 

하느님과 화해 돕는데 힘써

 

이뿐 아니라 날마다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 성체조배경당을 개방, 성체조배를 돕고 있다. 매주 목요일(첫 주 목요일은 제외) 오후 8시 성체조배경당에서 성체강복을 거행하고, 형제회를 방문하는 신자들과 함께 아침기도(오전 6시 15분)와 아침미사(오전 7시), 저녁기도(오후 6시)를 거행한다.

 

성체조배 또한 고요히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는 방법을 통해 주님과 일치하도록 권유하지만, 특별히 그런 방법을 강권하지는 않는다. 성경을 읽거나 성당에 앉아 있기만 해도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세상 한가운데서 사는 관상자인 한국 카푸친들은 또 교구 성직자들을 돕고 수도자와 장애인, 이주민, 군인들을 위한 미사전례를 거행하고 고해성사를 주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서울대신학교 영어 지도나 인천교구 이주민 사목 같은 활동도 수도형제들 개인 사도직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 한국보호구는 앞으로 이주민 사도직과 생명운동으로 공동체 사도직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공동체 내 봉사도 무시되는 건 아니다. 수도회 밖에선 사제들의 사목에만 주목하지만, 수도회 내에선 모든 수도형제들의 활동이 똑같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사제든, 평형제든 똑같은 형제로서 사는 것, 이것이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핵심적 삶이자 수도생활 방식이다.

 

에드워드 다울리 형제는 "우리 한국 카푸친들은 '작은 형제의 첫째가는 사도직은 진리와 단순함과 기쁨으로 세상 안에서 복음생활을 사는 것'이라는 회헌대로 사도직과 봉사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이주민 사목과 생명운동 쪽으로 사도직 활동을 모색 중이다"고 밝혔다.

 

 

수도회 영성과 역사 - 수도규칙 문자 그대로 준수

 

 

바시오의 마태오 형제.

 

카푸친 작은 형제회(Ordinis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O.F.M. Cap)는 성 프란치스코가 1223년에 인준 받은 회칙(수도규칙)을 문자 그대로 준수하려는 이상에서 비롯됐다. 성 프란치스코의 실제 모범과 이미 알려진 의도, 특히 성인의 유언에서 표현된 대로 회칙을 해석해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첫 번째 동료들을 엄격하게 닮고자하는 개혁운동으로 시작된 것.

 

카푸친 영성은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대로 가난하고 겸손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형제애와 관상, 복음화, 가난 및 더욱 작음, 정의평화 및 창조보전 증진을 핵심적 가치로 삼고 있다.

 

카푸친 개혁의 시초를 장식한 인물은 당시 작은 형제회의 두 가지 중 하나였던 준수회(Observantes) 이탈리아 마르케 관구 바시오의 마태오 형제로, 1525년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회칙을 문자 그대로 준수해도 된다는 구두 허락을 받는다.

 

이어 클레멘스 7세는 1528년 칙서를 통해 카푸친 개혁을 '은둔 생활의 작은 형제'라는 이름으로 교회법적으로 인준했고, 이들은 성 프란치스코가 입었던 수도복이라고 생각한 길고 뾰족한 모자(Cappucio)가 달린 수도복을 선택했다. 카푸친이라는 이름은 후드 같은 모자, 카푸치오에서 기원한 것으로, 이탈리아어로 카푸치노(Cappuccino)는 '작은 카푸치오'라는 뜻이다.

 

아스티의 베르나르디노 형제.

 

1535년에 카푸친 작은 형제회 총대리가 된 아스티의 베르나르디노 형제는 수도회를 안팎으로 정비, 이후 카푸친들은 그를 진정한 카푸친 작은 형제회 설립자로 여기게 됐다. 1619년 교황 바오로 5세는 작은 형제회 세 가지 중 하나로 인가했다.

 

국내에는 1986년 7월 아일랜드 성 프란치스코와 성 파트리시오 관구 소속 형제 4명이 입국, 서울대교구에 진출함으로써 시작됐다.

 

한국 카푸친은 모두 16명이며, 이 가운데 6명은 선교사로 종신서약을 한 사제와 평형제가 각각 3명이다. 한국인 종신서약자는 총 7명으로, 사제는 3명이고 평형제는 4명이다. 나머지 3명은 수련자다.

 

※ 성소 상담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지역 천사들의 성 마리아 형제회(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5-40)

문의 : 02-701-5727, 5720, 홍호남 고스마 성소 담당 형제

 

[평화신문, 2011년 4월 24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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