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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인간과 세상: 암살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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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1 ㅣ No.914

[영화 속 ‘인간과 세상’]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드라마 / 2015. 7. 22 / 139분 / 한국 / 15세관람가 / 감독 최동훈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사소한 것이든, 일생을 좌우할 중요한 것이든 우리는 늘 ‘선택 앞에 선 인간’이다. 그 선택이 늘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좋은 것, 편안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어떤 선택을 해도 차이가 없다면 무슨 고민이 있으랴.

선택 앞에 선 인간의 갈등과 비극은 그 결과를 미리,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선택이란 놈은 좋은 것만 가지고 있지 않고, 양쪽을 균등하게 나누지도 않는다. 선택은 득과 실이 있고, 선과 악이 있고, 해운과 불행을 동시에 가진 ‘두 얼굴’이다. 그중 무엇을, 누구를, 어느 쪽으로 가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모든 선택이 불확실한 것은 아니다. 어느 쪽을,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누구나 알고 있는 분명한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악이 아닌 선, 거짓이 아닌 진실, 배신이 아닌 믿음, 욕심이 아닌 양심, 미움이 아닌 사랑처럼 언제 어디서나 인간에서 소중하고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들’이다.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이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선한 사람만, 진리만을 믿는 사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다. 더구나 광기와 폭력, 억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쳐 최소한의 생존조건마저 위협하는 질곡의 시대에는.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폭파전문가 황덕삼(최덕문), 속사포(조진웅)는 그런 시대에도 양심과 정의를 선택했고, 밀정 염석진(이정재)과 친일 앞잡이 강인국(이경영)은 반대로 탐욕과 배반을 선택했다. 소위 ‘암살 3인조’는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고, 염석진과 강인국은 자신의 목숨과 탐욕에 집착해 민족과 동료를 배신하고 가족의 생명까지 서슴지 않고 빼앗았다.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생명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같다. 지위가 높다고, 부자라고 가난하고 낮은 사람보다 생명의 가치가 더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우주’이다. 조국과 동포를 짓밟은 일본군 사령관과 친일매국노를 ‘암살’하러 나선 ‘3인방’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우주를 버리면서까지 동포들의 우주를 조금이라도 더 되찾아주려고 결심했다.

반대로 같은 상황 앞에서 염석진과 안옥윤의 아버지인 강인국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자신의 목숨을 건지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일본 밀정이 됐고, 일본의 앞잡이가 됐다. 백범 김구 선생의 심복인 염석진도 처음에는 ‘3인방’과 같은 선택을 했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일본경찰의 모진 고문에 굴복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너도 한번 당해 봐.”라고. 독립군을 돕는 아내를 가차 없이 죽인 것도 모자라 쌍둥이 딸 미츠코까지 안옥윤으로 오인해 죽여 버린 강인국도 공주처럼 살아 정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쌍둥이 딸이 그랬듯 “매국노? 여기서는 다 그렇게 살아.”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거짓이다. ‘3인방’은 계획이 어긋나 자신들이 죽는 줄 알면서도 암살의 거사를 강행했고, 돈만 받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은 염석진의 요구대로 ‘3인방’을 죽이는 대신에 목숨 걸고 그들을 구하고, 그들의 일을 돕는 ‘변심’을 한다. 배신과 변심은 둘 다 마음과 행동이 바뀌는 것이지만 그 방향은 반대다. “이렇게 몇 놈 죽인다고 독립이 되느냐.”고 하와이 피스톨은 비아냥거리지만, 독립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독립이 언제 될지 모르지만 우리(민족)이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은 알려주자는 안옥윤의 말에 돌아선다.

안옥윤처럼 나라를 빼앗긴 일제 식민지시대에 많은 우리 동포들은 이렇게, 단지 우리는 죽지 않았다. 이렇게 아직도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단지 알려주기 위해 패배가 분명한, 죽음을 던지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진리이고, 정의이고, 양심이기 때문이었다. 역사는 그들을 모두 기억하지도, 기록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기록에 없고, 후세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들의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 의해 역사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고, 인간의 보편적 삶과 가치는 영원히 지켜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들 중에는, 선택이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정의가 그렇고, 양심이 그렇고, 선이 그렇다. 정의라고 믿는 것, 양심이라고 믿는 것, 선이라고 믿는 것과는 다르다. 믿는다고 거짓이 진리가 되고, 악이 선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또 베드로처럼 부정한다고 진리가 거짓이 되지도 않는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도 고난과 죽음의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시의적절한 소재와 흥미진진한 구성, 세련된 연출 감각, 스타파워를 살린 캐스팅으로 만든 상업영화이다. 해마다 광복절은 오지만, 70주년의 의미가 특별한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그 짊어진 과제가 남아있고, 무엇보다 그 역사를 경험한 세대들이 이제 역사 속에서만 이름 없이 존재하는 때가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존재가 소중하고, 그 마음이 ‘애국’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암살>은 잘 알고 있었다. <국제시장>처럼 1,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그것을 확인하러 몰려들었다.

<국제시장>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매달려 격동의 70년을 지나온 우리 할아버지의 일기장이라면, <암살>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 민족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 가장 아름답고 빛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국제시장>의 덕수도, <암살>의 3인방도 실존인물이 아니다. 역사의 어디 한 귀퉁이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시대 수많은 덕수와 ‘3인방’이 있었음을 믿는다.

걸핏하면 등장하는 이런 애국심이 유치하고 뻔한 독재시대의 발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애국심이야말로 자신의 삶과 역사, 민족과 조국에 대한 자긍심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영화 <암살>은 스타들에게 그 역할을 맡기면서도 하나만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다. 역사는 영웅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000만 명이 <국제시장>에서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 덕수에게서 자기연민을 느꼈다면, 역시 같은 수의 우리 국민은 <암살>에서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밀정 염석진과 매국노 이강국, 그리고 일본군 사령관을 응징하는 3인방과 하와이 피스톨에게서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그 통쾌함과 안타까움의 감정이야말로 애국심의 표현이다.

비록 지금은 아니더라도 무엇이 정의고 진리임을 아는 자는 어느 순간 그것을 선택하거나, 그곳으로 돌아온다. <암살>의 3인방과 하와이 피스톨처럼. 베드로처럼.

[평신도, 2015년 가을호(VOL.49), 이대현 요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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