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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자비의 희년, 무엇을 할 것인가 (3) 자비의 신학, 잊혀진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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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21 ㅣ No.335

[자비의 희년, 무엇을 할 것인가] (3) 자비의 신학, 잊혀진 주제


‘자비의 신학적 의미 규명’ 현대 교회 과제로 제시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2012년 펴낸 자신의 저서 「자비」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교의신학 사전이나 서적들이 성경의 핵심 주제이며 우리 시대의 현실성 있는 주제인 ‘하느님의 자비’를 기껏해야 부수적인 것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참으로 실망스럽고 참담한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낙담하며 목표를 잃은 상황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복음이 ‘신뢰와 희망’에 관한 복음이 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라는 주제의 가치를 부각하는 일은 신학에는 엄청난 도전이 될 것입니다.”


잊힌 주제

신학에서 ‘하느님의 자비’라는 주제가 소홀히 취급돼 왔다는 반성과 성찰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면서부터이다. 물론 사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 당시부터 이는 이미 충분히 예견되고 있던 것이기는 하다.

평생 하느님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이어온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도 희년 선포를 계기로 스스로의 학문 여정을 돌아보고 이렇게 성찰했다.

“꽤 오랜 세월 하느님에 관한 연구 작업을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의 양식으로 계시된 하느님께서 당신의 조물 인간을 가련히 여기시고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분, 곧 자비로운 분이시라고 기술하면서도, 자비를 그분의 본질로 규정하고 이를 광범한 영역의 지평으로 상세하게 다루며, 그 실천적 의미를 밝히는 데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비가 필요한 시대

지난 20세기는 그야말로 인류사적 비극의 사건들이 숱하게 발생했다. 5000만 명에서 7000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낳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물론, 이른바 인종 학살과 집단 살육의 잔인함은 20세기를 상징하는 여러 비극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21세기의 문을 연 지 불과 2년도 채 안 돼 미국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무너지는 재앙이 발생했고, 이후 세계는 테러와 대테러 전쟁, 온갖 불의, 기아와 폭력, 수백만 명의 난민들, 환경과 생태계 파괴와 이로 인해 증가한 자연재해들, 그리고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 격차 등 비극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이 같은 세계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하면서,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해 걱정한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외침이 부유한 이들의 무관심에 파묻혀 들리지 않게 되어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너무도 많은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세상의 비참함을, 존엄을 박탈당한 우리 형제 자매들의 상처를 보도록 합시다….”(「자비의 얼굴」 15항)

카스퍼 추기경은 ‘자비’가 하느님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임을 강조했다. 이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자비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면서 “내 마음 속에서 울려 나오는 당신 자비를 느끼지 못하는 자 있거들랑 당신 찬미에 벙어리 되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같은 취지에서 카스퍼 추기경은, 무죄한 이들의 희생에 대한 회의 어린 시각과 무신론이 당연시되는 오늘날, “실제로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 새롭게 해줄 말이 없다면, 우리는 하느님에 관해 침묵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럼으로써 추기경은 21세기 신학과 교회 생활의 기본 주제가 바로 ‘자비’임을 강조했다.


공의회와 역대 교황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교황은 ‘파파 부오노’(Papa Buono, 어진 교황)라고 불리우듯,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 자주 깊은 묵상을 하고 항상 이에 대해 강조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1962년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엄격함이라는 무기를 들기보다 ‘자비’라는 치료제를 사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공의회 문헌들은 이러한 ‘치료제로서의 자비’의 측면을 일관되게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시대의 아픔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우슈비츠 인근에서 자랐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두 개의 잔혹한 전체주의 체제를 직접 겪었으며, 자신을 포함한 민족에게 가해진 엄청난 고통을 체험했다. 이러한 고통의 체험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학적 성찰로 이끌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러한 자신의 ‘자비’에 대한 성찰을 두 번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 1980)에 담았다.

이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최대의 관심사는 ‘자비’였음을 지적하면서, 자신 역시 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의무로 제시했다. 이에 앞서 교황으로 선출된 2005년 4월 18일 콘클라베 개막미사에서 당시 추기경단 단장이었던 베네딕토 교황, 즉 라칭거 추기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자비를 자신의 인성으로 드러내신 분”이며 “따라서 그리스도를 만남은 하느님의 자비를 만남”이라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에서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자비에 관한 신학을 심화했다. 이어 사회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2009)에서는 새롭게 떠오른 시대적 도전들과 관련해 ‘자비’를 실천해야 할 교회의 과제들을 구체화했다. 그럼으로써 교회의 사회교리의 원리는 ‘정의’보다 오히려 ‘사랑’과 ‘자비’로 넘어갔다.


신학적 과제

그리고 이미 잘 아는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오랜 사목활동 속에서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함께하면서 ‘하느님 자비’의 중요성과 실천의 필요성을 몸소 체득하고 강조했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비’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신념은 교황 선출 이후 드러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전 생애를 통해 준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함으로써 이제 교황은 ‘하느님 자비의 신학적 의미’를 모든 신학계와 사목자들이 가장 투철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지상 과제로 제시한 셈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2월 20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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