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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삶의 동반자, 부부: 가사분담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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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588

[삶의 동반자, 부부] 가사분담의 지혜

 

 

※ 다음은 남편과 아내의 가사분담 비율입니다. 이들 중 어떤 부부가 가장 행복할까요?

① 남편 0 : 10 아내 ② 남편 3 : 7 아내 ③ 남편 5 : 5 아내 ④ 남편 7 : 3 아내 ⑤ 남편 10 : 0 아내

 

 

가사분담을 정확히 나누는 것은 신화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가사분담으로 인한 갈등이 존재했을까요? 과거의 가부장적 대가족사회에서는 가사분담으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당연히 밥벌이를 해야 하는 ‘바깥양반’이었고, 아내는 당연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안사람’이 되는 이분법적 논리가 적용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가사분담에 대한 당위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부부갈등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가정의 경제 수입을 책임지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남편의 가사참여도 함께 높아져야 하지만, 원시시대부터 수백만 년 동안 바깥에서 밥벌이에만 익숙해져 있던 남자들이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아내는 남편이 가사를 도와주는 것을 커다란 사랑의 표현으로 생각하지만, 여전히 남편은 밥벌이 자체를 가장 중요한 사랑의 표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0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부부들의 가사노동 시간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아내가 전업주부인 경우 아내는 하루 4시간 11분, 남편은 19분의 가사를 합니다.

 

그런데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내는 2시간 38분, 남편은 24분 동안 가사를 합니다. 곧 아내가 전업주부인 경우와 맞벌이 부부일 때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의 차이는 고작 5분밖에 나지 않고, 맞벌이를 하더라도 아내가 남편보다 거의 7배나 많은 가사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전업주부이든 직장을 다니든, 심지어 아내의 소득이 남편보다 훨씬 많든 관계없이 남편이 가사에 참여하는 시간은 매우 적습니다. 이러니 맞벌이를 하는 아내분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가사분담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남자들만 너무 가부장적이고 유별나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남자들이 대체로 가사분담에 적극적이지 못합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여성의 인권이 나름대로 잘 보장되어 있는 선진국도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만민 평등을 내세우는 공산주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남자와 여자가 가사분담을 오 대 오로 정확히 나누는 사회는 사실 신화에 가깝습니다.

 

 

남편을 가사에 참여시키는 방법

 

그렇다면 남편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가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지금부터 그 비결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사문제로 고민하고 계시는 여성 독자분들께서는 꼭 한 번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1단계 ·· 아내는 남편의 동의 아래 남편이 도와주기를 원하는 일에 대한 목록을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놓습니다. 이때 최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청소’라는 모호한 표현보다는 ‘매일 저녁 설거지’, ‘매일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월수금 분리수거’, ‘주말 거실 바닥 닦기’ 등과 같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자들은 이렇게 콕콕 찍어주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자에 비해 직감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뇌는 한쪽 부분만 집중해서 활용하는 ‘체계화형(systemizer)’인 반면, 여자는 뇌의 여러 부위를 동시다발적으로 활용하는 ‘공감화형(empathizer)’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자의 직감이 남자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그러므로 말 안 해도 남편이 척척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엎드려서 절 받기라는 느낌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습니까? 남자가 이렇게 만들어져 있는데요.

 

남편이 집안일을 못 도와주는 것은 아내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진짜로 몰라서 못 도와주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남자들은 목표 지향적이기 때문에 정확한 목표가 주어지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정확한 목록을 적어서 남편에게 제공해 주면 남편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먹이사냥꾼의 본능이 꿈틀거리게 됩니다.

 

2단계 ·· 아내는 남편이 맡은 일을 스스로 혼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경우 아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곧바로, 아내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따위로 할 바에는 그냥 내가 하고 말지!” “도와달랬더니 오히려 일을 더 만들고 있어!” “할 거 다 하고 도대체 언제 집안일 할 거야?” 이런 식으로 남편에게 비난을 하게 되면 남편은 더더욱 가사와 담을 쌓게 됩니다.

 

남자는 수백만 년 동안 혼자서 먹이사냥을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살림도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남편에게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허락해 주시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혼자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지지를 보내주십시오.

 

3단계 ·· 남편이 가사를 도와준 부분에 대해 반드시 칭찬과 격려와 감사의 표현을 합니다. 남편의 도움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남편이 행한 결과에 대해 적극적으로 칭찬을 해주셔야 합니다.

 

“우와! 당신이 해주는 밥 먹으니까 정말 맛있다!” “당신 힘이 좋아서 그런지 마루에서 빛이 난다!” “어쩌면 이렇게 깔끔하게 접시를 닦아놨어?” “당신이 도와주니까 정말 행복하다!” “정말 고마워! 당신이 최고야!”

 

남자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결과에 대해 칭찬을 받으면 더욱 신이 나서 그 일을 열심히 하게 됩니다.

 

 

남편의 살가운 말 한마디가

 

이제 앞서 글을 시작하면서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가장 이상적인 가사분담 비율은 ‘3번 - 남편과 아내가 5:5로 공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글쎄요….’가 진짜 정답입니다.

 

불행한 부부들이 가사분담을 공평히 한다고 갈등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부부들이 가사분담을 공평히 한다고 행복이 더 많아지지도 않습니다. 곧 가사를 절반씩 공평하게 분담하는 부부라고 해서 남편이 전혀 가사를 안 도와주는 부부보다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아내가 남편에게 진짜로 바라는 것은 단순히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이라기보다는 힘든 집안일을 하고 있는 아내의 마음을 남편이 어루만져주며 공감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에 대해 남편이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준다면 가사분담으로 인한 부부갈등은 쏙들어가 버릴 것입니다.

 

시간의 양적인 측면보다는 질적인 측면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가사분담입니다. 중요한 것은 1분 1초를 도와주더라도 어떻게, 얼마만큼 최선을 다하며 도와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남편이 가사분담에 전혀 참여하지 않더라도 평소에 아내의 수고로움에 대해 고마움을 잘 표현한다면 가사분담으로 인한 갈등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남편 여러분은 오늘 아내의 손을 잡고 따뜻한 눈빛과 자상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표현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보, 집안일 하느라 힘들지? 나도 항상 말만 앞서고 정작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해! 그래도 당신이 있어서 우리 집이 그나마 굴러가는 거 아니겠어? 그러고 보면 난 정말 복 받은 놈이야. 항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이런, 손이 많이 거칠어졌네! 여보! 집안일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당신 건강이 가장 소중해!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남편의 이 살가운 말 한마디가 진정한 가사분담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가사 자체를 아내의 일을 돕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남편 본인의 중요한 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내 사랑의 지혜입니다.

 

* 권혁주 라자로 -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 가족관계 프로그램 개발 연구원. 그동안 서울대교구 혼인강좌, 부부여정, 아버지여정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권혁주 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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