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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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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3 ㅣ No.94

[과학과 신앙]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한 생각


유라시아 세상의 발명이나 발견 중에는 아주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한 것들이 꽤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독일의 과학자인 알프레드 베게너가 주장한 대륙이동설을 들 수 있습니다. 매우 딱딱한 암석으로 만들어진 대륙이 이동한다는 주장이지요.

지구본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남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선의 모양과 아프리카 서쪽 해안선의 모양이 퍼즐 맞추기처럼 딱 들어맞는 것을 보고 서로 붙어있던 두 대륙이 이동하여 떨어졌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이랍니다.

대학에서 처음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참 독특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해안선이 서로 잘 맞는다고 그 무거운 대륙이 이동했다는 상상을 하다니요. 지각의 평균 밀도가 2.7g/㎤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조금 큰 바위를 들려고 해도 허리가 휘어질 지경인데, 무게를 가늠할 수도 없는 대륙이 이동을 해요? 하도 독특한 생각을 한 사람이라서 그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정설로 인정을 받았기에 운수가 매우 좋은 기인 - 사실은 이상한 괴짜라고 생각했지만 - 가운데 한 명인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알프레드 베게너라는 사람에 대해 조사를 했더니 그냥 엉뚱하기만 한 사람이 전혀 아니더군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제가 그를 너무 얕잡아본 것입니다. 고아원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기상학을 전공하던 형이 있었고, 처음에는 천문학을 공부하다가 기상학이 재미있어서 기상관측을 위해 기구를 타고 최장시간 하늘을 난 기록도 가지고 있더군요.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고 마음이 겸손하면 존경을 받는다.”(잠언 29,23)고 했으며,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굳이 그 사람보다 높이 될 생각도 없으나, 스스로에게 교만한 자세가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그이를 낮춰볼 까닭이 있나요? 지금도 꾸르실료 봉사를 들어갈 때마다 맨 먼저 감실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3박 4일을 봉사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만,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기도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대륙이동설

그의 저서 「대륙과 해양의 기원」(1915년)이라는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회상이 들어있습니다. “세계지도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대서양 양쪽의 해안선 윤곽이 서로 들어맞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가을 우연히 옛날에 브라질과 아프리카가 육지로 연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고생물학 논문을 보고는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관련 문헌을 닥치는 대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역시! 허튼 주장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이론을 뒷받침하려고 증거를 수집하고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나중에 두 대륙의 지층과 화석이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한때 두 대륙이 서로 붙어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세계의 대륙이 판게아(pangaea)라는 매우 큰 대륙으로 뭉쳐있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천문학과 기상학을 전공했던 과학자가 지질학 분야의 연구로 전환하면서 이런 혁신적인 이론을 제시했으므로 당연히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으며,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 이론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려면 지질학과 고생물학 분야 등의 수많은 증거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그는 그린란드를 세 차례에 걸쳐 탐험하다가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 이론이 단순히 퍼즐 퀴즈에 불과하지 않음을 증명하려고 수많은 노력을 하면서 자기의 주장을 역설했으나, 끝내 인정받지 못하다가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나 정설로 인정된 것이지요.

지금은 중학교 과학에도 나오는 이론이지만, 이 이론의 가장 큰 약점은 엄청난 크기의 대륙을 이동시키는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30년대에 영국의 지질학자인 아더 홈즈가 판의 경계는 바다 밑에 있을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대륙 이동의 원동력으로 맨틀 안에서의 대류를 제시하였습니다.

고체인 맨틀이 움직일 수 있느냐고요? 맨틀의 하부는 연약권으로서 온도가 높으며 역학적으로 약한 부분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대륙을 이동시키는 거대한 힘이 맨틀의 대류와 중력과 지구의 자전 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지금은 판구조론(plate tectonics)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론 덕분에 지구상의 많은 화산활동과 지진, 산맥의 형성, 그리고 대양 아래의 해구와 해령 등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년도 당신 눈에는

대륙이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을까요?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는 말이 실감나십니까? 그저 막연히 꽤 오랜 시간이라는 느낌만 들지 않는지요. 지구가 생성된 뒤 약 40억 년 동안은 선캄브리아기라고 하며 지구 역사의 약 90% 정도에 해당됩니다. 그 뒤 고생대가 약 2-3억 년 정도이며, 공룡들이 살았던 중생대가 약 1-2억 년 동안입니다. 인류가 나타났던 신생대는 약 6,000만 년 정도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판게아라는 매우 큰 대륙은 약 2억 5천만 년 전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수명은 얼마인가요? 지질학적인 시간과 비교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길게 잡아도 약 2백만 년 정도이며, 인간의 수명을 70년이라고 해도 약 3만 세대에 해당합니다. 제 가문의 족보에 따르면 저는 시조로부터 33대라고 합니다. 시조 할아버지는 고려시대 분이셨지요. 인류의 조상까지 따라 올라가려면 까마득히 먼 시간입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만 지구상에 머무르는 우리 인간이 1년에 몇 센티미터 이동하는 대륙의 움직임을 눈치채기가 쉬운 일이었을까요?

창조주의 눈으로 보면 확실히 살아 움직이며 순환하는 지구도 인간의 눈으로 보면 마치 죽어서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창조주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근시안적인 일부 인간들이 지구와 자연을 함부로 대하기도 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미약한, 그리고 자연의 일부이며 잠시 지구에 머무르다 가는 인간들을 구원하려고 예수님이 오셔서 수난을 겪으시고 부활하신 것이지요.

가난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하는 어떤 신자가 성당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간절하게 기도했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주님의 눈에는 모두 하찮아 보일 것입니다. 주님의 눈으로는 100년이 1초 같고, 100억 원도 1원 같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저에게 제발 1원만 주세요.”

잠시 후에 하늘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그래, 그럼 1초만 기다려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가끔 세상살이에 아등바등하는 우리는 조그만 일에 조바심을 내고, 주위 사람들의 대단치 않은 핀잔에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저도 또한 마찬가지여서 가까운 사람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스스로를 내려놓으려고 애를 쓰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와 묵상도 하지만 자기 수양과 신앙이 많이 부족한 제게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신을 알고 계시면서도 최후의 만찬에서 다음처럼 저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또한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사랑이신 주님! 주님의 새 계명을 잘 알고 있으며, ‘이상, 순종,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단지 구두선(口頭禪)일뿐, 실천이 턱없이 부족한 저에게 용기를 주시며, 제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는 제 잘못을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소서. 그래도 주님! 주님의 새 계명은 절대 쉬운 계명은 아니옵니다.

* 윤왕중 토마스 -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경향잡지, 2012년 2월호, 윤왕중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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