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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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자비의 특별 희년 (2) 고해성사와 자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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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14 ㅣ No.332

[자비의 특별 희년] (2) 고해성사와 자비의 문


마음의 먼지 털어내고 주님 자비의 품에 안기자



사순시기인 지난 3월 성 베드로 대성전 고해소에서 한 남성의 죄 고백을 주의깊게 듣는 프란치스고 교황. [CNS 자료사진]


작은아들이 가산을 탕진하고 거지꼴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달려나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반겨줬다. 밤잠을 설치며 아들을 기다렸지만, 막상 나타나자 한마디 나무라지도 않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아버지 마음, 그것이 하느님 자비이다.

하지만 하느님 자비가 무상의 선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가기에 앞서 죄를 뉘우쳤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루카 15,11-32 참조).


희년의 출발은 영적 회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영적 회개’에서부터 자비의 희년을 시작하자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참회와 아울러 하느님과의 깊은 화해를 희년 준비의 우선순위로 꼽았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 자비를 증언하려면 먼저 그것을 체험해야 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라는 것이다.

교황은 올해 3월 자비의 희년을 발표할 때부터 “죄를 고백할 줄 아는 것은 하느님의 은사, 선물, 하느님의 작품”이라며 두려워하지 말고 고해소에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비록 우리가 비참한 처지에 있어도 (고해) 사제가 우리를 하느님 이름으로 환대하고 이해할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변호인이 없어도 사제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신 변호인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그분께서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고해소를 나올 때 우리는 새 생명을 주시고, 신앙의 열정을 회복시켜 주시는 그분의 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하고 나면 우리는 다시 태어납니다”(3월 13일 자비의 희년 발표 강론).

이 확신은 신학 서적이나 교리서에 기초한 게 아니다. 교황은 17살 때 우연히 동네 성당에 갔다가 고해성사를 보고 싶은 충동을 느껴 고해소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인생의 방향을 180도 바꿔놓았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해성사를 보는 중 나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는 경계심을 늦추고 그것이 나를 덮치게 두었다고 말하고 싶다”(「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56쪽).

하지만 고해성사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신자가 적지 않다. 죄의 용서를 청하면 용서는 물론 위로와 희망까지 얻는 것을 알면서도 고해소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개중에는 본당 신부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까 봐 다른 성당으로 가거나, 판공성사 때 수도회 신부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사목자들은 이런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나와 신부’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하느님’ 관계로 보라고 조언한다. 고해성사는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성사이다. 이 때문에 고해 사제는 먼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죄를 고백하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또한 다른 성사와 마찬가지로 고해성사는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부르는 ‘초대장’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한다. 죄를 통회하고 보속하기에 앞서 그리스도께서 나와 화해하고 싶어 부르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은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하시며 부르신다.


하느님 자비에 이르는 문

자비의 희년은 교황이 8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자비의 문’이라고 이름 붙인 성문(聖門)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또 내년 11월 20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이 문을 닫으면서 희년 폐막을 알린다. 자비의 문은 희년의 중요한 표징물이다.

영적 회개에서 자비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교황은 “이러한 거룩한 장소(자비의 문)에서 순례자들은 마음으로 은총을 체험하고 회개의 길을 찾게 될 것”이라며 희년 내내 성문을 열어두라고 지역 교회에 권고한다.

성문을 여닫고, 또 통과하는 것은 그리스도론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들어가는 유일한 문(요한 10,9 참조)이다. 또한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요한 14,6 참조)이다. 이 성문은 바로 하느님 자비와 구원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교황과 주교들은 자비의 문을 열 때 장엄한 예식을 통해 이 상징적 의미를 상기시킨다. 예식 집전자는 문을 열고 나서 “이 문은 주님의 문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 자비를 얻고 용서를 받읍시다”라고 외친다. 희년 전대사도 이 문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다.

교황은 평소 “교회는 항상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집”이라고 강조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문도 자비의 문과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시려고 언제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두신다”며 우리 마음의 문도 가난한 이들과 상처받은 이들에게 열려 있기를 기원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들고나던 예루살렘 성벽 문에서도 성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들에게 순례는 몇 날 며칠을 걸어 예루살렘에 도착해 그 문을 거쳐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순례자들은 출발하기 전에 이미 하느님 집으로 향하는 기쁨과 설렘을 노래했다.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이미 우리 발이 서 있구나”(시편 122,1-2).


■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해 사제들에게...

고해 사제는 하느님 아버지 자비의 참된 표지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느닷없이 좋은 고해 사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좋은 고해 사제가 되려면 먼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고해자가 돼야 합니다. 고해 사제가 된다는 것은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표지가 된다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 사제들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성령의 은사를 받았으며, 이 일에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사의 주인이 아니라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입니다. 모든 고해 사제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와 같이 신자들을 맞이해야 합니다. 또 밖에 서 있는 다른 아들에게도 다가가 하느님 아버지의 끝없는 자비 앞에서 그의 완고한 생각은 바르지 못하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고해 사제들은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말고 그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돌아온 아들이 미리 준비한 말도 막아 버려야 합니다. 고해 사제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자비의 으뜸가는 표지가 돼야 합니다(「자비의 얼굴」 17항).

[평화신문, 2015년 12월 13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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