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성무일도ㅣ독서기도

대림 제3주일: 요한은 소리이고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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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18 ㅣ No.208

대림 제3주일

 

독서기도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293,3: PL 38,1328-1329)

 

요한은 소리이고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요한은 소리였지만 주님은 태초부터 계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요한은 지나가는 소리였지만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시는 영원한 말씀이셨습니다. 말을 제거한다면 소리는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리가 의미를 전달하지 않을 때 그것은 빈 소리에 불과합니다. 말이 없는 소리는 귓전을 울리기는 하지만 마음을 감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전달할 때 그 과정이 어떤지 생각해 봅시다. 내가 말할 바를 생각할 때 이미 내 마음속에 말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당신에게 전하려고 할 때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당신의 마음속에다 전달할 수단을 찾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이미 있는 말에게 소리를 주어, 그 소리를 통해서 당신에게 그 말을 전달하게 됩니다. 말의 소리는 그 말의 내용을 전달하고 그 일을 마칠 때 사라집니다. 그러나 소리로써 당신에게 전달된 말은 내 마음을 떠나지 않은 채 이제 당신의 마음속에도 있게 됩니다.

 

말이 당신의 마음에 들어갈 때 소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하지 않습니까? “그는(말은) 더욱 커져야 하고 나는(소리는) 작아져야 한다.” 목소리는 그 말이 들리게 하도록 울립니다. 그리고 자기 임무를 마치고 나면 “이것으로 나는 기쁨에 넘친다.”라고 말하는 듯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는 마음속 깊이 잉태된 말을 우리 마음에서 흘려 보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지나가고 하느님의 말씀께서 남아 계시다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요한이 베푼 세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요한은 자기 사명을 다하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집행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세례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말해 준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과 소리는 구별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한을 보고 그리스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리는 말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이 소리라는 것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소리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며 예언자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말하자, 그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곧 침묵을 깨는 소리였습니다.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고 말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당신들 마음에 그분이 들어가실 수 있도록 외치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 길을 곧게 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내가 들어가셨으면 하고 바라는 곳으로 들어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길을 곧게 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마땅히 기도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요한이 주는 겸손의 모범을 보십시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할 때 자기는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오류를 자기를 높이는데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내가 그리스도요.”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백성들은 틀림없이 그 말을 쉽게 믿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요한이 말하기도 전에 요한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자기 신분 그대로를 시인하고 자신과 그리스도의 차이점을 밝히면서 자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요한은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보았습니다. 자신은 등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 교만의 바람으로 그 등불을 꺼버리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응송  요한 3,30; 1,27; 마르 1,8 참조

 

◎ 이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하는도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보다 먼저 계셨고, * 나는 이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몸이로다.

○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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